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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재난대책본부, 왜 그런가 했더니...

[위험한 대한민국①] 국가재난훈련 토론 위주로만...절반 이상 재난교육 안 받아

등록|2014.04.24 08:46 수정|2014.04.24 09:41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재난 대응훈련, 재난 발생 시 콘트롤타워 운용, 피해자 가족과 관계맺기, 안전전문가와 전문센터 육성 등을 통해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고 그 대안을 모색해볼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기획취재 : 이주빈 강성관 선대식 최지용 소중한 기자

▲ 국가 차원의 재난대응 종합훈련인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이하 안전한국훈련)이 토론기반훈련 위주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2014년 안전한국훈련 포스터다. ⓒ 안전한국훈련 홈페이지


국가 차원의 재난대응 종합훈련인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이하 안전한국훈련)이 토론기반훈련 위주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현장 실전훈련도 '보여주기식' 훈련이라는 자체평가가 나왔고, 25개 재난 유형에 여객선 침몰 사고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부실한 재난대응 훈련 탓에,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각 기관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대참사를 야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방재청이 한국정책학회에 의뢰해 마련한 '안전한국훈련 인지도 제고 및 종합발전방안 연구'(2013년 11월) 보고서에서도 '실제 재난발생에 적용 가능한 대응 훈련프로그램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담겼다.

안전한국훈련은 전시 대비 훈련을 제외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유일한 재난대응훈련이다. 올해로 10년째다. 국가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중앙안전관리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주관하고,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이 실무를 담당한다. 2013년 훈련에는 중앙행정부처·지방자치단체 등 407개 기관이 참여했다. 2014년 훈련은 내달 12~14일 열릴 예정이다.

"안전한국훈련은 '페이퍼 훈련'이다"

앞서 소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안전한국훈련은 총 497회의 훈련 중 토론기반훈련이 402회에 달했지만, 현장훈련인 실행기반훈련은 95회였다. 2014년 훈련 역시 토론기반훈련 위주였다. 올해 예정된 684회의 훈련 중 토론기반훈련은 506회로, 실행기반 훈련(178회)의 3배가량 된다.

토론기반훈련은 '재난상황에서의 임무와 역할을 발표·토의하여 훈련 효율화',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초기대응 역량을 강화하여 대처방안 제고' 등의 목표를 두고 이뤄진다. 구체적으로 세미나(설명회), 워크숍 등으로 진행된다. 또한 토론기반훈련은 1시간 내외로 진행된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시신안치소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후 사고 해역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의 시신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안치소로 운구되고 있다. 정부와 실종자 가족들은 합의하에 180구 규모의 임시 시신안치소를 설치했다. ⓒ 남소연


안전한국훈련이 토론기반훈련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현장 훈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삼열 전 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장은 "안전한국훈련은 사실상 '페이퍼(종이) 훈련'에 가깝다"면서 "가상 시나리오가 담긴 문서가 각 기관으로 내려오면, 기관 공무원들은 재난 대응에 대한 문서를 작성해 보낸다, 다시 말해 문서를 주고받는 훈련"이라고 지적했다.

25개 재난 유형 매뉴얼에 여객선 침몰사고는 포함되지 않았다. 풍수해, 고속철도 대형사고, 지하철 대형화재 등은 포함됐다. 이와 관련, 소방방재청 예방전략과 관계자는 "재난 유형별 매뉴얼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각 지역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게 여객선 침몰 사고 등에 대비한 훈련을 한다"고 해명했다.

또한 토론기반훈련만 훈련 평가 대상인 만큼, 각 기관이 토론기반훈련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훈련 계획 수립에 대한 적정성'뿐 아니라 '기관장 관심도, 대국민 홍보' 등이 평가 대상이다. 보고서는 "평가가 업무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작성 컨설팅과 토의식 훈련으로 문제점 발굴 및 개선대책 마련 위주로 평가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실행기반훈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방방재청 예방전략과 관계자는 "실행기반훈련은 토론기반훈련에서 나왔던 것을 보여주기 위한 훈련일 뿐"이라면서 "토론기반훈련으로 시나리오가 완성하면, 실행기반훈련은 시나리오에 따라 영화촬영을 하는 것과 같다, 평가할 필요성도 없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실패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훈련 제대로 안 됐다"

▲ 지난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


더 큰 문제는 이들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소방방재청 재난대비역량훈련센터가 2013년 11월에 발간한 '재난대비 훈련매뉴얼I'에 따르면, 토론기반훈련에는 재난안전대책본부 운영 훈련도 포함된다. "재난상황에서의 임무와 역할을 발표·토의하여 기능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재난대응 협력체계와 역할 분담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훈련 중 풍수해로 인한 재난 대응 훈련에도 토론기반훈련 첫 번째 사항에 '재난상황에 맞는 재난관리기능 상호협력체제(재난안전대책본부) 운영'이 나와 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소방방재청 예방전략과 관계자는 "중앙·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 운영 훈련을 포함하는 토론기반훈련은 보통 기존에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면서 "이번 사고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잘 가동되지 않은 문제는 기존에 훈련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보고서에서 지적된 내용이다. 앞서 소개한 보고서는 2013년 훈련에 대해 평가하면서 "훈련주체인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통합훈련체계가 미흡하다, 이로 인해서 다양하고 대규모 재난에 동시 대응할 수 있는 기관 간 상호협력체계 구축과 일원화된 지휘역량훈련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또한 "재난관리업무 기피, 순환보직으로 재난대응 전문성 결여와 일부 재난관리책임기관의 형식적·관성적인 훈련이 실시(된다)"면서 "기관장 관심도와 홍보 등에 치우친 평가, 국민 참여 훈련 미흡, 표준화된 훈련지침 부재로 훈련체계 혼선(이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종합훈련은 시나리오에 의한 보여주기식 훈련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면서 "이로 인해 실제 재난발생에 적용 가능한 대응 훈련프로그램이 미흡하다"고 밝혔다.

재난담당 공무원의 비전문성에 예산과 장비 부족까지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 청와대


부실 훈련의 원인으로 재난담당 공무원의 자질 부족, 예산장비 지원 부족 등이 꼽힌다. 소방방재청이 지난해 8월 재난관리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재난대응 전문 교육 이수 여부에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한 공무원의 비율은 52.5%에 달했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고 답한 공무원은 27.5%에 불과했다.

또한 예산과 장비 지원도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방재청이 앞선 설문조사와 같은 기간에 2012~2013년 안전한국훈련 평가단에 참여한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훈련 준비에 필요한 장비나 예산이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답한 비율은 5.9%에 불과했다. 

김삼열 전 원장은 "좋은 시스템이 있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실전 훈련을 통해 시스템을 잘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페이퍼 훈련이 아닌 실전훈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방방재청도 향후 안전한국훈련 발전안에서 "실전훈련 중심으로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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