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광주에서 불리워야 할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하여
▲ 4월의 계류눈 녹은 물이 산자락을 휘돌아 흐르듯, 언 마음들 녹아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뭉치기를… ⓒ 정덕수
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는 몰라도 많은 이들이 이 노래는 기억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 10분 전남도청으로 투입된 3공수특전사에 의해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광주 광천동에서 들불야학을 하다가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치르며 이를 기리려고 만든 곡이다. 광주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는 이들이 노래극 <넋풀이굿>을 제작하였을 때 극의 마지막 부분에 들어갔다고 한다.
제법 많은 이들이 아껴주는 노래 '한계령'의 원작자인 입장에서 처음 누군가 손으로 급하게 배껴 쓴 걸 보여주어서야 처음 대할 수 있었던, 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를 만났을 때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극히 일부에서, 그것도 공공연한 장소가 아닌 극히 제한적인 이들과 이루어지는 회합에서나 민중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 만났던 이 시는 일반적인 민중시나 민중미술과는 전혀 다른 충격일 수밖에 없었음이 너무도 당연하다.
쓰여진 시어(詩語) 하나하나가 지닌 무게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던 서정성을 강조한 시들에서는 볼 수 없던 견고한 언어들의 집합이 민중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행동에 대한 방향제시를 너무도 분명하게 해 놓았으니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충격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계령도 처음부터 제목이 한계령이 아니었고, 원래 불리던 지명인 '오색령'을 그대로 사용한 '오색령에서'였다. 마찬가지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애초부터 같은 제목의 노래로 만들기 위해 쓰여진 시(詩)가 아니라 해서 놀랄 일도 없다. 극히 일부를 차용해 노랫말이 되었어도 여전히 선명하게 드러나는 항거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고통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 임을 위한 행진곡백기완 선생의 시 ‘묏 비나리’에서 차용해 쓰여진 임을 위한 행진곡 초고로 얼려진 그림이다. ⓒ 정덕수
선생의 모습은 80년대 민중의 역사와 함께였다. 정치인으로 도드라진 활동을 하시지도 않았으면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올곧은 소리로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모습 그대로 이 시 '묏 비나리'는 '선생께서 선동을 목적에 두었을 이유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어날 것을, 그리고 맨 처음 한 발을 띨 때 무게의 중심을 바로 잡으라는 요구가 처연함은 부인 할 수 없다. 먼저 백기완 선생께서 지으셨던 묏 비나리를 보자.
묏 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 백기완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띠기로 언 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발띠기로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 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 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 몸만
맴돌라함이 아닐세 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이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시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한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죽엄의 살이 맺혀오면
또 한 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타보고 썩은 멍석에 말려
산고랑 아무데나 내다 버려질지니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팔다리는 들개가 뜯어가고
배알은 여우가 뜯어가고
나머지 살점은 말똥가리가 뜯어가고
뎅그렁, 원한만 남는 해골바가지
그리되면 띠루띠루 구성진 달구질소리도
자네를 떠난다네
눈보다만 거세게 세상의 사기꾼
협잡의 명수 정치꾼들은 죄 자네를 떠난다네
다만 새벽녘 깡추위에 견디다 못한
참나무 얼어 터지는 소리
쩡, 쩡, 그대 등때기 가른 소리 있을지니
그 소리는 천상
죽은 자에게도 다시 치는
주인놈의 모진 매질소리라
천추에 맺힌 원한이여
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
죽이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쭉소리라
차라리 그 소리 장단에 꿈틀대며 일어나시라
자네 한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 게 아닐세 그려
얼은 땅, 돌뿌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
끝내 놈들의 채쭉을 나꿔채
그 힘으로 어영차 일어나야 한다네
치켜뜬 눈매엔 군바리가 꼬꾸라지고
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
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
그렇지
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
벗이여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 왕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고 그걸로도 안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걸로도 안되면
그곳까지 언 무를 쑤셔넣고 아…
그 어처구니없는 악다구니가
대체 이 세상 어느 놈의 짓인 줄 아나
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
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
사람을 산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자들의 짓이라
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찢긴
매와 같은 춤꾼이여
이때
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
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
허튼춤이지, 몸짓만 있고
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
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죽은 살풀이지
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
한갓된 신명의 허울은 여보게 아예 그대 몸에
한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
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 속
자네의 맨 밑두리엔
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
꺼질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
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
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
어느덧 민중의 넋이
유격병처럼 파고들어
뿌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
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
어깨짓은 버들가지 신바람이 일어
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 목지 몸짓
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그렇지
싸우는 현장의 장단소리에 맞추어
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한 춤꾼은 비로소 구비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저 비록 이름 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쳐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
이 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승리의 세계지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졌어도 이기고 있는 민중의 아우성 젊은 춤꾼이여
오, 우리굿의 맨마루, 절정 인류최초의 맘판을 일으키시라
온몸으로 디리대는 자만이 맛보는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위에
희대를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아, 신바람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 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 땅의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띠기에 일생을 걸어라
우리의 현대사가 진정한 애국자들에 의해 완성되어지지 못했기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과거사문제가 거론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당시 좌우로 나뉜 상황에서 생존력 자체에 목적이 더 컸던 세력들에 의해 장악된 역사 탓이 크다.
공산주의를 우러러 본 적 없고, 공산주의자를 두둔한 적도 없지만 정권에 대해 반대의사만 표시해도 종북으로 몰리고, 빨갱이로 몰리는 암울한 역사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지 않은가.
의문을 아예 마음에 담지 말라는 정부와 정권에 기댄 자들의 요구가 만들어놓은 실로 어이없는 편가르기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들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이 나왔고 다시 이곳 강원도에서는 '잃어버린 4년'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실정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잃어버리면 어떤 역사도 모두 잃어버렸다고 하는 후안무치 아니고 무엇인가.
여전히 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는 이 현실에 보내는 질타가 추상(秋霜)같다. 들풀같은 민중에게 보내는 된서리 아닌, 때를 잊고 설치는 무뢰배들에 대해 보내는 질타다. 그러하기에 지금 5·18기념식에서 불려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자는 요구를 국가보훈처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당당하게 역사 앞에 설 수 있다면 반대할 까닭이 없다. 간담이 서늘하기 때문에 막는 것이고, 모골이 송연하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뱉으면 말이 되는 건 아니다. 쓴다고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생명을 가져야 말이 되고 글이 된다. 빨갱이를 종북으로 대치시키고, 서북청년단을 어버이연합으로 바꾸기만 했을 뿐 여전히 권력의 입맛에 맞춰 세상을 멋대로 주무르려는 행동이 말려야 할 위치에 있는 자들로부터 시도된다.
백기완 선생께서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눈물지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시고 강연을 위해 대구로 이동하시던 중 쓰셔서 <한겨레>에 보내셨다는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를 소개한다.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
- 백기완
버들가지 물이 오르듯 부드러운
네 몸사위를 볼 적마다
춤꾼은 원래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말이
퍼뜩퍼뜩 들곤 했었는데
으뜸을 잃어버리고도
웃는 너는 썼구나
예술은 등급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구
……
오늘의 이 썩어문드러진 문명을
강타해버린 너 연아야
……
얼음보다 더 미끄러운 이 현실에서
마냥 으뜸 겨루기에 내몰리는 우리들은
이제야 너의 그 미학에서
한바탕 커단 울음을 배우는구나
절박함이 시를 낳고, 안타까움과 연민이 시를 낳는다. 선생께서 지으셨던 시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가 그러하듯, '묏 비나리' 또한 민중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 시를 탄생하게 했다.
묏 비나리는 '산신제(山神祭)'를 이르는 고유의 우리말이다. 간절하게 산에 기원을 올리던 염원 그대로 오늘도다시 맞이하는 5월의 함성이 울릴 무등 자락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당당하게 불려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도 동시 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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