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36회] 상대부의 정보망은 생각보다 훨씬 촘촘하다

[무협소설 무위도(無爲刀)][36회] 예검비화 채욱 (2)

등록|2014.04.10 13:43 수정|2014.04.10 21:51
 14장 예검비화 채욱

무위도無爲刀 ⓒ 황인규


"관조운인가 하는 서생을 데려간 괴한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라는 것이오?"
채욱이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가 왜 서생을 우리 은가에서 탈출시켰는지, 그리고 탈출시킨 다음 왜 서생 혼자 소주로 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진충이 답답한 듯 탁자 위의 물을 한잔 들이켰다. 

"그 자의 무공은 어땠소. 사문을 짐작하거나 병기에서 특출한 점은 없었소이까."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지형지물을 능숙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보아 전문적인 살수 훈련을 받은 자로 보입니다만, 마주친 시간이 워낙 짧아 독문무공까지 간파해낼 순 없었습니다."

예진충은 괴한과 지하실에서 대치할 때를 떠올렸다. 괴한의 자세와 호흡, 그리고 보법에서 얼핏 연상되는 것이 있긴 했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엔 사연이 길어질 것 같아 속에 묻어두었다. 

"혹시 괴한이 서생을 탈출시키고는 그 뒤를 쫓는 건 아닐까요? 그 역시 서생에게 무극진경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전제 하에."
조용히 있던 무정도 동백웅이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소이다. 일단 금의위를 통해 소주 일대에 수배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해놓았습니다."
"굳이 금의위를 통할 필요가 있나요?"

노량이 물었다.

"은화사는 소수 정예로 구성되다 보니 인력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탐문, 수배, 수색, 차단 등은 금의위에 협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금의위와 우리 동창 간의 알력이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동창에 금의위 출신들이 많고 또 금의위 사람들 역시 우리 동창을 통해 출세를 하고자 하는 맘이 없지 않다보니 우리의 협조 요구에 거절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금릉 지역 책임자 총교위 등무에 의하면 관조운이란 자는 소주에서 화북 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금의위는 그 소식은 어떻게 아오?"

채욱이 말했다.

"금의위 금릉 지부에서 혁련지의 집에 갔을 때는 이미 한발 늦었답니다. 이번에는 서생이 혁련지와 함께 동행을 하고 떠났답니다."

"혁련지는 또 누구요?"
"모충연의 여제자입니다. 비영문의 장문인이 알려주었습니다."

"서생이 모충연의 옛 제자와 만나 어디론가 가고 있다……. 대개 쫓기는 입장이면 은밀한 곳에서 숨어 지내기 마련인데,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분명 어떤 단서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동백웅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모두들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잠시 침묵의 공백이 생겼다.
이윽고 침묵을 깨고 채욱이 입을 열었다.

"들리는 소문에 무림맹에서도 진경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인다는 말이 있던데, 어느 선까지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해 보셨는지요."

정중하게 물었지만 내용은 힐문과 다름이 없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비급에 욕심을 가질 법하니 소문의 꼬리를 쫓아다니는 자들이야 있겠지만, 아직은 무림맹 차원에서 움직이는 기미는 없습니다."

예진충이 담담하게 답했다.

"그렇다면 비영문에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무림맹 사람들은 뭐고, 서생이 취보문(聚寶門)을 빠져나갈 즈음 시전(市廛)를 수색하던 무림맹 대원들은 또 뭐요?"

"그자들은 무림맹 금릉지부 소속으로 본산에서 하명을 받았다기보다는 지부 차원에서 먼저 손을 쓴 것으로 생각되오."

"그들은 일운상인이 운명하기 전부터 있었소. 그자들이 왜 그곳에 먼저 와 있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소?"

채욱의 말투는 점점 심문조로 변해가고 있었다.

"두 달 전 장강편운 습평이 불의의 사고로 죽자, 그들도 모충연에게 촉각을 세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강호인이니 우리보다야 출입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예진충의 굵은 눈썹이 보일 듯 말 듯 살짝 모아졌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채욱의 힐문성 추궁에도 예진충은 주눅 들지 않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러나 그의 속까지도 담담한 것은 아니었다. 예진충은 채욱이 뭔가를 알고 왔구나 싶었다. 상대부는 자신의 임무를 감시하거나 지원하기 위해 요원을 이중 삼중으로 배치했거나 아니면 무극진경의 행방을 찾기 위한 또 다른 통로를 가동 중이라고 봐야 한다. 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신중하고 교활한 상대부이니만큼 후자일 가능성도 배제하진 못한다.

눈빛 한번 잘못 주고받으면 삼족이 멸하고 세치 혀 한 번 잘못 놀리면 구족이 멸하는 궁중의 암투에서 살아남아 차근차근 권력을 쌓아올린 상대부이다.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그로써는 이번 일이 온통 구멍투성이일 것이다. 모충연에게 직접 행방을 추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손 안에 든 모충연의 제자까지 놓친 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파견했음에 틀림없다.

사태의 추이를 파악하고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보고하라. 이들은 일단 주변의 정보부터 수집했을 것이다. 나와 부하들이 실수한 건 없는가, 아니면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인가. 이들에게 정보를 넘겨준 자는 누굴까. 금의위 나부랭이들인가 아니면 나의 수하들 중에 따로 보고하는 자가 있는가. 어쨌든 이들은 모충연이 사망할 당시 무림맹 대원들이 은화사 요원보다 먼저 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상대부의 정보망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촘촘할지도 모른다. 예진충의 등골을 타고 차가운 낙수가 흘러내렸다.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각 문파는 자기들 문파 차원에서 진경을 손에 넣기를 원하지, 무림맹 전체의 공동소유로 되는 건 원치 않을 겁니다. 자기 문파만 상승 무공을 얻고 싶다는 문파 이기주의 때문이죠."

동백웅이 말했다. 

"동 대협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만약 진경을 무림맹의 이름으로 손에 넣게 되면 현 맹주가 소속한 무당파가 은근히 기뻐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나머지 다른 문파들이 합심하여 견제할 터이니 오히려 위험한 불씨만 안게 되는 꼴입니다. 그렇다고 엉뚱하게 사파(邪派)의 무리에게 가게 된다면 이 또한 골칫거리이니 외면할 수도 없고 한마디로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무림맹은 아주 외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직접 손을 대지도 않는 선에서 관망하지 싶습니다. 여차하면 손을 쓸만한 거리를 두면서 말입니다." 

예진충은 좌중을 돌아보며 한숨을 돌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무림맹의 차원이라는 거지, 각 개별 문파 차원에서는 진경을 습득하려고 암암리에 움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들로서도 비급(秘笈)이란 문파의 무공을 몇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큰 기회이자 유혹이니까요."

"그렇다면 무림인들이 우리와 부딪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도 무언가의 발언을 해야겠다는 듯 노량이 급하게 말을 이어받았다.

"강호인들이 대놓고 우리 은화사나 금의위와 맞서진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관(官)은 항상 부담스러운 존재이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무극진경을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제 아무리 관과 부딪치는 걸 꺼려하더라도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절학비기를 외면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막상 손에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면 그들은 관과의 대결도 불사할 겁니다."

"우리 은화사야 검증된 요원들만 뽑는다지만 금의위의 무공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되오."

채욱이 다시 물었다.

"금의위도 황궁의 어림군(御臨軍: 황제 직속 근위대)인지라 나름 고도의 수련과 단계를 걸치고 있습니다. 황궁을 경계하는 금군(金軍)과 사방(司房)은 그렇다치더라도, 중원을 다니며 정탐과 체포 담당하는 제기(緹騎)라면 고수에 해당합니다. 구체적으로 금의위 교위로서 금릉부를 맡고 있는 장반(掌班)의 무공은 구대문파의 장로와 백합 이내 승부를 가리기 힘들고, 그 밑의 영반(領班)은 수제자급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금의위가 무림인과 충돌하더라도 쉽게 당하거나 진경을 뺏기진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금의위와 협조만 잘 이루어지면 우리의 임무는 그다지 어려움은 없겠구려."

채욱이 나직이 말했다.
덧붙이는 글 월 목, 연재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