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도 했는데... 미국도 사과해야 한다
제주 4.3항쟁 66주기를 맞이하며... 씁쓸한 4·3 첫 국가기념일
▲ 다랑쉬오름제주 오름의 권좌라고 불리는 '다랑쉬오름', 이 오름 근처에 있던 다랑쉬마을은 제주 4.3항쟁 기간동안 초토화되어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 김민수
오늘은 제주 4·3항쟁 66주기 추모일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4·3 특별법'을 제정한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공식사과를 했다. 하자만,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무관심으로 일관함으로써 마치 '제주 4·3항쟁'이 불순한 세력들에 의한 반란인 것처럼 호도하는 역할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처음 치르는 추모식에 박근혜 대통령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무총리조차도 국회일정을 핑계 삼아 참석하지 않는다는 보도에 비난 여론이 일자, 참석하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제주 4·3항쟁은 광복 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 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되어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이었다. 미 군정은 이 과정에서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극우반공청년단체를 파견하여 제주도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4·3항쟁 당시 우익단체로는 대동청년단, 서북청년회, 대한청년단, 향보단, 민보단, 청년방위대, 특공대, 학생연맹 등이 있었다. 4·3항쟁 당시 사망한 우익단체원들은 정해진 절차를 거쳐서 국가로부터 국가유공자나 유가족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 당시 억울하게 희생되었던 제주도민과 유가족은 지금까지도 남로당과의 연관설 등으로 좌익 혹은 불순한 세력 등으로 매도되고 있는 현실이다.
▲ 용눈이 오름경찰과 보수우익단체들의 초토화작전으로 도민들이 피할 곳이라고는 한라산과 오름 외에는 없었다. ⓒ 김민수
분단의 상황에서 이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며, 지금까지도 보수우익 단체는 4·3 희생자들을 불순한 세력으로 몰아가는 데 여념이 없다. 여기에 정치권도 편승하여 이익의 방편으로 삼아 4·3항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어렵게 하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도민과 유족들에게 지속하여 아픔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 이후 4·3항쟁의 진실이 밝혀지는가 싶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제주 4·3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첫 번째 추모일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제주 4·3항쟁에 대한 인식이 이명박 정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수우익은 왜 그토록 제주 4·3항쟁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까? 그들은 진실규명이나 역사의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경우에는 6·4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라, 행여라도 적극 4·3항쟁 추모식에 참여하는 행보를 보일 때 보수층의 이탈을 우려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참석하자니 보수층의 이탈이 우려되고, 참석하지 않자니 그 반대편의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적당하게 시늉만 하는 게 박근혜 정부는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제주의 오름아무리 낮은 오름이라도 멀리까지 전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숨을 곳조차 없는 오름에서조차도 그곳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폭도로 몰려다. ⓒ 김민수
아직도 제주 4·3항쟁은 역사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일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미국의 사과일 것이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미 군정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으니, 제주 4·3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일차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6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식사과는 있었을지언정 미국의 사과는 없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비단 제주 4·3항쟁에 관해서뿐 아니라,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미국)의 이익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수우익은 '친미는 애국'이라는 식의 천박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나라는 보수우익이 실세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허세를 부리지만, 결국은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치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제주 4·3항쟁 66주기 추모식을 대하는 정치권의 동향(여야할 것 없이)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주 4.3항쟁의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와 억울한 희생자들과 그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표'를 구걸하는 데만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제주 4·3항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서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또 그런 모습을 보임에도 그런 정치인들에게 한없는 지지를 보내는 국민의 정치의식 역시도 민망할 뿐이다. 아직, 우리 역사가 바로 가려면 멀었다는 자괴감은 여기서 오는 것이다. 국민이 깨어있지 못한데, 어찌 역사가 바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다랑쉬 오름의 가을제주의 오름은 어느 계절이나 아름답고, 어느 계절이나 슬프다. ⓒ 김민수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여 제주도에는 368개의 작고 큰 오름이 있다. 특히 도민의 피해가 컸던 동부지역엔 제주 오름의 권좌라 할 수 있는 다랑쉬오름을 위시하여 많은 오름이 있다. 경찰과 보수우익의 무차별적인 폭력 앞에서 생존을 위해 피할 곳이라고는 한라산과 오름 외에는 없었다.
그들이 그곳으로 피하자, 지속해서 무장봉기하기 위해 그곳으로 숨어들었다며 폭도로 몰았으며 토끼몰이식으로 도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그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을 좌익으로 몰고, 불순세력으로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 오름을 오르는 아이들오름으로 소풍나온 아이들, 저 아이들은 이 오름에서 자행된 학살을 알고 있을까? ⓒ 김민수
제주 4·3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억울함을 드러내놓고 토로하지 못한다. 억울함의 세월이 먹먹한 까닭도 있지만, 아직도 이 나라가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피해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까지도 다 털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비정상화의 정상화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국민의 화합을 위해서 만사 제쳐놓고 그 행사에 참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랬다면 정치적인 행보였다고 할지라도 많은 지지를 받았을 것이며, 억울하게 죽어간 제주도민의 한을 조금이나마 씻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여야를 막론하고 제주 4·3항쟁 66주기 추모식에 참여한다는 소식이다. 그 소식이 반갑기도 하면서, 하필이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 구걸을 하는 정치의 장으로 변질한 듯하여 심히 유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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