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느닷없이 간첩된 그들, 과연 치유 될까요?

[리뷰] 서사치유연극 <상처꽃 -울릉도 1974>

등록|2014.04.09 13:37 수정|2014.04.09 13:39
"개!"
"멍멍멍 멍멍멍"
"고양이"
"야옹 야옹 야옹"
"자, 이제 죽도를 거점으로 간첩들을 실어 나른 사실을 자백해. 아니면 또 맛을 보여 줄 거야!"

고문관들은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다가 아무 상관 없는 질문을 하곤 했다. 그러다 그들이 원하던 대답이 안 나오거나 이전에 했던 대답과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고문을 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고문은 되풀이되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도 없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선장 일을 가르치고 자기 배에서 선장으로 일하게 해줬던 사람의 연로한 어머니에게 가서 했다는 말은 평생 한이 되어 가슴에 맺혔다.

"할머니 아들은 빨갱이예요.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해요. 그러니 기다리지 마세요. 그리 아세요."

노환으로 시들어가던 손두익 어머니는 얼마 안 되어 실명하고 운명하고 말았다. 공소장 내용이 뭔지도 모른 채 10년 형을 살고 나와 비로소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갔다. 이데올로기 이전에 삶은 폭력 앞에서는 무력한 것이 되고 만다. 1974년 유신철폐와 개헌의 목소리를 억압하려 긴급조치 1호와 2호가 발동되었다.

유신악법 개헌청원 백만 서명 운동을 벌이던 장준하 선생과 백기완 선생 등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이들이 구속됐지만, 유신철폐를 외치는 분노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종신집권을 꿈꾸던 박정희는 국민의 관심 환기용으로  중앙정보부, 보안사, 경찰, 검찰, 법원을 다각적으로 움직여 울릉도 간첩단 조작, 민청학련 -인혁당 재건위 조작, 문인간첩단 조작 사건 등 수없이 많은 조작 간첩 사건을 만들어 낸다.

서사 치유연극 <상처꽃>은 1974년 긴급조치 시대가 만들어 낸 울릉도  조작 간첩단 사건을 기본 축으로 진실과 화해, 치유를 그려낸 작품이다.

난민전 사건으로 이국에서 택시를 몰기도 했던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선생은 극을 보며 자꾸만 눈물을 훔쳤다. 영구집권을 꿈꾸던 독재자가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만들어 낸 간첩 조작 사건의 희생자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평생 치유되지 않은채 내면에 상처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분단 조국서 공짜 관광 갔던 값은 목숨이었다

▲ <상처꽃>은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치유극이다. ⓒ 이명옥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미리 짜 놓은 틀에 맞춰 간첩단 규모를 구성해야 했기에 서로 전혀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울릉도를 거점으로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는 엉성한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자백이 증거로 인정되는 야만의 시대였기에 남산으로 끌고 가서 혹독한 고문을 자행한 후 자기들이 미리 짜 놓은 각본에 맞추어 받아쓰기를 시키고 강제로 인장을 찍도록 만든다.

물고문은 꼭 식사 후에 했다. 뱃속에 있는 음식물은 물론 똥물까지 다 토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토하고 나서 느껴지는 비참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개나 돼지가 된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들이 행하는 고문에도 순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기계처럼 순서에 의해 고문을 가했다. 그들은 노련하고 익숙한 기술자들이었고 선생은 가공되어야 할 재료일 뿐이었다. 선생의 몸이 혹독한 고문으로 너덜거리자 협박과 회유가 시작되었다. '생매장하겠다'고 협박하였다가 '순순히 실토하면 내보내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었고 거듭되는 고문과 반복되는 신문에 선생의 정신은 이미 혼미해서 꿈속인지 현실인지 느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죽인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잠들어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가족도, 부모 형제도 다 잊게 되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렇게 선생은 그들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고 시인하고 지문을 찍었다. -본문-

1974년 3월 15일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적발된 간첩단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을 적발했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아 기자회견을 한다. 개헌청원운동을 막기 위해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호와 2호를 선포한 직후였다.

최대 조작 간첩단 사건인 울릉도 간첩단의 발단은 이랬다. 전북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 이좌영은 유신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냈다. 당시 이좌영은 한일 합작 회사를 설립했고, 이좌영 여동생 남편인 최길하가 월급 사장으로 일했다.

이좌영의 여동생과 결혼한 최길하는 최길종 교수를 신문한 차철권의 군대 부하였다. 당시 차철권은 최길종 교수 고문치사 사건으로 좌천되어 재기의 기회를 노리다가 최길하에게 반유신 세력인 이좌영의 동태를 살펴 보고할 것을 명했다. 그렇게 이좌영을 수뇌로 대규모 울릉도  간첩단 사건이  만들어졌다. 차철권은 좌천 4개월 만에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특진했고, 이좌영의 한국 회사는 이좌영은 여동생과 이혼한 최길하의 소유가 되었다.

이좌영을 간첩 수괴로 삼고, 이좌영과 고등학교 선·후배간인 이성희(전 전북대 교수를 전북 거점기지 책임자로,  6·25때 행방불명되었다가 13년만 에 울릉도에 한번 들렸다 사라진 전덕술의 숙부 전영관과 전영관에게 포섭되었다는 김용득과 전씨의 일가친척 등을 엮어 47명의 조작 간첩을 만들어낸다.

긴급조치 1호에 따르면 유신 체제에 조금만 어긋나는 발언을 하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해 '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긴급조치 1호의 내용이다.

1.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전 1,2,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5.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저런 상황으로 일본에 유학이나 연수 중 관광 시켜 준다는 말에 북한을 다녀왔거나 월북자 가족, 심지어 조업하다 납치되어 구금당했다 돌아온 어부까지 엮어 간첩을 만들어 버렸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른 채 잠을 자다가 혹은 퇴근길에 끌려가 고문으로 간첩이 돼버린 사람들. 가정은 파탄 나고, 모든 관계에 금이 갔으며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보호감찰 아래서 38년 40년을 살던 그들 중 19명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일본 유학 중 이좌영에게 포섭되어 반국가 단체 활동을 했다고 사형 선고를 받은  후 2심에서 무기 징역이 확정돼 17년간 감옥에 수감되었던 이성희( 전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 선생은 사건 발생 38년 만인  2012년 11월 22일 무죄를 선고받아 간첩 혐의를 벗었다. 다만, 일본 유학시절 북한을 방문했던 사실에 대해 일반 잠입 탈출죄를 적용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이성희 선생은 부벽루 내각초대소에서 김일 제 1 부수상을 만나게 된다. 김일 부수석을  만난 이성희 선생은 평소 품고 있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일 부수상이 '미군 철수만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하자 남한이 당장 미군을 철수할 형편도 그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 남한에 공작원을 보내는 일은 귀한 젊은이들 목숨만 버리는 일이니 더 이상 남파공작원을 보내지 말라'는 이야기 등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이성희 선생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장손 전갑술을 따라 북한에 가서 돈을 받아와 배를 샀던 전영관씨는 사형 당했다. 3살짜리 막내까지 사남매가 남은 상황에서  그의 부인은 10년 간의 감옥 생활을 해야만 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재심 청구에서 2014년 2월 12일까지 총 19분이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나머지도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성희 선생은 말한다.

"분단된 조국에 태어나 분단을 그대로 남겨두고 가는 것은 죄입니다. 분단 된 땅에 태어났으면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서로를 죽이고 죽는 이 시대를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민족에게 큰 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분단 조국에서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던 낯선 진실의 민낯이다. 분단 조국의 이데올로기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작 사건을 만들어 내려는 이들이 사용하는 도구일 뿐 그저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 까메오로 울릉도 조박 간첩피의자, 담당 면호사, 사회 각계 인사들이 출연해 함께 한다. ⓒ 이명옥


덧붙이는 글 '울릉도 1974'를 바탕으로 공연 중인 서사 치유 연극 <상처꽃>은 대학로 눈꽃 극장에서 5월 31일까지 공연되며 매일 까메오로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