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도 가장 '붉은' 도시, 아쉽다
[모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아홉 번째 이야기
▲ 세비야 대성당세비야 대성당의 야경. 조명이 비쳐 마치 황금사원처럼 보인다. ⓒ 송진숙
공중에 떠 있는 콜럼버스관
아침을 먹는데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돌아다니기 어려울 텐데 어쩌나 걱정을 하며 호스텔에서 주는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식빵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빵도 잼도 평균 이하의 맛으로 열흘간 먹었던 아침 중에 제일 맛이 없었다. 포르투갈의 호스텔에서 먹었던 아침이 정말 맛있던 것이었구나 새삼 그리워진다. 그래도 아침을 주는 게 어디냐 싶어 오늘 여행을 위해 먹어 두었다. 다 먹고 나니 창밖에 햇빛이 비친다. 어제도 오늘도 잘 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세비야 대성당으로 갔다. 한참을 걸어도 끝이 안 보일 만큼 크다. 톨레도 대성당도 크다고 느꼈는데 그보다 더 크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규모에서나 장식에서나 당시 세비야의 부와 힘이 느껴진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함과 정교함의 절정이다. 특히 장미 모양의 창은 정말 아름다워서 한참을 보았다. 저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 장미 모양의 창세비야 대성당의 장미 모양창 -스테인드글라스의 절정을 보여준다. ⓒ 송진숙
대성당 내부를 천천히 구경하던 중에 독특한 풍경이 보인다. 땅에 붙어 있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관. 세계를 변화시킨 모험가 콜럼버스의 관은 네 명의 왕이 떠받들고 있다. 땅 위에 있어야 할 관이 왜 공중에 떠 있을까?
콜럼버스는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받아 네 차례 항해에 나섰다. 신대륙 발견은 세계사에 대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콜럼버스 사후의 일이지만. 콜럼버스는 불행하게도 스페인에 금은보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 채 스페인 왕들에게 버림을 받고 "죽어서도 스페인 땅은 밟지 않으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쓸쓸하게 죽었다.
콜럼버스 사후 400여 년 뒤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유해를 옮겨왔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유언대로 관을 땅에 놓지 않고 당시 스페인의 네 왕국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왕들 어깨에 메게 한 것이라 한다. 앞의 두 왕은 콜럼버스를 지원해 준 왕이라 고개를 들고 있고 뒤의 두 왕은 콜럼버스의 계획을 거절한 왕이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하니 이런 문화에조차 이들의 유머가 스며 있는 것 같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신대륙의 발견으로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뀌면서 대서양 연안의 국가들이 번성하였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들여온 막대한 양의 금, 은, 담배, 카카오, 설탕으로 세계 최대의 부국이 되고, 세비야는 신대륙으로의 출항과 아메리카 대륙의 무역 독점권을 가진 유일한 도시가 된다.
▲ 세비야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세비야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정교하고 화려하다. ⓒ 송진숙
이 시기에 세워진 대성당의 규모와 화려함은 세비야의 번영을 대변해 준다. 한편으론 콜럼버스의 관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신대륙 발견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그를 역사의 영웅으로 봐야 할까. 원주민을 학대하고 원주민의 문명을 파괴하고 아메리카에 질병을 옮겨 원주민을 몰살한 악인으로 봐야 할까.
어쨌든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누렸고 세비야 역시 제2의 로마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번영했다. 만약 콜럼버스가 없었다면 세비야는 한낱 작은 도시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화려하고 거대한 대성당하며 아름다운 건물과 많은 볼거리 등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세비야에 방문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오렌지정원세비야 대성당의 오렌지 정원 ⓒ 송진숙
성당을 나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딸은 메뉴 델 디아를 먹어보겠다며 식당을 찾는다. 메뉴 델 디아는 전채, 주 요리, 후식, 음료가 제공되는 말하자면 오늘의 요리 같은 것이다. 풀 코스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어서 현지인들은 물론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관광지 근처의 식당은 가격도 비싸고 별로일 것 같아서 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현지인이 꽤 있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에게 '메뉴 델 디아'라고 말하니 알아듣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종업원은 오로지 스페인어로 말하는데 우린 스페인어를 모를 뿐이고. 영어로 말을 해봤으나 종업원은 전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딸은 그냥 나가자고 했으나 모험 정신이 강한 나는 부딪쳐 보기로 했다. 눈치상 전채를 고르라는 것 같은데 'ensalad'가 샐러드와 발음이 비슷하길래 샐러드인가 하고 골랐다.
다음은 주 요리를 고를 차례였는데 요리 이름은커녕 돼지고기, 소고기, 구운 요리 등의 단어를 전혀 알지 못하니 고를 수가 없었다. 답답해 하던 직원은 딸의 팔을 끌고 주방으로 가더니 진열된 요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딸은 간신히 손가락으로 주문을 하고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쉰다.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코에 땀이 맺혔다.
▲ 세비야 대성당 앞 거리 풍경좁고 구불구불한 거리 위에는 노천카페와 말과 마차, 거리공연가가 함께 공존한다. ⓒ 송진숙
음식 하나 주문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어디 밥 한끼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과연 잘 고른 것인가 맛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되는 가운데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정보 없이 들른 로컬 식당치고는 맛이 괜찮았다. 힘들게 주문해서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숨이 멎을 만큼 정열적인 플라멩코
저녁엔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로 했다.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사람이 전날 보고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워서 또 보러 간다길래 우리도 같이 가기로 했다. 금액은 한 사람당 40유로라고 하던데 수요일은 할인을 해준다고 해서 한 명당 28유로를 냈다. 생각치도 못한 행운이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조금 일찍 입장했다. 제일 앞 테이블에는 벌써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두 번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 정도면 무대가 잘 보인다.
▲ 플라멩코엘 아레나 극장의 플라멩코 ⓒ 송진숙
조명이 켜지고 네 사람이 입장한다. 나오자 마자 발을 구르며 박수를 친다. 구두로 바닥을 치며 남자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슴 속의 응어리를 쥐어짜내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가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곧이어 무용수가 나와 춤을 추었다. 춤 동작은 하나하나 비장함이 느껴졌다. 무용수의 절제된 동작은 느리게 이어지다가 점점 빨라진다. 화려한 치마 밑으로 보이는 현란한 발동작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구두로 무대 바닥을 치는 발동작은 춤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흡사 타악기의 리듬처럼 들리기도 하여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커다란 박수소리는 마치 쇳소리처럼 들려서 어떻게 인간의 손바닥으로 저런 소리를 만들까 경이로웠다. 땀방울이 튈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추는 무용수의 춤은 숨이 멎을 만큼 전율이 느껴졌다.
플라멩코는 흥겨운 춤인줄 알았는데 굉장히 진지하다. 집시들이 떠돌아다니며 삶의 애환을 노래한 것에서 비롯된 플라멩코. 유럽 이곳저곳으로 쫓겨다니며 그들의 애환을 달래던 춤이 이제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었다. 문화는 움직이는 것이고 재창조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 스페인 광장스페인 광장의 야경 ⓒ 송진숙
공연이 끝나고 나니 주위가 어둡다. 9시쯤 되어 숙소에 돌아가야 하나 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휴대폰 광고에서 김태희가 플라멩코를 춘 장소로 더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 광장은 공설운동장만큼이나 크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분수는 꺼지지 않고 우리를 반겨준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은 광장을 흐르는 물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답다.
건물에 다가가 본다. 광장에서 아치형의 다리를 건너 건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다리가 매우 이색적이다. 다리는 평범한 돌이 아닌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두워서 그냥 지나칠 뻔했으나 자세히 보니 가로등도 건물도 모두 채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타일로 장식된 건물은 우아하고 고풍스러워 보였다. 이 채색 타일들은 스페인의 각 지역의 지도와 그 지방의 역사를 그려 놓은 것으로 이 타일을 모두 보게 되면 스페인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호기심에 타일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어디선가 우리를 부른다. 택시기사가 호객행위를 하는 줄 알고 "노(NO)"를 외치며 광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저 아저씨, 우리를 계속 부른다. 손을 내저으며 계속 광장을 돌고 있었더니 우리 옆에 다가와서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르킨다. 알고 보니 택시기사가 아니라 관리자였다. 마감 시간이라 나가라는 것을 호객행위로 착각한 것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스페인 광장을 나왔다.
▲ 세비야 도시히랄다탑에서 내려다 본 세비야 도시 전경 ⓒ 송진숙
화려하고 정열적인 스페인의 정서가 녹아 있는 세비야. 오페라 '카르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같은 많은 예술 작품의 무대였던 도시. 투우와 바람둥이 '돈 후안'의 밀회 장소였던 호텔을 비롯해 못 본 것이 많은데 세비야를 떠나야 한다. 열정적인 나라 스페인에서도 가장 붉은 도시 세비야. 떠나기가 아쉽다. 언젠가 다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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