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농산물 꾸러미, 무릉2리 확 바꿨어요"
[인터뷰]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 제주 무릉2리와 '환상의 협력'
▲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가 '무릉외갓집'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리플릿을 들어보이고 있다. 무릉외갓집은 무릉2리 주민이 직접 생산해서 엄선한 제주 농산물을 한 달에 한 번씩 뭍에 있는 가정에 꾸러미로 배달해주는 마을기업이다. ⓒ 유성호
"제주 올레 길을 너무 좋아해요. 그러다가 올레길 주민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에 마을기업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회사 빚이 많이 있지만 지금 나누지 않으면 회사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2009년부터 제주올레 무릉 2리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무릉2리는 제주올레 11코스 종점이자 12코스 시작점에 있는 마을이다.
그는 이 마을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직거래 하는 브랜드 '무릉외갓집'을 세운 주인공이다. 무릉외갓집은 무릉2리 주민이 직접 생산해서 엄선한 제주 농산물을 한 달에 한 번씩 뭍에 있는 가정에 꾸러미로 배달해주는 마을기업이다.
이러한 제주 마을기업에 서울에 사는 중소기업 대표가 발 벗고 나선 이유는 뭘까. 주인공인 공기청정기 전문기업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를 지난 1일 서울 강남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기업인들의 모임이 2008년 제주도에서 1박 2일로 있었어요. 여느 해 같으면 골프나 쳤을 텐데 그 해에는 올레 9코스를 걸었어요. 청정한 그 길이 너무 좋았어요. 저희가 추구하는 청정과 건강이란 가치가 올레 길 이미지와 맞닿아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김 대표는 무릉2리와 결연을 맺었다. 1사 1올레마을 맺기는 제주올레가 지역사회 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대기업 아닌 중소기업 오자 마을 사람들 안색 안 좋더라"
그러나 무릉2리와 김대표의 첫 만남은 순탄치 않았다. 다른 마을은 대기업과 결연을 맺었지만 그에 비해 벤타코리아는 생소한 중소기업이었기 때문.
"저희 회사를 제외하고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비롯해 현대기아자동차, 풍림리조트, 대한항공 등 대기업이 참여했죠. 다른 마을은 축제분위기였는데 무릉2리 주민들은 안색이 안 좋더라고요. 심지어 이장님은 인상을 쓰고 저만 웃고 있는 당시 사진이 아직 인터넷에 있어요(웃음)"
상황은 이내 역전됐다. 그는 "기존에 많은 기업이 하듯이 농수산물을 사 주고 책이나 장학금을 줄까 했지만 그것은 1차원적인 지원"이라며 "스스로 마을 분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모델을 만들자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무릉2리 이장님이 일산의 아파트에 귤을 팔기 위해 육지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왜 그렇게 팔아야 하나 하는 답답한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회원을 모집해 정기적으로 물건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제안했죠."
김 대표는 10개월 동안 직원들을 무릉리에 내려보내 주민들과 소통하도록 했다. 또한 자신이 나서 브랜드 기획부터 상품구성, 홈페이지 개설, 회원모집 등을 전폭 지원했다. 2011년엔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도 구성했다. 김 대표의 적극적인 노력에 마을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기업처럼 돈이 많은 게 아니니 발품을 팔았죠. 박스 공장하는 친구한테 박스를 기부하게도 했어요. 처음 회원 100구좌를 목표로 주위 사람들한테 열심히 홍보했죠. 제가 500구좌를 만들었을 때 주민 분들이 이제 저를 믿는 것 같더라고요. 마을 분들도 그때부터 무릉외갓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죠."
김 대표는 농부들에게 브랜드 강의를 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자체 중심으로 농산물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서 농부들이 브랜드 개념이 없다"며 "무릉외갓집을 계속 만지고 비전을 제시해야지 이 브랜드가 뜨게 된다는 걸 농사짓는 분들한테 이해시키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기존 협동조합 문제 많아"
▲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올레 1사 자매결연으로 맺어진 '무릉외갓집'에 발 벗고 나선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그는 기존 협동조합에 쓴소리를 했다. 소비자들이 아닌 소수 이권자들을 위한 협동조합은 더 이상 협동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많은 협동조합이 있지만 사실 문제가 많아요. 노동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만든 조합에 계급이 생기고 결국 소수의 이익을 위해 조합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또 요즘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우후죽순 생겨나는데 집 같은 거 하나 짓고 행위는 없어요."
무릉외갓집이 자리를 잡기시작하자 홈쇼핑에서 연락도 왔다. 그러나 김 대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홈쇼핑을 하려면 마진을 넣어야 해요. 만 원짜리 상품을 홈쇼핑 마진 4000원, 중간 유통자 1500원 가져가면 농민에게 돌아가는 건 4500원이죠. 협동조합 취지는 그게 아니에요. 협동조합은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15%만 더해서 고객에게 주자는 겁니다. 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소비자를 위하는 겁니다. 마을자치단체가 돈 많이 벌자는 생각보다 계획적이고 안정된 유통 시스템을 갖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해요."
현재 김 대표는 무릉외갓집이 계약 재배를 하도록 농민들을 설득한다. 내년 주문을 미리 받아서 재배를 하면 시세에 관계없이 이익률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손을 뗐을 때도 무릉외갓집이 굳건하려면 농민들이 더 단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릉리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무릉외갓집에 다 참여하는게 목표예요. 각자가 갖고 있는 고객들을 전부 무릉외갓집 고객으로 만드는 거죠. 중간 유통이 없으니 농부들도 농산물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고요. 마을도 잘 살게 될 겁니다. 결국 떠났던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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