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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전화 한 통에 경기 동남부 출퇴근 버스 '혼란'

KD 운송그룹 "23일부터 고속도로 지나는 노선은 입석 안 태워"

등록|2014.04.23 17:26 수정|2014.04.23 18:18

▲ 경기도의 한 차고지에 배차대기 중인 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다. ⓒ 이희훈


"당연히 늦었죠. 버스가 그냥 지나가는데 달리 타고 올 것도 없고…. 그런데 이거 앞으로 쭉 그런대요?"

6800번 광역버스(광교차고지- 압구정동)를 타고 출퇴근하는 이상길(가명·32)씨는 23일 아침 출근 시간을 넘겨서야 회사에 도착했다. 평소 입석까지 사람을 가득 채워 운행하던 버스가 이날은 돌연 좌석 손님만 태우고 입석 손님은 받지 않았기 때문. 이씨는 "버스 기사가 안전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유력한 요인 중 하나로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지목되자 일선 버스 운수업체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전국 최대 운수업체인 KD 운송그룹은 이날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과 경기도 사이를 운행하는 광역 버스노선 전체에 걸쳐 입석 운행을 금지했다.

출근 버스 그냥 정류장 지나처... "안전 문제 때문에 입석 손님 못 받아"

국내 버스 운행을 관장하는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22일 오후 판교와 수지, 용인 등 경기 동남부에서 서울 사이를 오가는 운수업체들에 전화를 돌렸다. 이 지역 광역버스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속도로 입석 운행에 대한 대책 마련 회의를 하자는 용건이었다.

도로교통법 67조에 따르면 고속도로를 지나는 좌석버스 탑승객들은 모두 안전벨트를 매야 하므로 입석 탑승이 불가능하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 광역버스들은 대부분 입석 운행을 해 왔다. 출퇴근 시간 탑승객이 워낙 많아 현실적으로 법규를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감독 당국도 수년째 관행적으로 눈감아줬던 사항이다.

국토부의 전화를 받은 후 KD운송그룹이 반응했다. KD그룹 측은 22일 오후 11시에 23일 첫차부터 고속버스 경유 노선의 입석운행을 금지하기로 결정하고 각 영업소와 운전기사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KD그룹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고객 편의를 고려하는 차원에서 입석운행을 했던 것"이라면서 "세월호 사건도 있고 안전 문제도 있어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입석 운행을 하면 손님이 줄어드니 손해도 커진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그룹에 속한 11개 버스회사 중 7개 회사가 고속도로를 거치는 광역버스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갑자기 출근 버스를 놓친 시민들의 민원이 폭주하자 담당 부처인 국토부와 관련 지자체인 경기도청은 크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국토부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으로 안전 문제가 대두되니 고속도로 입석 문제도 회의를 해서 대책 마련을 해보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공무원들끼리 회의해서 결정하면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있으니 업계 당사자들의 의견도 모아서 순차적으로 해결해 보자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법 운행 사항을 놓고 담당 부처가 전화를 했다면 업체 쪽에서는 그 자체만으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신분 공개를 거부한 한 운수업체 관계자는 "설사 다른 의도가 없다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회의에 나가기 전에 일단 불법운행부터 멈추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앞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광역버스를 서서 탈 수 있을까? 경기도청과 국토부 측은 "그 문제는 KD그룹이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 당국에서 불법을 종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KD그룹 측은 23일 오후 4시, 현재 입석운행 금지를 철회할 것인지를 놓고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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