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병원이 목욕탕 만들면 청년 일자리 늘어날까?

고용창출 빌미로 규제완화 밀어붙이려는 정부

등록|2014.04.23 17:30 수정|2014.04.30 11:32

▲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기사 수정 : 29일 낮 12시]

"저희 회사는 영등포구 양평동의 초등학교에서 약 180m 떨어진 곳에 관광호텔 300실 정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 150명 정도를 직접 고용할 수 있고 유발효과까지 따지면 300명 정도일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저희가 사업추진 1년째 재량권과 규제라고 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영등포 인근에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인 한승투자개발 임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해당업체가 건립을 추진 중인 호텔 인근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보건법에 따라 해당 구역은 학교상대정화구역에 속한다.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에서 해제심의는 받았지만 학부모들은 호텔이 들어서면 불가피하게 유해업소들이 들어설 것이라 우려한다. 주민들의 반대 민원으로 영등포구청은 아직 건립승인을 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시대에도 안 맞는, 현실에도 안 맞는, 또 편견으로 인해서 청년들이 많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다 막고 있다는 것, 이건 거의 죄악이라고 생각한다"며 거들었다.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은 "일자리를 빼앗는 도둑"이 됐다. 지난 3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회의'의 풍경이다.

교육환경을 걱정하는 학부모가 일자리 빼앗는 도둑인가?

우리나라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자리는 무엇일까? 고용정보원이 2011년 청년 12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4%는 공공행정으로 대표되는 기타서비스업을 꼽았다. 다음으로 교육서비스업(19%), 보건∙사회복지(14.8%)산업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기피하는 일자리는? 독자들 대부분이 짐작하겠지만 제조업(4.7%)이다. 도소매, 숙박∙음식점업(8.2%)이 그 뒤를 이었다. 박 대통령에게 규제완화를 호소하던 기업인이 만들어 내겠다던 300개의 일자리다.

그런데 취업자 중 다수는 도소매 숙박∙음식점업(22.5%)과 제조업(16.8%)에 분포되어 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공공행정을 비롯한 기타서비스(11%)와 교육서비스(7%)산업의 취업자 분포는 초라하다. 청년들의 희망산업 분포를 A라고 하고 실제 취업자 분포를 B라고 하자. B와 A의 차이(B-A)는 마이너스로 갈수록 선호도에 비해 일자리가 부족하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교육서비스업(-12)과 기타서비스업(-9.4)이 그렇다.

도소매, 숙박·음식점업(14.3)과 제조업(12.1)은 선호도는 낮은데 비해 일자리 분포가 너무 크다. 이 불균형이 클수록 청년들의 취업에 대한 희망이 깨질 위험성은 높다.

규제개혁으로 청년들이 기피하는 일자리 만들겠다는 정부

이는 지난 4월 15일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 발표에서 제시된 분석보고서의 내용이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 발표 직후 고용전문가들과 언론은 정부가 청년 취업률 부진의 원인을 정확히 짚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진단에 대한 처방은 엉뚱했고 그 의도는 불순했다.

진단대로라면 정부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교육서비스와 공공행정을 비롯한 기타 서비스업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청년들의 선호 일자리와 실제 일자리 간의 미스매치를 해소한다며 꺼내 든 비장의 카드는 규제완화였다.

▲ 4월 15일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며 구인-구직간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유망 서비스업 육성방법으로 규제개혁을 예로 들었다. ⓒ 기획재정부


정부는 규제개혁을 통해 청년층의 고용기회를 높일 수 있다며 5대 유망서비스업에서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요 내용은 ▲보건의료-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과 부대사업을 확대 ▲금융 분야-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스펙초월 채용 추진 ▲교육 분야- 외국교육기관 국내진출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허용과 제주국제학교 잉여금 배당허용 추진 ▲관광분야- 복합리조트 유치와 설립 지원 및 학교정화구역내 유해시설 없는 호텔설립 추진 ▲소프트웨어 분야- SW융합클러스터 조성 및 공공부문 재하도급 금지 등이다. 규제개혁을 통해 정부는 고학력 청년층(20~29세)의 일자리가 약 21~23만 명이 증가할 것이라 기대했다.

금융 분야 스펙초월 채용이나 소프트웨어 분야의 재하도급 금지는 규제의 해소라기보다는 시장의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는 것으로 환영할 만 하다. 그러나 사회공공성이 강한 교육과 의료분야의 규제완화 방침은 의도가 불순했다.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의료와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킬 것이란 시민사회의 우려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대책이 아니라, 상류층 학교 구하기 대책

"20%이상이 강남3구 학생으로 연간 5000만 원 넘는 교육비가 드는 제주 국제학교가 지금 입학생 결원으로 적자상태다. 이익잉여금 배당과 영어캠프 운영을 허용한다는 것은 일자리 대책이기 보다는의 '상류층 학교 구하기 대책'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학한 정책기획국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정부가 제주 국제학교의 이익 잉여금 배당 허용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12월에도 기획재정부는 제주 국제학교의 이익잉여금 배당 허용과 영어캠프 운영 허용 방침을 '4차 투자활성화 대책'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이익 잉여금의 주주배당이 허용되면 해외 교육기관의 적극적 투자가 이루어지고 영어캠프 등에 필요한 교육인력으로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 기대한다.

현행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은 결산상 이익잉여금을 학교설립에만 사용토록 하고 있다. 이는 이익잉여금을 주주들에게 배당하도록 허용하면 대기업이 국제학교 사업에 뛰어들어 교육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김 국장은 "이익금 배당이 허용되면 외국 교육기관이 투자하기는 하겠지만, 외국인 교사가 충원되거나 비정규직이 조금 늘어날 것"이라며 "국제학교에 영어캠프를 허용한다고 일자리가 창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기관이 영리 자회사 설립, 고용 창출 가능?

의료분야 대책도 문제다. 의료기관이 투자와 배당이 가능한 영리 자회사를 설립하면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이 수익을 바탕으로 고용을 창출시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정부는 현재 의료기관이 산후조리원이나 장례식장만 뿐만 아니라 외국인 환자 유치시설, 체육시설, 목욕탕, 여행업 등을 부대사업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의료업에 종사하는 보건의료인들은 정부의 영리법인 허용정책을 반대한다. 올해 초 의사들의 집단휴진 역시 의료영리화에 대한 반대가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일하는 인력은 OECD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실제 의사와 간호사, 임상병리사와 병원경영지원인력 등 전문성을 가진 인력충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왜 의료인들은 영리법인 허용정책을 반대할까? 영리법인이 허용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도 그 일자리의 질이 낮은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영리법인이 늘어나면 기업의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오히려 인건비가 줄어들 것이라 우려한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한 의료사고의 위험은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다. 수익을 남기기 위해 부담을 환자에게 전가하여 의료비가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설사 병원의 부대사업으로 일자리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대부분이 간호조무사나, 장례지도사, 도소매, 숙박업의 판매직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위 통계에서처럼 청년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다.

관광산업 활성화? "질 낮은 비정규 일자리만 늘뿐"

▲ 4월 2일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학교부근 호텔건립 규제를 완화하는 법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경실련


박 대통령은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고려해 학교 근처에 호텔건립을 금지한 현행법을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대못'으로 봤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려 안전행정부는 차관이 나서 영등포 구청에 한승투자건설의 호텔건립 허가를 내주라 권고했다.

규제완화를 통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정부의 논리에 경실련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재벌기업들은 학교주변 호텔건립을 위해 마치 우리나라 호텔이 부족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고용창출, 관광산업 활성화란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관광호텔을 통해 창출되는 고용은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