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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이는 통쾌한 복수? 그런 영화 아니에요"

[인터뷰] 영화 '방황하는 칼날' 정재영 "딸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이 중요해"

등록|2014.04.10 10:02 수정|2014.04.10 10:02

▲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아버지 상현 역의 배우 정재영이 7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충무로 대표 배우 정재영(44)이 4월 두 편의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과 30일 개봉하는 사극 <역린>이다. 정재영은 "둘 다 보면 너무 좋지만 여건이 안 되면 한 편이라도 꼭 보시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방황하는 칼날>은 고생을 너무 많이 했고 굉장히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고, <역린>은 현빈을 비롯해서 굉장히 매력적인 배우들도 많이 나오고 대작이니 그에 걸맞게 보는 재미가 있어요. 둘 다 제 자식 같은 작품이죠."

"복수하려는 마음보다, 딸 잃은 아버지의 마음에 집중"

정재영"가해자를 죽이는 게 중요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은 애초에 그런 일이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가 마중을 나갔다면 납치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회환과 후회 등이 복합된 미안함일 것입니다." ⓒ 이정민


<방황하는 칼날>은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정재영이 맡은 이상현은 성폭행당한 딸을 잃고, 우연히 마주친 그 가해자를 죽인 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역할. 딸의 주검 앞에서, 그리고 고교생 성폭행 가해자와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 등 여러 어려운 감정을 유연하게 연기해냈다.

"<방황하는 칼날>은 <아저씨>의 원빈처럼 머리 빡빡 깎고 통쾌하게 복수를 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원빈은 이웃집 딸내미를 구하려고 그렇게 복수를 했으니, 딸을 떠나보낸 저는 쑥대밭을 만들어야했지만, <방황하는 칼날>은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예요. 잔잔한 듯하면서 리얼리티를 살려내 이야기에 동화되도록 하고 있죠.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지만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사실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디테일하게 살려 냈어요."

극 중 이상현은 딸의 성폭행 가해자 중 한 명을 우발적으로 죽이고, 나머지 한명을 계속 쫓는다. 장총을 들고 혹한의 추위 속에 눈으로 뒤덮힌 강원도 곳곳을 뒤지며, 그가 묶고 있는 펜션을 찾아 나선다. 가해자를 맞닥뜨리고 장총을 겨누는 이상현. 하지만 그 안에는 총알이 없었다. 누굴 죽이려는 마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해자를 죽이는 게 중요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은 애초에 그런 일이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가 마중을 나갔다면 납치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회환과 후회 등이 복합된 미안함일 것입니다. '불쌍한 내 딸을 기억해 달라'는 쪽이 더 중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로서 죄책감이 커서 미안함에 가해자를 찾아 나서는 거죠."

정재영"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지금만큼의 열정이 있다면 그 열정이 없어지지 않게 유지하고 하던 데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열정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 이정민


정재영은 11살, 15살 두 아들을 둔 아버지다. 그는 자식한테 가장 미안했던 때로 큰 아들한테 회초리를 들었을 때를 회상했다.

"작은 애는 안 때렸는데, 큰 애는 어렸을 때 좀 때렸어요. 저도 부모로서 서투를 때라 답답하고 욱하는 심정에, 아이가 거짓말하고 말 안 들었을 때 회초리로 몇 번 때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저학년인 애가 뭘 알았겠어요. 때린다고 들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저도 서툴러서 말로 잘 대화를 못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가면 첫째 애는 사춘기가 됐는데 반항도 덜하고, 둘째는 첫째에 비해서 훨씬 많이 까불고 공부도 못 하는데 첫째 때의 경험이 있어서 둘째는 한 대도 안 때렸어요. 그런 면에서 둘째는 혜택을 본 거 같아요(웃음). 암튼 첫 애한테는 부모로서 서툴러서 미안한 점이 있죠."

정재영이 학창시절에 부모님에게 잘 못했던 기억은 무엇일까. 정재영은 "엄마가 뭘 알아!"라고 대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작품한다는 핑계로 열흘 씩 집에 안 들어갔었어요. 열흘 만에 들어가니까 그때 맞았죠. 어렸을 때는 빨가벗고 쫓겨난 기억도 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맞을 만 했다고 상각해요. 뿌린 대로 거두는 거 같아요. 제가 그래서 자식들은 안 그러기를 바라고, 자식은 나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대를 하지만, 자식한테 그런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성민은 인간적인 사람, 현빈은 나보다 어른스러워"

정재영"현빈은 저랑 좀 다른 스타일. 되게 뭐랄까, 철이 많이 들었고 저보다 되게 어른스럽고 침착해요. 수다도 잘 떨고. 술은 많이 마시면 얼굴이 발그스름해져서 예쁘죠. 저는 술 먹으면 얼굴이 거뭇한데(웃음)." ⓒ 이정민


정재영은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형사 역으로 출연한 이성민과, <역린>에서는 정조 역으로 출연한 현빈과 주로 호흡을 많이 맞췄다. 두 사람 모두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연기하는 것이다.

"(이)성민이 형님은 인간적인 사람이죠. 저랑 가장 흡사한 분인데 술은 못 하세요. 그래서 항상 감독님도 함께 해서 술자리를 하는데, 그럼 성민 형님은 음료수를 드시죠.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불편해하지 않으세요. 술자리 중재를 많이 하는 편이고, 마지막에 뒤치다꺼리도 다 하세요. 무뚝뚝하면서도 속마음은 깊고 다정한 옛날 아빠 같은 분이에요. 취미도 없고 촌스럽고, 보통 가정의 아버지인 점은 저랑 비슷한 데, 성민이 형보다는 제가 더 말이 많아요.(웃음)

현빈은 저랑 좀 다른 스타일. 되게 뭐랄까, 철이 많이 들었고 저보다 되게 어른스럽고 침착해요. 수다도 잘 떨고. 술은 많이 마시면 얼굴이 발그스름해져서 예쁘죠. 저는 술 먹으면 얼굴이 거뭇한데(웃음). 작품 할 때도 보면 힘들 때도 되게 의젓하고. 몸 만들 때도 음식 조절도 잘 하고 그때는 술도 안 먹어요. 빈이도, 조정석도 천성이 다 착해요. 저는 좀 투덜투덜하는 편인데, 현빈은 참 묵묵히 하고, 투덜거리지도 않고. 불평불만도 없는 참 착한 배우입니다."

▲ ⓒ 이정민


정재영의 서울예술대학 동기는 신동엽·류승룡·안재욱 등이다. 대학시절 때도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그들은 이제 방송가에서, 충무로에서 제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또한 아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 하지만, 묵묵히 열심히 하고 있는 이들에게 롤모델로 손꼽히기도 한다.

"후배들에게, 지금만큼의 열정이 있다면 그 열정이 없어지지 않게 유지하고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열정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 열정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열정이란 바로 '연기에 대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 사랑이 식지 않게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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