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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쌍용차지부장이 책 팔러 다니는 이유

<내 안의 보루> 고진 작가와 함께 ... "노란봉투 관심에 감사"

등록|2014.04.08 10:31 수정|2014.04.08 10:31
자동차를 만들던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요즘 책을 팔러 다닌다.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책 <내 안의 보루>(컬처앤스토리 간)를 들고 소설을 쓴 고진 작가와 함께 특히 노동현장을 찾아다니고 있다.

한 전 지부장은 7일 오후 고 작가와 함께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찾았다. 매주 월요일 열리는 금속노조 경남지부 지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그동안 투쟁 경과를 설명한 뒤 책을 소개하고 사인해 전달했다.

<내 안의 보루>는 고진 작가가 쓴 쌍용자동차 파업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특히 파업 투쟁 속 두 남자가 그려졌는데 그가 한상균 전 지부장과 김혁 활동가다. 서로 '보루'가 된 두 남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소설로 그려 놓은 책이다.

▲ 한상균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지도위원과 <내 안의 보루>를 쓴 고진 작가가 7일 오후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찾아 책에 서명을 하고 있다. ⓒ 윤성효


고진 작가는 출판 인세 전액을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 당하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아름다운재단의 긴급지원 사업 '노란봉투'에 기부하기로 했다. '노란봉투'는 연예인 이효리씨가 참여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 전 지부장은 '노란봉투'에 많은 시민이 참여해 고맙다고 인사했다.

"노란봉투의 손잡고 캠페인은 한국 사회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노란봉투는 시민의 사회참여에 대한 또 다른 마중물이 될 것이다. 다른 작가들도 책을 낼 때 릴레이 기부로 이어져 이런 분위기가 영화나 스포츠계로 확산되었으면 한다."

한 전 지부장은 "차만 만들다가 책을 팔러 다니니까 힘들다, 쉽게 책을 사달라고 말을 못하겠다"며 "책 사달라고 호소하고 쌍용차 투쟁에 조언도 받을까 싶어 전국 노동 현장을 돌고 있다"고 밝혔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사랑의 김밥운동'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해고자들은 현재 쌍용차 평택공장 안에서 일하는 '비 해고자'들과 접촉을 늘려가고 있다.

해고자들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소속이지만, 공장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업별노조인 쌍용차노조를 별도로 만들었다.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별노조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 전 지부장은 어느 정도 성과도 있다고 소개했다.

"시민단체가 '노란봉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사랑의 김밥운동'을 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투쟁으로 상처도 컸다. 구속되었다가 출소하고 보니 심각하더라. 노동자들끼리 서로 적이 되어 있었다. 자본은 그 뒤에서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것과 같다.

먼저 우리가 공장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한테 화해의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속 접촉을 넓혀가야 한다.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고 나면 우리야 기분이 좋지만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은 마음을 여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김밥을 말자고 생각했다."

차만 만들던 노동자들이 김밥 만들기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전 지부장은 "어느 날 김밥을 만들어 노동자들과 나눠 먹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굉장히 힘들었다. 김밥을 만들면서 누가 사 주겠느냐는 불안감도 생겨났다"고 소개했다.

"감동이었다. 김밥을 만들어 놓았더니 10여 분 만에 동이 났다. 처음에는 400개를 했다가 600개, 900개까지 팔았다. 처음에는 시민단체가 싸다가 나중에는 신부, 수녀, 스님들까지 참여했다. '사랑의 김밥운동'으로 공장 안 노동자들한테 조금 더 다가갔다고 본다."

▲ 한상균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지도위원과 <내 안의 보루>를 쓴 고진 작가가 7일 오후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찾아 김재명 본부장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구속된 김정호 전 지부장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받았는데 평택공장 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것. 한 전 지부장은 "정문에서 탄원서를 받는데 줄을 서서 하더라"며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 못할 정도였다, 그 때는 선전물을 나눠주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노(금속노조 지부)-노(기업별노조 쌍용차노조)-사(회사) 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 자존심을 다 버린 지 오래다. 솔직히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라고 하면 그렇게 할 생각이 들 정도"라는 말도 했다.

해고자들은 지난 2월 7일 해고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지만 사측이 즉각 상고했다. 한 전 지부장은 "노조나 회사가 어떤 판결이 있고 나면 숨 고르기를 하고 난 뒤에 입장 발표를 하는 게 통상적인데 이번의 경우 사측은 숨도 쉬지 않고, 판결문도 받아보지 않고 바로 상고하겠다고 했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는 게 있는데 그렇게 한 것은 무책임을 보여 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측은 항소심에서 패한 뒤 변호인단을 대폭 교체했다"며 "해고무효소송 항소심 판결이 징계무효소송이나 손배가압류 소송 등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 전 지부장은 "정리해고가 잘못됐기에 노동자들은 싸울 수 밖에 없다. 법원이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벗겨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은 힘든 생활을 보내고 있다. 2012년까지 쌍용자동차 평택·창원공장 해고자와 가족 등 2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망했다.

그는 "한때는 죽지도 못하고 사는 처지가 한탄스러웠다"며 "많은 고비마다 시민의 연대와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도 쌍용차 관계자들의 죽음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연대가 늘어나면서 2012년 24명을 기점으로 죽음이 멈췄다. 이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의미가 있고, 그런 힘 때문에 버텨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5년 해고 생활, 100명이 넘는 구속과 연행, 그런 속에 가정이 파탄나는 상황을 맞았다"며 "이 와중에 '노란봉투' '사랑의 김밥운동' 등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도 생겨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진 작가는 "노동자와 관련된 소설은 90년대 중반 이후 맥이 끊겼다, 독자들은 이 소설이 반갑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80~90년대 노동자 소설이 투쟁을 다뤘다면 이 소설은 실제 투쟁을 담당한 두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의 고뇌를 주로 다뤘다"며 "막상 자기한테 이런 일이 닥칠 때 어떻게 할지 참조가 된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인상 깊다"고 밝혔다.

▲ 한상균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지도위원과 <내 안의 보루>를 쓴 고진 작가가 7일 오후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찾아 책에 서명을 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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