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叫울부짖을 규(叫)는 입(口)와 얽힐 규(糾)가 결합된 형태로 축문을 신이 자주 강림하는 곳에 얽어매어 놓고 소리 내어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 漢典
새가 우는 소리(鳥叫聲)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평상시에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소리인 '콜(call)'과 짝짓기 철이 되어 상대를 유혹하는 소리인 '송(song)'이다. 서로 같은 종이라야 '송'에 유혹되어 반응을 보이고 짝짓기도 이뤄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한 새는 다른 새의 '송'을 흉내 내어 자신과 다른 종의 새와 짝짓기를 한다고 하니 흥미롭다. 그래서 마다가스카르에서는 가끔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새가 출현하기도 한다고 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어쩌면 우리와 다른 언어인 '송'을 배워 새로운 세계의 새들과 교류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울부짖을 규(叫, jiào)는 의미 요소인 입(口)와 소리 요소인 얽힐 규(糾)가 결합된 형태이다. 축문을 신이 자주 강림하는 곳에 얽어매어 놓고 소리 내어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나 짐승이 소리 내어 우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이름을 부르거나 사역의 의미로도 쓰인다.
과거 중국에서는 사람이 병이 들면 그 사람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 죽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 병든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그 영혼이 다시 몸 안으로 돌아 와 병이 낫는다고 믿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규혼(叫魂)'이라고 한다. 위화(余和)의 소설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에 보면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이 하소용과 바람을 피워서 낳은 첫째 아들 일락이 그의 친아버지인 하소용이 병에 걸려 위독한 상황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 아버지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과 땅이 제대로 된 호응을 보여주지 않을 때(叫天天不應, 叫地地不靈)도 많았을 테지만 의지할 곳 없는 인간이 신에게 그 고통을 간절히 호소하는 것(叫苦連天)은 고대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절규'이자 또 최선의 '위안'이었을 것이다.
"신은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시련만을 내려준다"고 하지만 때로 "벙어리더러 말을 전하라하고 장님더러 길을 안내하라(叫啞子傳話, 叫瞎子引路)"하는 것같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때로는 주어지기 마련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에게 생기는 모든 감정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간에 모두 신적인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식 영역을 넘어서 의지와 무관하게 감정이란 것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뭉크의 그림 <절규>처럼 울부짖음은 극도의 절망에 선 인간이 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마지막 몸짓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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