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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함 담긴 나무 한 그루의 의미

경남 함양 '학사루느티나무'

등록|2014.04.29 17:29 수정|2014.04.29 17:37

▲ 천 년 숲, 경남 함양 상림공원 ⓒ 김종신


장인 생신을 맞아 지난 20일, 처가에 다녀왔다. 처가는 경남 함양. 처가에 갈 때면 꼭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천 년 숲, 상림공원이다.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함양 상림은 폭 80~200m, 길이 1.6km로 약 21만 ㎡(6만3000평)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숲이다. 이날도 가족과 함께 상림에 들렀다. 바람의 사각거리는 소리에 상림 숲의 초록 물결은 사각사각 소리마저 시원하게 들려주는 듯하다.

▲ 느티나무 사이로 고운 햇살이 들어와 기분마저 상쾌하게 한다. ⓒ 김종신


100~500년 된 느티나무·신갈나무·이팝나무·층층나무 등 120종 2만여 그루의 활엽수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언제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고 말하자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최치원 선생 덕에 우리가 이렇게 즐겁게 산책도 하네."

신라 말기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를 지낸 고운 최치운 선생이 함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이 자주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쌓아 물길을 돌린 뒤 새로 쌓은 둑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

아내의 말처럼 최치원 선생이 아니었다면 천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어찌 이런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 싶다. 최치원 선생뿐 아니라 오늘도 산림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분들의 숨은 노고에 감사를 보낸다. 햇볕 가득한 다볕당에서 햇살 가득 품에 안고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 사발 들이켰다. 일렁이는 초록 속으로 1시간여 상림을 거닐다 나왔다.

▲ 경남 함양초등학교 입구에는 ‘후배 여러분 꿈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입니다. 큰 꿈을 가지세요’라는 졸업생의 당부의 말과 함께 후배들에게 권학하며 세운 동상이 있다. ⓒ 김종신


상림공원의 더 넓은 숲과 함께 읍내 도심에도 지나온 세월을 함께한 나무들이 있다. 읍내 가운데 있어 처가로 갈 때 빠지지 않고 지나가는 함양군청 앞. 함양초교와 붙어 있는 군청에는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날은 군청 옆 함양초등학교에 차를 세웠다.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함양초등학교 입구에는 '후배 여러분 꿈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입니다, 큰 꿈을 가지세요'라는 졸업생의 당부의 말과 함께 후배들에게 권학하며 세운 동상이 있다. 담장 없는 학교 숲 사이로 책 읽고 싶은 마음 절로 들었다.

▲ 학사루느티나무 ⓒ 김종신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학사루 느티나무'다. 어른 7~8명이 감싸 안고도 남을 정도로 큰 이 나무는 조선시대 전기의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1431~1492)이 함양현감으로 부임한 뒤에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성종 때 노모를 모시겠다고 간청해 함양현감이 된 김종직 선생. 선생은 왜 이 나무를 여기에 심었던 것일까? 함양 현감으로 재직 중 김종직은 마흔이 넘어 얻은 다섯 살 아들을 홍역으로 가슴 속에 묻어야 했다. 정3품 통훈대부로 승진, 한양으로 떠나면서 먼저 하늘로 보낸 아들을 기리기 위해 심은 나무다. 부모 가슴에 묻힌 아들의 이름은 목아(木兒)였다. 아마도 천 년은 거뜬히 살 수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 들여 심으며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훌쩍 가버린 '나무 아이', 아들의 짧디짧은 삶을 달랬을 것이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은행나무와 함께 수명이 가장 긴 나무다. 그런 까닭에 우리 겨레의 비극도, 백성들의 애달픈 사연도 묵묵히 지켜보며 그 자리를 지켜왔다. 우리가 떠올리는 시골 풍경 중 하나는 널찍한 들판 한가운데는 물론이고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뙤약볕에서 여름 한 철의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그늘을 드리웠고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아낌없이 주던 나무. 느티나무는 임금의 시신을 감싼 천마총의 관(棺)과 해인사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법보전 같은 사찰 건물을 비롯해 백성들의 뒤주, 장롱, 궤짝 등에서도 사용된 고마운 나무다.

▲ <학사루 느티나무>의 판근(板根, buttress root) ⓒ 김종신


'학사루 느티나무'는 높이 22.2m, 가슴높이 둘레 7.3m, 가지 뻗음은 동서 24.5m 남북 25.1m이다. 나무의 뿌리목 가까이 보면 마치 두꺼운 책을 옆으로 세워서 나무를 받치고 있는 것 같은 독특한 구조가 발달해 있다. 이 독특한 구조를 판자 모양의 뿌리라는 뜻의 판근(板根, buttress root)이라고 하는데 일부는 땅 위로 나오고 나머지는 땅속에 들어가서 옆으로 퍼짐으로써 가로수에 버팀목을 해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 학사루 ⓒ 김종신


'학사루 느티나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초등학교 건너편에  '학사루(學士樓)'가 있다. 고운 최치운 선생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이곳에 올라 시를 자주 지었기에 학사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관청의 객사(客舍) 자리인 현 함양초등학교 안에 있었던 것을 1979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학사루에는 1498년(연산군 4)에 일어난 무오사화에 얽힌 전설이 있다. 김종직은 평소 유자광(?~1512)이 남이 장군을 무고하여 죽인자라고 멸시했다고 한다. 함양 현감으로 재직 중 학사루에 걸려 있던 유자광이 쓴 시를 철거했다. 유자광은 이때의 사적인 원한으로 무오사화 때 김종직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 년 전에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게 한 최치원 선생의 선견지명에 놀라고 아이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정성스레 나무 한 그루 심은 김종직 선생의 뜻도 느낀 하루다.
덧붙이는 글 산림청 대표블로그 푸르미의 산림이야기 http://blog.daum.net/kfs4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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