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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의 한마디에 청바지 입고 회의장 온 총리

[서평] <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등록|2014.03.31 16:06 수정|2014.03.31 16:06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 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최용덕 곡 <오늘 나는> 중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틀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가장 많이 부르는 복음성가 중의 한 곡이다. 물론 이 곡의 주제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웃을 먼저 사랑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지난주 설교 말씀도 역시 이 곡이 던지는 메시지처럼 '성경 말씀을 실천하며 이웃을 사랑하라'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란 우리의 생활 전체로 이웃에게 사랑으로 드리는 것이며, 예배당에서만 드리는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벌써 이 설교 말씀은 어느새 절반쯤 잊히고 있었다. 그러니 끼어드는 차량을 다시 추월하며 상대방 운전자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항의를 퍼붓는다.

어디 그뿐이었나,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항상 나눔과 기부에도 소극적이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럴싸하게 포장했던 이기심과 사적 욕심이 그대로 표출되는 순간이다. 흔히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말한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아마 이 성경 구절은 예수를 믿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익숙한 글귀다. 하지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며 비웃고 조롱함은 보통이고 남을 깎아내리고 업신여기는 상황을 보는 것이 더 어렵지 않다.

▲ 몸을 씻고 나면 다음은 이발할 차례, 수녀들은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행동력이 있기에 아이들도 고분고분히 따른다. ⓒ 오키 모리히로


'사랑'과 '평화'의 대명사, 마더 테레사 수녀

그러나 여기 한 사람, '허리를 굽혀 섬기는 자는 위를 보지 않는다'며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몸을 가장 낮은 데로 낮추어 인류애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사람, 그녀가 있었기에 이 시대의 혼란과 살육의 추악한 역사는 조금이나마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는 자기희생으로 슬픈 인류사에 빛나는 정신을 보여주었던 그 사람은 '사랑'과 '평화'의 대명사로 불린, 바로 마더 테레사 수녀였다. 메마른 세상 곳곳 인종과 이념의 벽을 넘어 사랑을 펼친 그분의 이름 또한 종교를 떠나 누구나 진정한 '평화의 어머니'로 받아들인다.

전쟁과 빈부격차 문제를 취재하던 일본의 사진작가 오키 모리히로는 1974년부터 1981년까지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접한 마더 테레사의 삶을 사진과 수필로 고스란히 담았다. 저자가 함께 동고동락하며 직접 찍은 사진의 기록은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테레사 수녀의 삶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겉표지. 정창현 옮김, 272쪽, 1만4500원, 해냄 ⓒ 오키 모리히로

누구라도 죽어가는 순간만큼은 사람답게 해주고자 세운 '임종자의 집'과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고아의 집',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평화의 마을', 이곳에서 테레사는 살아 있는 매 순간을 사랑하는 데 전념한다.

그녀가 베푸는 봉사는 이미 가톨릭을 벗어난 더 큰 의미의 신화였다. 정작 테레사는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도에는 마더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과 병이 가득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왜 선진국에까지 구제의 손길을 뻗어야 합니까? 선진국은 경제력이 있으니 스스로 하도록 권하기만 해도 무방하지 않습니까?" (오키 모리히로)

"오키, 당신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아무 불편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여기겠지만, 마음의 굶주림을 가진 이들도 많아요.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마음의 가난함, 그것은 한 조각 빵에 굶주리는 것보다 훨씬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요? 당신은 진실로 당신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체념하는 사람, 좀 더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아이들, 자신의 방에 붙은 번호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 1장 '가난한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중에서

테레사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실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가난한 이들을 스승으로 여기고 그들을 사랑하는 데에 일생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가진 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몸소 가르친 것이다.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버림받고 병들어 죽어가는 이들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가르침이 인간에게 어떻게 실천되고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 벌거벗은 아이를 곁에 두고 길거리에 누워 자는 젊은 여자. 보따리 하나가 전 재산인 이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긴 듯 곤히 자고 있다. ⓒ 오키 모리히로


▲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 중증 영양실조로 걷지 못한다. 아이의 마음이 완전히 닫혀 버렸는지 수녀가 우유를 내밀어도 손대지 않고 멍하니 앉아만 있다. ⓒ 오키 모리히로


총리님, 당신이 좀 더 조촐해지신다면...

1976년 봄, 캐나다 밴쿠버,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운동) 회의에서 연설을 위해 테레사가 단상에 올랐다. 검소한 차림의 사리를 몸에 걸치고 왼쪽 어깨에는 조그만 십자가를 단 테레사가 각국 대표들을 향해 나지막하지만,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마더의 연설이 열기를 띰에 따라 조그만 마더의 체구가 점점 크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시선은 세 가닥의 파란색 줄이 쳐진 마더의 사리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여러분이 만약 고통받는 형제자매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린다면 하는 일이 더욱 쉽게 여겨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미소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가난한 사람이 굶어 죽었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여러분과 내가 그 사람에게 빵과 옷과 사랑과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러나 그런 이들을 너무 나무라지는 맙시다. 아무리 설교를 한다고 해도 금방 이루어질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빗자루를 들고 누군가의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십시오. 그러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니까요."

마더는 여기까지 단숨에 이야기한 다음, 회의 주최국인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 쪽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유엔은 해마다 여러 훌륭한 결의안을 채택합니다만 대부분 실행에 옮겨지지 않더군요. 미스터 트뤼도! 총리께서도 좀 더 검소한 옷차림으로, 좀 더 조촐하게 식사를 해주세요. 그러면 국민들도 따라서 행할 것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답니다!"

트뤼도 총리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움찔하는 몸짓을 취했다. 조용했던 회의장에 갑자기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 박수는 총리의 표정에 이내 폭소로 바뀌었다. 마더의 연설을 끝났지만, 회의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감동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튿날 총리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청바지 차림으로 회의장에 나타났다.

▲ 버려져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아이를 따듯한 물로 정성스레 닦아주는 수녀. ⓒ 오키 모리히로


▲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평화의 마을’. 병에 대한 편견과 차별 때문에 가족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여기서는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 오키 모리히로


1997년 테레사 수녀의 임종은 그녀의 보살핌을 받던 인도 콜카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고도 남았다. 모든 사람은 그녀를 진심으로 애도했다. 그것은 테레사 수녀의 삶 자체가 보여준 희망, 인간에게 반드시 있으리라 믿어지는 또 다른 한 면 '숭고함'이 저물어 가는 데 대한 아쉬움이었다.

국민을 위한 진짜 헌신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다. 사랑하려거든 목숨을 바쳐야 한다. 진정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숭고한 희생도 없다. 생생한 사랑의 기록인 테레사의 사진과 오키 모리히로의 글은 보는 것 자체가 훌륭한 기도이고 뉘우침이며 우리가 두고두고 본받아야 할 이웃 사랑의 바이블이다.

…만일 우리에게 그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참으로 더럽고 추악한 존재였을 것이다. 다행히 그분께서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아름다워졌으며,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도 인간이 지녀야 할 품위와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본문 '마더 테레사에 대하여' 중에서

그러기에 테레사 수녀의 희생은 우리에게 단순한 사색거리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사랑하려거든 테레사 수녀처럼…. 그분이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아름답다. 그분은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리라.

국민을 위한 참사랑과 헌신, 보람과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설사 국민들이 잊고 있다 해도 찾아서 지켜야 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이리라.

▲ 이러한 친절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임종자의 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친절에 눈물로 감사를 표할 뿐이다. ⓒ 오키 모리히로


덧붙이는 글 <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오키 모리히로 지음/정창현 옮김/해냄/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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