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 돼먹지 못한 학생들... 이효리라면 바꿀까

[아이들은 나의 스승 ④] 한산한 급식소... '행사를 위한 행사' 우려

등록|2014.03.31 16:15 수정|2014.04.02 12:58
난 오전 일과의 마지막인 5교시 수업이 좋다. 끝나면 바로 점심시간이기 때문이다. 명색이 교사인데 아무렴 밥 먹는 게 좋아서일까. 아이들의 눈이 그때만큼 초롱초롱한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뱃속이 약간 비어 있어야 집중력이 높아진다더니 빈말이 아닌 듯하다. 같은 수업 내용인데도 유난히 아이들의 질문도 많고, 수업 시간도 배는 더 짧게 느껴진다.

아이들도 그제야 잠이 깨어 정신을 차리게 된다고 말한다. 비몽사몽 오전을 보내다가 정오가 가까워지면 좀비들이 스멀스멀 깨어나듯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한다는 거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지만, 아이들의 일상은 해와 달, 낮과 밤을 초월한 지 이미 오래다. 실은 등교하고 한참 지나서도 작동하지 않던 아이들의 배꼽시계가 그때쯤 어김없이 울리기 때문이다.

여전히 학교 일과 중 점심시간이 가장 좋다는 아이들이 많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과 점심 함께 먹는 맛에 학교에 온다'는 아이들도 있다. 학생회장 선거 때마다 매번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는 게 '점심시간 연장'인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은 어쩌면 하루 일과의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채식 싫어하는 아이들... '잔반 몰아주기 게임'까지

여느 때 같으면 끝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달리기 경주하듯 급식소로 뛰어갔을 텐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아이들이 느긋하기 이를 데 없다.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일 주일에 한 번, 금요일은 광주광역시교육청 관내 모든 학교가 시행 중인 '채식의 날'이다. 어느덧 시행 4년째를 맞고 있으나, 아이들에게 채식이란 아직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단어다.

▲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은 광주광역시교육청 관내 모든 학교가 시행 중인 '채식의 날'이다. 어느덧 시행 4년째를 맞고 있으나, 아이들에게 채식이란 아직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단어다. ⓒ sxc


금요일 급식소는 차라리 한산하다. 대신 급식소와 정반대편에 자리한 매점은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줄이 뱀 꼬리마냥 몇 겹으로 늘어섰고 왁자지껄한 소리에 시골 장터 저리가라다. 매점의 금요일 대목이야말로 진짜 '불금'이다. 그나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훈화'를 하니 이 정도지, 아니라면 금요일 급식소는 '개점휴업' 상태일지도 모른다.

채식을 기피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보니, 교사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급별로 급식 여부를 일일이 체크하고, 아침 조회나 상담 시간을 할애해 아이들이 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교육해야 때문이다. 다 큰 고등학생들의 식습관 지도라는 '잡무'가 추가된 셈이다. 그런다고 20년 가까이 굳어진 식습관이 바뀔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급식소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식사량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서다. 금요일 잔반의 양은 다른 날에 견줘 몇 배는 된다고 한다. 급식을 아이들 자율에 맡기든, 반강제적으로 먹게 하든 잔반의 양에는 별반 차이가 없단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식판에 담기기 전에 버려지느냐, 아니면 식판에 담기고 나서 버려지느냐다.

교사들이 순번제로 급식 지도를 한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도 있듯이, 엄연히 수업의 연장이다. 그러나 모든 교사들이 동시에 투입되지 않는 다음에야 그 넓은 급식소를 어떻게 다 둘러보고 감독할까. 그저 잔반을 남기지 않도록 잔반통 근처에 서서 감시하고 낡은 레코드판 마냥 '음식 남기지 마라'며 떠들어대는 게 고작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잔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시쳇말로 꾸역꾸역 다 먹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대신 그들만의 요령이 있다. 그나마 '착한' 아이들은 '몰아주는 놀이'를 한다. 삼삼오오 모여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아이가 벌칙으로 친구들이 남긴 음식을 모두 먹는 거다. 말하자면, 제 몸이 잔반통이 되는 셈인데, 그래선지 아이들은 밥을 다 먹은 뒤 "잔반통 한 게임 할래?"라고 운을 띄운다.

몇몇 아이들은 급식소가 어수선한 틈을 타 식판을 식탁 위에 그대로 놓고 슬그머니 나가버리거나, 아예 식탁 아래 바닥에 잔반을 쏟아 부은 뒤 급식 지도 교사 앞에서 깨끗하게 비웠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야말로 '돼 먹지 못한' 아이들이다. 이따금 그들을 찾아내 따끔하게 벌주기도 하고, 그들 부모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해보기도 하지만, 그 수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육식 권하는 사회', 아이들만 탓할 수 있나

늘어만 가는 아토피와 알레르기 질환, 소아 비만 등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채식의 날은 이렇듯 학교에 쉬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좋은 취지와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아이들의 서구화된 식습관을 탓하고 그들의 건강을 걱정해 주기에 앞서, 과연 우리 기성세대가 채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육식을 권하는 사회'다. 주변에 채식을 시작해 보려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 대부분은 채 몇 달도 못 버티고 포기한다. 직장 생활 하는 것도, 대인 관계 맺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회식 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가볍게 생맥주 한 잔 나누는 것조차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삼겹살과 '치맥' 아니면, 모임 자체가 안 되는 곳이 우리나라 아닌가.

텔레비전엔 근육질의 잘 생긴 남자 배우가 스테이크를 굽고, 늘씬한 여자 연예인들이 치킨과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광고가 연일 넘쳐난다. 최근엔 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중국 등 이웃 나라에 우리네 치맥 문화가 유행한다고 하니 말 다했다.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이런 유혹들에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채식의 날이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몇몇 선생님들도 금요일엔 밖에서 식사를 하신다더군요. 채식은 썩 내키지 않는다면서요. 아이들의 경우처럼, 선생님들의 식사량도 조절하기 까다로우니, 차라리 금요일 급식 희망 교사를 따로 조사하면 어떨까 싶어요."

지난 금요일, 급식소를 책임지고 있는 영양사가 건넨 말이다.

하긴 급식 지도를 하면서, 왜 잔반을 남겼냐고 물으면, 선생님들도 그러지 않느냐며 되레 반문하는 아이들이 있긴 하다. 지난해인가는 당돌하게 "저희도 선생님들처럼 밖에 나가서 사먹을 수만 있다면, 채식 먹으러 급식소에 오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말하자면, 자기도 게걸음이면서 아이들에게만 앞으로 가라며 꾸짖지 말라는 투다.

대개의 정책이 그렇듯, 좋은 취지만으로 제도를 정착시키기는 어렵다. 학교의 채식의 날이 꼭 그렇다. 채식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가려는 당국의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패스트푸드 광고를 통제하고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가져오는 폐해를 알리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이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덩그러니 학교 교육에만 내맡긴다면, 자칫 채식의 날이 그저 '행사를 위한 행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5교시 수업을 마무리하고 점심 먹으러 급식소 가는 길, 작년에 가르쳤던 3학년 아이가 반갑게 인사하며 말을 건넸다. 자못 비장한 말투로, 채식을 시작한 지 석 달이 다 돼 간다고 했다. 올 초 새해 일출을 보며 두 가지 다짐을 했단다. 수능 대박을 위해 '나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 그리고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육식을 끊는 것.

금요일 채식의 날이 드디어 효과를 보나 싶어 대뜸 계기가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생뚱맞게 "이효리 때문"이란다. 그녀가 출연한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채식이 완벽한 몸매 관리의 비결이자 불같은 성격이 차분하게 변한 원인이라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고 한다.

하고 많은 여성 아이돌 다 마다하고, 이효리는 그가 좋아하기보다 존경한다고 말하는 유일한 연예인이란다. 이효리의 말 한 마디가 채식의 날 백 번보다 낫다니, 교사로서 조금은 슬퍼졌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