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별미 콩물에 담긴 목포의 눈물
[자전거 여행] 목포의 구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해안도로 여행
▲ 목포의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나있다. ⓒ 김종성
목포는 국도 1, 2호선의 기점이자 호남선 기차의 시발역으로 출발과 시작의 땅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수탈 1번지로 일제의 잔재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항구 도시 목포는 일제 강점기에 3대 미항 중의 하나였다.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 다도해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만큼 바다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도시다. 따라서 목포에서 가볼 만한 곳은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목포에 왔다가 목포 해안도로가 자전거로 달리기 참 좋다는 관광 안내소의 친절한 직원 말에 솔깃해서 예정에도 없는 목포 자전거 여행을 했다. 목포의 특구라 불리는 해안도로로 구도심인 북항에서 신도심 평화광장 (북항~유달산~목포 수산시장~삼학도~갓바위~평화광장~갈대숲 무성한 옥암동 수변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목포의 바다에 기댄 주민들의 삶과 여러 볼거리가 즐비하다.
안개 뒤로 숨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목포대교
▲ 목포 앞바다에 끝없이 이어진 것만 같은 목포대교, 장장 3km의 긴 다리다. ⓒ 김종성
제일 먼저 반기는 곳이 북항이다. 북항은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나오면 바로 목포의 초입에 있으며 항구와 횟집들은 물론 유명한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 영암 F1 경기장으로 연결되는 목포의 명물 목포대교가 시작되는 곳이다. 다리 길이가 3km나 되는 바다 위 자욱하게 낀 안개 뒤로 떠있는 듯 보이는 길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목포대교를 보니 문득 저 다리 위를 자전거 타고 한 번 달려보고 싶었다.
바닷가의 작은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아저씨에게 목포대교 들머리 길을 물어보았더니 아쉽게도 저 다리는 자동차만 다닐 수 있단다. 2012년 생겨난 이후 다리 위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 사람의 접근이 더욱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기자가 사는 서울의 마포대교에도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목포도 서울처럼 살아가기가 팍팍하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안개에 휩싸여 몽환적으로 보였던 목포대교가 처음과 달리 조금은 음울하고 음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 힘들지 않은 경사의 언덕길을 오르면 목포의 주산(主山)인 유달산과 유달산 유원지가 수고했다는 듯 나타났다. 노령산맥의 마지막 봉우리라는 유달산은 목포 앞 바다의 삼학도와 함께 목포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라고 한다. 해발 288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기암절벽에서 풍기는 산세가 아름다움과 위엄이 함께 느껴졌다.
▲ 길가에 가득 쌓여 있는 생선 담는 나무 상자들, 수산시장과 부두가 가까이 있다. ⓒ 김종성
▲ 배고픈 시절 목포 사람들의 눈물이 들어 있는 '콩물'. ⓒ 김종성
생선을 싣는 나무상자들이 길가에 보이고 어디선가 짭조름한 냄새가 풍긴다 싶더니 목포항과 그 앞의 수산시장이다. 나무 상자들을 지키는 백구 한 마리가 다행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볼 뿐 덤벼들지 않았다. 1908년 목포항이 개항하면서 부둣가 어물전으로 시작된 목포종합수산시장은 원래 동명동 어시장이 예전 이름이며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건어물과 활어등 각종 수산물들이 모두 다 있는 목포를 대표하는 종합수산시장이다.
특히 여행자의 눈길을 끈 건 목포의 특산물인 홍어들이었다. 1300여 점포 중에 100여 개가 홍어 전문 점포일 정도로 귀한 홍어들이 흔하게 보였다. 평소엔 피하고 싶던 생선 비린내도 항구 풍경과 어우러져 오히려 자연스럽고 싱싱한 내음으로 느껴졌다. 모름지기 바닷가에서는 짠 소금냄새와 비릿한 생선 냄새가 흘러 나와야 제 격이지 싶다.
점심밥을 먹으려고 어느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백반 집을 물어 보았더니 마침 점심식사를 하려던 참이라며 같이 가자고 한다. 백반집이 1인분은 안 되는 곳이 많아 기사 아저씨와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계란찜, 메추리알, 나물반찬 등 집 밥 같은 한상에 양은 조금이지만 수산시장에서 보았던 홍어가 나와 더욱 좋았다.
걸쭉한 막걸리가 생각나는 말투의 택시기사 아저씨에게서 목포의 음식에 대해 얘기를 들었는데 아저씨의 얘기를 재미나게 들으며 밥을 먹다보니 어느 새 밥공기 두 그릇이 뚝딱이다. 목포 인근에서 유독 많이 잡히는 세발낙지는 다리가 가늘다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다리가 세 개'라는 짐작은 오해다. 목포에선 '갯벌 속의 인삼'으로 통할 정도로 원기회복에 좋은 최상의 건강식이다.
옛날(조선시대)엔 전국적으로 풍요로웠던 민어가 왜 이제는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생선이 되었는지, 어쩌다 홍어를 삭혀 먹게 되었는지, 왜 세발낙지는 다른 낙지에 비해 그토록 연하고 맛이 좋은지 재미있고 생생한 전라도 사투리로 잘 알려 주셨다. 특히 쌀 부족으로 자주 먹게 된 콩물이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목포엔 어디나 '콩물'이라는 음식을 하는 식당이 종종 눈에 띈다, 오늘날처럼 콩물은 별식이나 별미가 아니라 그야말로 쌀이 없어 흘리던 눈물이 섞인 음식이었다고. 홍탁삼합, 민어회, 세발낙지, 꽃게살무침, 갈치조림 등 목포가 자랑하는 다섯 가지 음식인 목포 5미가 유명한데 콩물은 목포6미로 정해도 충분한 자격이 있을 듯 싶었다.
되살려낸 목포의 상징 '삼학도'
▲ 서해안 간척공사로 사라졌다가 힘들게 다시 복원한 목포의 상징 삼학도. ⓒ 김종성
목포 수산시장은 자연스럽게 삼학도(三鶴島)로 가는 길로 이어진다. 서해안에 흔히 했던 간척공사로 추억의 섬이 됐던 목포의 삼학도가 얼마 전 드디어 시민들의 품에 안겼다. 10여 년 복원 공사 끝에 그 옛날 3개 섬이 모습을 드러낸 것. '목포의 상징'으로 통했던 삼학도는 동쪽 앞바다에 나란히 있던 3개의 섬이었으나 1968~73년 간척공사로 뭍으로 변한 뒤 그동안 지명만 남아 있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 초부터 무려 1243억 원을 들였다니, 무리한 간척사업 개발의 대가를 나중에 다시 치르게 된 셈이다. 섬 자체가 파헤쳐져 평지가 돼버린 삼학도를 되살려내기 위해 흙과 자갈로 원형에 가깝게 봉우리를 만들고, 그 사이에 길이 760m에 이르는 물길을 냈다. 물길을 따라 오솔길과 자전거 도로를 놓아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 좋았다. 바닷가에 사는 소나무 곰솔 등 나무들도 많이 심어 놓아 주민들이 산책이나 운동 삼아 많이 찾고 있었다. 목포 어린이 바다 과학관과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도 들어서 있다.
삼학도 중턱엔 가수 이난영이 수목장(葬)으로 잠들어 있는데 그의 노래 <목포의 눈물>등을 들을 수 있는 음악장치가 돼 있어 한 번 들어 보았다. 특유의 콧소리와 애간장을 끊어내는 노래에 일제 강점기 때 겪은 한과 호남의 아픔이 녹아있는 듯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사랑
-〈목포의 눈물(1945년)〉가운데
삼학도는 유달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한 젊은 장수를 그리던 세 처녀가 그리움에 지쳐 죽은 뒤 학으로 환생했으나, 그 장수가 이를 모르고 쏜 화살에 맞아죽어 그 자리에 섬 3개가 솟아올랐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갈대숲길이 이어진 옥암동 수변생태공원
▲ 오래 세월 바람과 파도가 함께 만들어낸 작품 갓바위. ⓒ 김종성
▲ 13만4000㎡(4만평) 규모의 너른 습지 옥암동 수변생태공원. ⓒ 김종성
해안도로변에 자리하여 바다를 보며 야외 마당에서 쉬어가기 좋은 자연사박물관 앞을 지나가는데 박물관 뒤로 펼쳐진 높지 않은 산의 형세가 자꾸만 눈길을 끈다. 낮은 산이지만 온통 바위로 이뤄진 바위산의 풍채가 참 멋지다. 입암산(121m)이라는 이 바위산은 목포 해양 박물관을 비롯한 국립 해양 박물과, 목포 문학관, 목포 문화 예술회관 등 목포의 문화 명소들을 품고 있는 산이다. 여기에서 입(笠)은 삿갓을 뜻하는데 아마도 이 산 끄트머리에 갓바위가 있어 그리 부르는 모양이다.
친근하고 해학적인 모양의 '갓바위'를 산이 아닌 바닷가에서 곧 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 두 사람이 나란히 삿갓을 쓰고 있는 재미있는 형상을 한 한 쌍의 바위로 천연기념물 제500호다. 예전엔 배를 타야만 그 기괴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2008년 생겨난 '갓바위 해상보행교'를 걸으며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바위가 침식되어 변해 생겨난 자연의 작품이 참으로 기괴하기도 하고 신묘한 기분이 들었다.
밤이면 바다 위로 해양음악 분수쇼가 펼쳐지는 평화광장 또한 해안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져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타지에서 그 동네 주민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언제나 이채롭다. 길을 따라 가로등이 촘촘히 서있어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밤나들이 하기도 좋겠다.
평화광장의 끝까지 달려가 보니 바다를 가르며 길게 만든 영산강 하굿둑이 나타났다. 뚝방 너머로 건너가면 목포역 관광안내소 직원이 꼭 들려보라고 알려준 옥암동 수변생태공원이 나타난다. 13만4000㎡(4만평) 규모의 너른 습지로, 곳곳에서 노니는 오리들과 수초와 갈대로 가득하다. 한 습지 사이로 난 나무 산책로가 한참을 이어졌다. 주변 풍경이 한 눈에 봐도 해질 무렵의 아름다운 낙조가 기대되는 곳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것만 같은 습지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남창천과 함께 영산강 자전거길이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지난 5월 6일에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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