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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려던 순간 해고... 마흔여섯 사내의 '눈물'

[인터뷰] 5년만에 '해고무효 대법원 승소'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 송기웅 지회장

등록|2014.04.04 19:21 수정|2014.04.04 19:21

▲ 4월 1일 승리보고대회 후 회사 앞 기념촬영 ⓒ 금속노조 경기지부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 다 큰 사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면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나, 우리 조합원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나, 너무 걱정이 돼서…."

말끝이 울음 속에 묻혔고, 그는 그렇게 쭈그려 앉아 한참을 흐느꼈다. 장장 5년을 끌었던 포레시아 정리해고 노동자 19명의 싸움이 마무리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프랑스계 자동차부품업체인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코리아는 2009년 5월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정리해고 당시 회사의 경영상태가 고용안정합의를 파기할 만큼 불안하지 않았고, 정리해고 이후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등의 정황이 정리해고를 하여야 할 만큼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해고무효 판결을 내렸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코리아지회(아래 포레시아지회) 송기웅(46) 지회장을 지난 2일 이른 아침, 벚꽃 흐드러진 경기도청(수원시 매산로) 앞에서 만났다. 경기도청은 포레시아 해고자들이 외국인 투자기업인 포레시아에 대한 경기도의 관리 감독을 요구하며 꼬박 3년 동안 선전전을 벌인 곳이다. 단 한 번도 거른 적 없던 매주 수요일 출근 선전전 마지막 날, 송 지회장의 심경을 들어봤다.  

- 참 오랜 시간이었네요. 해고투쟁은 오늘 선전전을 끝으로 마무리 되는 건가요?
"여기 도청 앞 선전전은 오늘이 끝이네요. 3년 동안 했는데 참 오래했네요.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와서 시민 여러분께 고맙고요. 여기 마치고 영등포로 가서 정리해고 철폐 선전전도 마지막으로 하려고요. 시그네틱스, 풍산, 콜트-콜텍 동지들이랑 함께 하던 선전전인데, 오늘은 시민들에게 떡을 나누어 드릴 거예요. 농성장에서 밥 해먹으라고 지원해주신 쌀이 남아서 떡을 했어요."

- 대법원 판결 이후 제일 먼저 누구에게 이 소식을 알렸나요?
"집에 팔순 노모가 계셔요. 어머니한테 제일 먼저 전화드렸어요. '아이구, 아들이 잘했다' 그러시대요. '내가 밥을 안 먹어도 신이 난다'고 하시면서요. 집에 들어가니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고생했다', '고생했다'라고만 하셔요. 며칠 전에 어머니가 꿈을 꾸셨는데 그동안 엄마 손 한번 안 잡아줬던 아들놈이 손을 꼭 잡고 '어머니 고맙습니다' 하더래요. 좋은 꿈 같아서 3일 동안 아무한테도 말을 안 하셨대요. 꿈이 날아갈까봐."  

- 물론 고마운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특별히 감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저희 소송 맡아주셨던 새날법률사무소 김기덕 변호사님요. 어제 같이 식사했는데, 그동안 무슨 돈으로 살았냐고 제가 물었어요. 포레시아 이겨서 밀린 집세 낼 수 있게 됐다고, 우리더러 우수고객이래요.(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동지들이 참 고맙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투쟁하고 지원해주시고, 생사고락을 함께 했으니까요."

2009년 정리해고... 대법원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인정 안 돼"

▲ 4월 2일 경기도청 앞, 마지막 선전전 ⓒ 금속노조 경기지부


- 말이 5년이지, 쉽지 않은 시간이었잖아요. 해고 기간 동안 가장 힘들거나, 혹시 포기하고 싶던 때가 있었나요?
"조합원들이 힘들어할 때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들한테 괜한 희망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회사가 '송기웅 저놈은 회사 안 다녀도 먹고살 만한 놈이다. 당신들은 이용당하는 거다'라고 이간질시키고, 사실 그때 현장 조합원들이 많이 떨어져나갔어요.

인원이 조금 남으니 특히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이 회사한테 매일같이 시달리고, 기업노조와 차별 당하고, 임금도 우리 조합원들만 5년 동안 안 오르고…. 그래도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힘내라' 다독거려주고. 제 하소연을 잘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다시 힘내고, '그래, 해보자'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금속노조 내에서도 그렇고 지역 노동계에서 송기웅 지회장은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 있어요. 주변에 적이 없다고 할까? 하지만 솔직히 그런 모습이 전부는 아닐 텐데, 스스로 인간 송기웅을 평가한다면요?
"2009년 5월 정리해고 되고 나서 첫 집회를 했는데 그때 제가 그랬거든요. '끝까지 가겠다. 약속은 지키겠다'고요. 배신하고, 당하는 일들도 주변에 많고, 자기 잇속들도 먼저 차리고, 또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 당하는데 저는 그런 걸 싫어해요. 사람들과의 의리를 중시하는 것 같아요. 원래 낯을 가리는 편인데, 대신 한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가죠."

- 결혼 안 하셨죠?
"못 한 거죠.(웃음) 해고당하기 전엔 소개도 좀 들어오고, 저도 결혼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딱 해고당하고 나서 소개도 안 들어오고, 이렇게 5년이 지났네요. 어머니랑 같이 사니까 아무래도 어머니가 빨리 장가가길 바라시죠."

- 가족들은 그동안 많이 도와주셨나요?
"가족들에 관해서 전 행복한 편이에요. 다들 저를 믿고 지지해주셨거든요. 큰 누이, 작은 누이가 있는데, 재판 이긴 날 너무 좋아서 밥도 안 먹었대요. 어머니한텐 처음 해고되었을 때 딱 한 번 얘기했어요. '아들놈이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니 믿어주십시오' 하고요. 그동안 속상하고 말리고 싶으셨을 텐데, 정말 가족들이 단 한 번도 내색을 안 했어요."

- 이번 판결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리해고 건이 이렇게 승소한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2007년 처음 구조조정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희망퇴직을 했고 당시엔 잘 대응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2008년 공장 이전을 한다고 해서 회사에 즉각적으로 고용보장확약서를 요구했죠. 처음엔 회사가 '회사한테 해고도 하지 말라는 소리냐'며 못 써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끈질기게 요구했어요. 그래서 공장이전 합의서에 고용보장확약 내용을 넣을 수 있었죠. 판결문에서 해고가 부당하다고 하는 주요한 근거가 그 확약서예요."

-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을 꼽자면?
"우선 현장에서 회사가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는데도 금속노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조합원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처음엔 기업노조와 금속노조(산별노조)가 반반이었는데, 저희가 해고된 이후 많은 분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에 가입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기업노조 조합원이 200명이 조금 넘고, 저희 조합원이 현장에 7명 남았어요.

그리고 해고되었던, 함께 싸웠던 조합원들이요. 그 우여곡절들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가 있겠어요. 그간 상처들이 해소가 되려나…. 아마 안 될 거예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 큰 어른들이 스스로 껴안고 극복해야 할 것들이 있죠. 각자의 몫이 있는 것 같아요."

"'고생했다' 한마디에 담긴 수백 가지 의미 잘 알고 있습니다"

▲ 승리보고 대회 후 그간 연대해온 분들과 공장 앞 농성장에서 뒤풀이. 오른쪽 첫 번째가 금속노조 경기지부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코리아지회 송기웅 지회장. ⓒ 금속노조 경기지부


- 현장 복귀는 언제 하게 되나요?
"4월 10일요."

- 현장 안에도 해고되지 않았던 조합원들이 있죠?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는 복수노조, 소수노조잖아요. 그 분들도 현장에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판결 이후 뭐라고 하시던가요?
"현장이 난리가 났었대요. 아무래도 누구보다 좋았겠죠. 남자들이라 표현이 좀 인색해요.(웃음) 지회장에게 한 번도 '우리 힘들었요'라고 말을 안 한 사람들이에요. 내색은 안 했지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바깥에 있었던 저에게 너무 큰 짐이었어요. 현장의 차별 문제만큼은 해결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하죠."  

- 복귀하셔서 할 일이 많으시겠네요.
"기계에서 손을 놓은 지 너무 오래돼서, 일단 열심히 일해야죠.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탄압하지 않으면요. 조직을 해야죠. 그리고 우리 조합을 탈퇴했던 분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그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회사가 만들어 놓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분들이 더 많은 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가족도 있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조합원들에게도 그랬어요. '그들이 우리를 배신했다 생각하지 말아라. 우선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요. 그것이 바깥에서보다 더 어려운 투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여전히 정리해고로 고통받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분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지금도 열심히 투쟁하고 계시는 풍산, 쌍용차, 콜트-콜텍 동지분들에게 관심이 더 가야 할 시기에 저희가 이긴 것만 너무 떠들어대는 건 아닌가 죄송한 마음입니다. 답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법과 제도가 바뀌면 좋겠지만 그것이 당장 힘들다면 서로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외롭지 않게 보듬어주고. 그 힘으로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승소 판결에 같이 정리해고 철회투쟁 하시던 분들이 '고생했어요' 한마디 해주시는데,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수백 가지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질기게 싸워서 꼭 민주노조 사수하겠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투쟁하시는 동지들에게 큰 선물 드린 거죠?(하하)"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돈된 그의 대답에, 애초에 생각했던 만큼 인간미 물씬 나는 인터뷰는 일단 실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에 포레시아의 전신인 창흥정밀에 입사해 자칭 '날라리'로 살아오다가 2004년 처음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는 사람이 10년 만에 '투사'가 된 현실은 감동적이기도, 한편으로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 사회는 얼마나 더 많은 투사를 만들어낼까.

가뭄에 단비 같은 포레시아지회의 정리해고 무효판결이 이후 계속될 쌍용차, KEC, 풍산마이크로텍 등 해고무효 소송 판결에 순풍으로 작용되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엄미야 기자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상근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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