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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 핵 없는 사회는 의외로 쉽다

등록|2014.03.31 11:35 수정|2014.03.31 11:44

▲ <10대와 통하는 탈핵이야기> (최열· 김익중· 이원영· 한홍구· 우석균 등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2014) ⓒ 철수와영희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100년밖에 안 됩니다. 핵발전소의 수명은 40년 안팎이에요. 핵폐기물은 10만 년을 계속 갑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볼 때 3000세대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예요. 약 40년 동안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서 그 위험한 물질을 수천 세대에 걸쳐 남겨 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건 단순히 과학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입니다." 

2011년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매년 3월 11일을 전후해 다양한 탈핵서적이 출판되고 있다. 초창기에는 번역서가 많았다면, 올해는 국내에서 지난 3년간 활발하게 축적되어 온 성과물들이 출판되고 있다. <10대와 통하는 탈핵이야기>(철수와 영희, 2014)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평화박물관에서 진행한 '핵 없는 세상을 꿈꾸는 당신을 초대합니다'라는 강좌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소복이의 그림과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의 독특한 글까지 포함해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읽을 수 있는 두께와 편집으로 구성되었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에서 환경운동 분야를 선구적으로 개척해온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첫 번째 강의에서 핵무기와 핵발전은 그 뿌리가 같다는 점, 핵발전은 안전하지 않으며 경제성도 낮다는 점을 명쾌하게 풀어 헤친다.

핵발전소 수명은 고작 30~40년

특히, 핵발전 추진파가 주장하는 '핵발전은 저렴하다'는 주장에는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의 안전하게 폐쇄하고 핵폐기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핵폐기물 처리 문제의 심각한 현실을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수명은 보통 30~40년이에요. 초창기에 만들어진 발전소는 수명이 다 되었겠죠? 세계적으로 수명이 다 돼서 폐로가 된 핵발전소가 100개가 넘습니다. 이걸 완전히 처리한 것이 두 개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건설 비용보다 다 쓴 원자로를 처리하는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에요. 수명 끝난 100개가 넘는 폐로 중에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금 방치되고 있습니다."

비용 문제뿐이 아니다. 핵 폐기물은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격리해야 하는데, 현재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효한 방식을 찾지 못해 고전 중이다.

"좋은 것은 금방 눈에 보이지만 그 부작용은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까지 나타나요. 사람들은 뒤늦게 부작용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라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두 번째 강의를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국내 탈핵운동 진영에서 가장 바쁜 강사답게 아주 쉬운 언어로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그는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궤변과 번잡한 수치 속에 숨은 속임수를 폭로하며 단순한 진실과 상식을 일깨워준다.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기준치는 의사들이 만든 게 아니라, 관련 기관과 공무원들이 만들어내는 겁니다. 어디에도 안전한 방사능은 없습니다. 기준치는 인체 안전과 상관이 없습니다. 피폭량과 암 발생은 비례합니다. 안전한 기준치는 0밀리시버트입니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 김익중 교수는 단호하게 말한다.

"탈핵해야 합니다. 언제 해야 할까요? 사고가 나기 전에 해야 합니다. 탈핵은 가능해요!"

그밖에도 이원영 수원대 교수(3강)는 탈핵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각 분야의 지식인들을 조직하여 독일의 탈핵 현장을 답사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5강)이 방사능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의사의 입장에서 하나 하나 머뭇거림 없이 답해준다. 의료용 CT촬영시 피폭되는 방사능도 당연히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CT촬영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돌직구를 날리기도 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4강)는 탈핵운동에서 종종 '주변화'되는 핵폭탄 문제에 대한 이야기와 조선인 원폭희생자 문제를 조명하며, 인문학과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핵무기와 핵발전, 피폭자 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반성을 촉구한다.

거짓말쟁이 말에 더는 속지 말아야

"우리는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때리는 바람에 해방됐고, 미국의 핵무기(핵우산)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는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일본에서 원폭이 터졌을 때 69만 명이 피폭돼서 23만 명이 죽었는데, 여기에 조선인 피폭자도 섞여 있었습니다. 7만 명 피폭에 4만 명이 죽었어요. 우리 역사가 우여곡절이 심했지만 한 번에 4만 명이 죽은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극적인 사실을 아무도 거론 안 하죠." 

당시 강좌의 강사는 아니었지만, 책 출판과정에서 추가 필진으로 참여한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수많은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희생이 없다면 핵발전소는 단 1킬로와트의 전기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기초가 된 탈핵강사들의 공통적인 강조점 역시 바로 핵발전을 단순히 과학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라는 점이다. 또 필자들은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및 절약, 생활방식의 변화를 통해 탈핵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쉬운 언어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당시 평화박물관이 이 강좌를 준비한 것은 그동안 핵에 관한 논의가 주로 환경운동 쪽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평화운동의 입장에서 반성할 점이 많았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핵발전과 핵폭탄은 핵분열의 속도 차이만 있을 뿐, 원리가 똑같다는 점에서 마치 일란성쌍둥이처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대응에서는 핵발전 문제는 주로 환경운동이, 핵폭탄 문제는 평화운동이 따로따로 맡아온 것이다. 시민운동조차 인식과 실천에서 핵발전과 핵폭탄 문제를 통일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며, 그 간극을 메워보려는 초보적인 시도였다고 평화박물관 상임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 한홍구 교수는 말한다.

책을 덮으며, 후쿠시마 핵 사고의 수습을 위해 현재도 피폭당하고 있을 노동자들과 피폭의 현실을 피하고 싶어도 이민을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묵묵히 오늘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고 인근 지역과 오염된 지역의 수많은 시민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노후된 핵발전소 폐쇄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전부 중단을 하고 당장 재생에너지 로드맵에 따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하나 등 무거운 과제가 머리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대안은 있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그럼에도 당장의 이익만을 위해 전 인류의 생존과 삶 자체를 볼모로 잡아 지금 이대로 핵발전을 가동하고 핵무기를 온존시키는 것만큼은 그 어떤 선택지에도 놓일 수 없다. 이미 탈핵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지역이 있고, 나라가 있다. 대안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책의 서두에 실린 작은 만화의 글귀 일부를 옮겨본다.

"핵발전소가 가동을 멈추었지만 거짓말쟁이의 말과 다르게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동차 대신에 심장을 엔진으로 하는 자전거를 선택했고, 건물을 하나 짓는 대신에 나무 한 그루를 더 심었다. 그리고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현재의 다급함보다는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고 그러기 위해 바로 지금의 삶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에너지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되돌아보고 살펴보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10대와 통하는 탈핵이야기> / 최열, 김익중 등 / 철수와영희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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