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과 무인기, 같은 점 다른 점
[분석] 지방선거 임박해 터진 대북 악재... '북풍'에 정권심판 무력화하나
▲ "북 소행 확실시"11일 국방부 중간 조사결과 발표를 보도하는 조선일보 4월 12일자. 국방부 발표를 인용해 북한의 소행으로 보도하고 있다. ⓒ 조선일보PDF
국방부는 어제 소형 무인정찰기 3대가 북한에서 온 것이 확실시된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북에서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를 확보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북의 도발 야욕을 꺾어야 한다.
- <동아일보> 4월 12일자 사설 '北무인기 증거 속히 찾아내 김정은에게 책임 추궁하라' 중
지난 11일 국방부에서 추락한 소형 무인기 3대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튿날인 12일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서는 사설을 통해서 비슷한 주장을 폈다. <동아일보>는 '北무인기 증거 속히 찾아내 김정은에게 책임 추궁하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역시 '北 무인기 기술 발전한다는 전제로 대책 세워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김정은'이라는 인물을 특정해서 책임을 추궁하라는 <동아>는 놀랍게도 관련 '증거'를 속히 찾아낼 것을 국방부에 주문하고 있다. 즉, 이 신문은 무인기가 북한에서 보낸 것인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조선> 역시 북한 무인기의 기술개발이 지속해서 이루어지면 화학무기 등이 탑재될 수 있음을 강조,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11일 국방부의 중간조사 결과, 북한과의 연계성이 입증되었는가? 유력 일간지에서 같은 목소리로 무인기 발진 위치를 '북한'으로 특정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연계성 입증은 확실한 증거 위에 놓여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관련 보도를 확인해 보니 국방부는 직접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북한' 소행이 확실하다고 주장했고 보수언론은 동조하고 나섰다.
물증 없이 논리로... 북한이 아닐 수 없기에 북한이다?
국방부는 무인기의 항속거리를 들어 북한 이외 나라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항속거리란 연료통 크기와 엔진 배기량 등을 분석해 나온 한 번의 연료로 운항할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한다. 무인기의 경우 항속거리가 180~300km로 추정되기 때문에 중국, 일본은 대상에서 제외된다면서 '북한 소행 확실' 주장을 펴고 있다.
이뿐 아니라 무인기의 운항방향이 '북-남-북'인 점도 북한에서 보냈을 것이란 의심을 하게 했고, 무인기의 색상도 북한에서 이미 공개했던 무인기 색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도 '정황 증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북한의 행위로 단정할 만한 정황 증거 이상의 근거, 소위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보수언론의 '무인기 마케팅'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언론에서는 국방부의 중간조사 결과에서 한발 더 나아가 김정은에 대한 책임 추궁, 화학무기 탑재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향연'을 맘껏 펼쳤다. 언론이라면 '북한이 확실하다'고 주장한 국방부에 주장의 근거와 증거를 주문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는 않았는지 의문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일까? 언론의 대대적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역공'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 ▲ 무인기 배터리 뒷면에 기재된 서체와 일련번호 등이 북한에서 사용하는 양식이 아님 ▲ (북한에서 보낸 무인기 가정 시) 왕복 270km를 날기 위해서는 5kg의 가솔린, 연료를 탑재해야 하는데 12kg짜리 무인기가 5kg 연료를 장착하면 뜰 수 없음 등을 주장하며 "북한 무인기가 아닐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주장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 역시 11일 밤 '김어준의 KFC– 무인기와 장난감 편'에서 "이 정도의 엔진을 달고 최소 270㎞를 날아왔다는 것은 불합리한 추정"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추락한 무인기가 군사비행기가 아닌 무선조정비행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체에 가깝다며 발견된 기체에 그을음이나 윤활유가 묻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무인기, 과연 날기는 날았을까?"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11일 국방부는 추락한 무인기가 북한 소행임을 주장했으나 '입증'을 하지는 못했다. 국방부는 향후 추락 무인기의 '임무명령 데이터'를 해독하는 작업을 수행할 예정이고 이 데이터에는 인공위성위치정보(GPS)를 이용한 무인기 복귀 좌표가 입력됐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작업에는 최소 2주에서 1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국방부는 전망했다.
무인기와 관련한 모든 자료, 정보는 국방부, 국정원 등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 국방부가 '스모킹건'을 밝혀내는 데에는 2주~한 달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 후면 6·4지방선거가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하는 시점이라는 점이다. 여야는 정황증거만 공개된 이 순간에도 무인기를 선거전에 활용하고 있다. '스모킹건'이 공개되는 시점은 더욱 치열하게 대립하는 순간일 것이다.
천안함과 무인기... 같은 점과 다른 점은
▲ 공개된 천안함 '스모킹건'4년 전 6·2지방선거 당시 정부에서 발표한 '스모킹건'을 보도하는 조선일보 2010년 5월 19일자 1면 머릿기사. ⓒ 조선일보PDF
국방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무기인기로 6·4지방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점은 지난 6·2지방선거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시는 2010년 3월 26일 침몰한 천안함 이슈가 지배한 선거였다. 유권자들은 숨을 죽인 채 정부에서 발표하고 언론에서 도배했던 각종 천안함 보도를 '관객'으로 지켜봤다.
당시 상황을 시기적으로 잠시 복기해보면 4월 초부터 '북 관련설'이 조금씩 오르내리더니 어느 순간부터 '북 소행'으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4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된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연설'에 등장해서 희생장병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불렀다. 거리에는 천안함 순직장병을 애도하는 현수막이 걸리는 등 추모 분위기는 고조됐다. 4월 29일에는 '희생장병 영결식'이 거행됐다.
5월 6일 합동조사단은 북한 정찰총국 소행임을 확인해주는 '결정적 정황증거'를 확보했다고 언론에 흘렸다. 그리고 드디어 5월 18일 '어뢰 일련번호, 북한 글자체로 확인'되었다는 '스모킹건'이 공개됐다.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고 29~30일 한·중·일 정상이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천안함을 논의했다. 투표 불과 이틀 전까지 상황이 이러했다.
이번에 추락한 무인기는 야당지지자들 시각에서는 '시점상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시점에 공개됐다. 천안함 때와 비슷하게 정부는 신중한 듯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북한 소행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모킹건' 역시 '1번 어뢰'가 투표 2주 전쯤 공개됐는데 이번에도 유사한 시점에 공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보수언론의 보도방식에서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정황증거만을 제시한 채 '북한소행'이라는 정부 주장에 비판적 접근은커녕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무인기 기술개발 운운하면서 '생화학 무기 탑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무책임하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려 한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천안함과 다른 점도 보인다. 정부에서의 정보 장악력이 더욱 철저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4년 전에는 민관 합동조사본부를 설치하고, 국제조사단과도 합동으로 조사했다. 심지어는 러시아조사단이 방한해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지금은 철저하게 국방부 등 정부에서 관련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희생자도 없고, 사이즈도 작고, 무인기 기술력도 형편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모든 정보를 정부에서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 이것이 야당으로서는 공포스러울 것이다.
앞서 정청래 의원, 김어준 총수 등이 북한에서 보내지 않았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고 나섰지만, 야당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다음 카드'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채동욱 뒷조사, 국정원 증거조작 의혹 등 그 동안 이 정권이 보여준 국정운영방식은 지극히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TV토론 논쟁항목, "북에서 보냈다고 믿습니까?"
▲ 김종성 UAD 체계개발단장이 지난 11일 대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북 추정 무인기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며 무인기에 탑재된 부품과 카메라 재원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6·4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는 수도권이다. 서병수, 유정복 등 친박 후보들이 대거 출마했다. 불출마를 선언했던 남경필(경기), 원희룡(제주)도 출마했다. 130석 거대야당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현역 의원들을 대거 차출하는 초강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 승리에 대한 새누리당 입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이미 초호화 진용을 갖췄다.
그 중 '백미'는 서울이다. 정몽준, 김황식 등 대선주자급이 출마했다. 그리고 지지율 상승세를 탄 정몽준은 박원순 현 시장을 상대로 뜬금없이 '천안함' 선제공격에 나섰다. '아직도 천안함이 우리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밝혀달라'고 공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에 박 시장은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 자체가 비통하다"며 "천안함 폭침 사건은 명백히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가 있었고 국민은 여전히 그 아픔을 기억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TV토론에 등장한 여당 후보들은 야당 후보에 대해 하나같이 "천안함은 북 소행인가?"를 물었다. 당시 야당 후보 중에서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 정도가 적극적으로 역공을 폈을 뿐 대부분 후보들은 질문 자체에 적극적인 공세는커녕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상황이 정확히 4년 후에 또 재연됐다.
새누리당 후보들은 TV토론에 등장해서 4년 전과 같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에 동의하는지를 집요하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다음 카드'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야당 후보들은 위축된 채 당당한 자세로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4월 말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이 예정돼 있고, 비슷한 시기에 박근혜의 야심작인 '통일위원회'가 발족될 것으로 예상된다. 천안함 때와 비슷하게 정부가 선거 정국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4년 전 천안함 선거 결과는 여야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주었다. 야당은 바람을 일으켜 정권심판 세력을 투표장에 불러야 했는데 앞서 보았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천안함이 장악한 선거였기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끌려다녔다. 여론조사 결과는 최악이었다. 개표 직전까지 이들은 '패배의 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당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했음에도 '대형 패배'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4년 만에 북한 소행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도배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궁금한 대목은 선거 결과다. 상황은 4년 전과 동일한데 그렇다면 그 결과도 야당 승리로 동일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결과는 52일 후 공개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