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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제발 우리를 두 번 버리지 마세요"

안성의 그룹홈 원장들의 눈물어린 호소를 들어보세요

등록|2014.03.31 11:58 수정|2014.03.31 15:49
지난 정부와 현 정부의 복지정책의 두 기둥은 '규제강화와 예산축소'다. 농촌도시 안성에도 그 여파가 밀려와 그룹홈 엄마와 아빠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지난 28일 즐거운 집 그룹홈(원장 조경희)에서 안성지역 그룹홈 원장들과 김지수 시의원(안성시)이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중지금 안성시 김지수 시의원과 안성의 그룹홈 원장들이 즐거운집 그룹홈(원장 조경희)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김지수 시의원은 시조례 재정과 국회에 건의 등의 방법을 강구해보겠다고 약속했다. ⓒ 송상호


"남의 자식 키우기 위해 내 자식을 버리게 생겼어유."

"의원님, 내년이 되면 아내와 이혼하게 생겼어유. 또한 남의 자식 키우기 위해 내 자식을 버리게 생겼어유. 우리 그룹홈은 복층 구조의 맨션이에유. 2층엔 나와 아내와 아들이 살고, 1층엔 그룹홈 아이들이 살죠. 그 법이 시행되면 아내와 아들이 다른 데로 나가야 해요. 우리 집 형편은 거의 기초생활 수준이라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이때 까지 내 집과 내 가재도구로 그룹홈 아이들을 먹여 살려 왔는데 이제 내 가족이 나가야 하다니."

'맑은물 그룹홈' 심유양 원장의 호소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아동복지법시행규칙 제 24조에 의하면 2015년 8월 6일까지 전국 그룹홈의 원장 가족은 그룹홈 밖으로 이주해야 한다고 법이 개정되었다. 현재 그룹홈 아이들과 원장의 식구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경우 원장을 제외한 원장의 가족이 나가거나 그룹홈 아이들이 다른 공간으로 나가 생활해야 한다는 법이다.

심 원장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그는 "그렇게 되면 뻔하다. 나는 전세 구할 돈이 없어서라도 그만둘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을 한다.

맑은물 그룹홈 심유양 원장심유양 원장은 2007년부터 자기 집을 오픈해 그룹홈 아이들 6명과 함께 살고 있다. 복층 구조의 집으로서, 2층은 자신의 가족이 살고, 1층은 그룹홈 아이들이 산다. 평소 심원장이 없으면 그의 아내가 아이들을 무보수로 돌봐왔다. 이제 원장가족 분리법이 생기면 그의 아내와 아들은 그 집을 나가야 한다. ⓒ 송상호


부모 역할 못 보면 어른 되어 부모 역할 못해.

"우리 그룹홈 아이들은 초6부터 고3까지 6명의 여아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한 번 버림받은 아이들이죠. 커면서 알코올중독 부모와 폭력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았기에 가정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정상적인 저희 가정(원장 가정)을 통해 가정에 대해 긍정적이게 되죠. 아이들은 그렇게 치유를 받는 건데, 원장 가족과 격리를 시키면 보육원이나 다를 게 없죠."

꿈나무 그룹홈 최유숙 원장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 옆에 있던 즐거운 집 그룹홈 조경희 원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또한 한마디를 거든다.

"맞아요. 내가 아는 분 중에서 보육원 출신이 있어요.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 몰라 어쩔 줄 몰라 하죠. 왜냐하면 크면서 한 번도 부모의 역할을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으니까요."

원장 가족과 어울리며 가족의 역할을 경험하는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조 원장은 현재 큰 남자 아이들뿐만 아니라 2개월 된 아기를 키우고 있다. 그 아기를 돌보느라 밤낮이 없고, 밤잠을 설치게 된다. 이런 조 원장에게 만일 두 곳이 분리된다면 자신의 가족과 떨어져 별거해야 할 게 분명하다.

즐거운집 그룹홈 조경희 원장조경희 원장은 현재 초 중 학교에 다니는 큰 남아들과 생후 2개월 된 갓난 아기를 그룹홈에서 맡아 키우고 있다. 사진에서도 2개월 된 아이가 조 원장의 등에 업혀 잠자고 있다. 이 아기 때문에 꼼짝도 못한다. 더군다나 원장가족 분리법이 생기면 이젠 가족과 생이별 할 위기에 처해 있다. ⓒ 송상호


"아이들 돌보느라 항의 집회도 못해유"

이런 이야기를 듣던 김지수 시의원은 "그럼, 정부와 국회에 항의해 보거나 전국 600여개 그룹홈 원장들이 서울에 상경해 항의집회라도 해보시지 않았는가"를 물었다.

심 원장은 "왜 시도를 안 해봤겠느냐. 문제는 그룹홈 원장들이 아이들을 24시간 돌보느라 서울에 상경해 항의집회 조차 못한다"며 헛웃음을 웃는다.

이 법을 시행하는 정부의 입장은 '원장가족의 아이들이 그룹홈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착취를 할 수 있다는 점과 그룹홈 운영비로 원장 가족이 같이 쓸 수 있다 점과 그룹홈의 불투명한 운영'등을 문제 삼아 원장가족과 그룹홈 아이들을 분리 하고자 하는 거다.

"그건 문제를 일으킨 극소수 그룹홈의 경우를 일반화하는 오류다. 또한 이미 분리된 법인형태의 대규모 그룹홈의 경우는 문제가 없겠지만, 전세 얻을 비용조차 없는 소규모 그룹홈과 아이들을 생존의 위기로 내모는 처사다. 새로운 형태의 가정, 즉 공동생활가정(영어로는 그룹홈)을 일반 복지시설 다루듯 다루는 건 문제가 많다"며 그들은 입을 모은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격

선의와 사명감 하나로 그룹홈을 해온 이들이 정부의 규제강화로 인해 뜻을 꺾을까봐 두려운 대목이다. 그들은 사실 복지시설장 1호봉의 급여에도 못 미치는 박봉과 그 호봉조차 해가 가도 올라가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사랑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정부가 제시한 게 문제라면 그 문제를 해결 하는 방법을 모색하면 될 텐데, 원장 가족과 그룹홈 아이들을 격리하는 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보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복지는 섬세해야하는데, 관리자 중심의 행정은 지양해야죠. 그렇게 되면 그룹홈 아이들에게 '우리들 때문에 원장가족이 헤어졌다'는 죄책감을 심어주는 꼴이 될테니까요."

김 의원 또한 목소리가 격앙된다. 김 의원은 나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어쨌든 거기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같다. "우리들이야 정부의 규제가 힘에 겨워 그만둘 수 있지만, 그룹홈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상처가 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꿈나무 그룹홈 최유숙 원장최유숙 원장은 6명의 그룹홈 아이들을 7년째 키우고 있다. 2층에선 자신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룹홈 아이들이 간혹 "엄마 저희들을 두 번 버리지 마세요"라고 말할 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말했다. 이번 원장가족 분리법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 송상호


그 자리에 함께한 원장들은 모두 6~7년씩 그룹홈 아이들로부터 삼촌, 엄마 등으로 불리었고, 원장의 가족들은 "아빠, 형, 오빠"등으로 불리며 한 가족처럼 지내온 사람들이다. 최원장은 그룹홈 아이들이 했다는 "엄마, 저희를 두 번 버리지 마세요"란 말을 가슴에서 꺼내며 잠시 울컥했다. 어느새 그들 모두 그 울컥함에 동참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이든 원장들의 입장이든 아이들의 상처보다 더 앞설 순 없지 않을까. 그들이 상처를 받으면 그 뒷감당은 사회전체가 떠안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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