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사람이 살아 움직일 때, 전율 느껴요"
[시나리오 작가를 만난다①] 영화 '두결한장' '순수의 시대' '맨홀' 김윤신 작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많지만,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들도 많아서 그런 걸까요? 시나리오는 영화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성패가 시나리오에서부터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마이스타>는 영화의 기초공사를 담당하는 시나리오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충무로의 기본을 다지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 기자 주 [편집자말]
▲ 시나리오 작가 김윤신 ⓒ 김윤신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 '시나리오 작가를 만난다' 그 첫 번째로 올해 충무로에서 떠오르고 있는 김윤신 작가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2012년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각본을 맡아 처음으로 충무로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기획개발 제작지원프로그램인 '피치&캐치'에서 극영화 수상작으로 선정돼 지원을 받은 작품입니다.
- 어떻게 시나리오 작가가 됐나요?
"중학교 때부터 영화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집안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동국대 영화영상학과를 다니면서 연출을 전공했어요. 근데 연출로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니 쉽지가 않겠더라고요. 또 무엇보다 감독은 체력이 좋아야 하는데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으로 서사창작과에 입학을 했고, 3년 동안 소설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원 다니면서 시간강사도 하고, 중간중간 아르바이트, 과외 등의 일을 계속 했죠. 정말 시나리오만 쓰면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한 2년밖에 안 된 것 같아요."
"체계적으로 시나리오 작가 관리하는 에이전시 생겼으면"
- 첫 작품이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네요.
"김조광수 감독과는 친분이 있었어요. 계속 알고만 지내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는데, 감독님이 갖고 계신 2~3줄의 짧은 기획이 있었고, 그걸 장편 영화로 데뷔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작품이 <두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입니다. 여성영화제 피칭프로그램에서 상도 받으면서 제작으로도 원활히 진행이 됐어요."
- 이후 어떤 작품을 하셨나요?
"<블라인드>를 연출한 안상훈 감독의 차기작인 <순수의 시대>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요. 2009년 8회 미쟝센단편영화제 '4만번의구타' 최우수작품상 수상한 신재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맨홀>(올 여름 개봉 예정)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습니다."
- <두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은 각본으로, <순수의 시대>와 <맨홀>은 각색으로 이름을 올리셨어요.
"각색은 말 그대로 영화적인 느낌을 더 살리게 바꾸는 경우가 있고, 영화의 콘셉트나 인물의 캐릭터를 다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중요한 에피소드만 바꾸는 각색도 있어요. 이야기의 틀 거리 안에서 어떻게 변화를 주느냐가 각색입니다. 미국에서는 각본과 각색 외에 '스크리 닥터'라고 해서 조언만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각색이 스크린 닥터의 역할까지 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각본이 각색 없이 영화화되기도 하지만 상업적인 필요에 의해서 장르적인 각을 세운다든가, 어느 부분을 부각시키기 위해 각색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메인 포스터 ⓒ 청년필름
- 감독의 이름은 많이 알지만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은 영화 담당 기자인 저도 생각해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보통 드라마는 작가 이름이 더 유명하고, 영화는 감독들이 더 유명하죠. 장르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뿐만 아니라 스태프들 이름이 다 밖으로 드러날 수는 없거든요. 그런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다만, 영화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한 중요성을 좀 더 많이 느끼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면, 더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힘이 되고, 유능한 시나리오 작가들도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 시나리오 작가들은 어딘가에 소속돼 있나요?
"미국은 작가 에이전시가 있고요, 일본도 소설가 같은 경우는 에이전시가 있어서 출판사와 작가 사이에서 조율을 해줍니다. 우리나라는 시나리오 작가들을 위한 에이전시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작가협회가 있어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고 등을 꾸준히 업데이트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들을 직접 관리하지는 않아요. 시나리오 작가 에이전시가 있어서 제도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면 더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 그럼 거의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건데, 시나리오를 맡아서 출고가 될 때까지 수익은 어떻게 받나요?
"보통 2번에 나누어서 받는데요, 계약금으로 초반에 반 정도 받고 나머지 작업이 끝나고 반 정도 받아요. 3번에 나누어 받는 경우도 있고요. 계약금·중도금·잔금, 이렇게요."
- 계약금을 받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완성했지만 영화 제작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때는 계약금 이외에는 못 받아요. 시나리오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파트의 스태프들의 작업이 중단되는 거죠. 그래도 요즘에는 시나리오작가 표준계약서가 있어서 최소한의 보장은 되도록 해 두었어요. <순수의 시대>나 <맨홀>은 표준계약서를 기준으로 작성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순수의 시대>와 <맨홀>외에 네 번째 준비 중인 작품은 무엇인가요.
"다음 웹툰 중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사랑해>라는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 중입니다. <트레이스>로 다음 웹툰에서 인기가 높았던 고영훈 작가의 작품입니다. 올해 시나리오 작업을 끝내고 내년에 영화화될 예정이에요."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을 메모하는 습관 생겨"
▲ 신하균, 장혁 주연의 영화 <순수의 시대>는 올해 상반기 개봉 예정이다. ⓒ 화인웍스
"예전에는 밤샘작업을 많이 했는데 건강에 안 좋아서 요즘에는 낮에 많이 써요. 집에서 주로 쓰고요. 밖에 나오면 사람들 구경을 많이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하기도 해서, 집중이 잘 안 됩니다.(웃음)"
- 시나리오 작가의 직업병이 있을까요?
"캐릭터가 강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말투나 표정, 그런 것을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메모하는 버릇이 생기는 거 같아요. 뭔가 기억하고 싶은 특징적인 것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요. 또 사진집을 굉장히 많이 보고 여행을 많이 다녀요. 시나리오 하나 하나 끝나면 여행 가요. 지난해에도 5주 동안 유럽 배낭여행 다녀왔어요. 미술관 다니고, 길거리에 앉아 있고 빵 하나 먹으면서 멍 때리고, 책 읽고. 배낭 하나 메고 그렇게 다녔어요."
- 시나리오 작가의 매력은?
"상상 속에 있던 인물들과 이야기가 스크린에서 나와 많은 관객들이 보는 그 순간이 굉장히 전율이 있다고 해야 하나... 진짜 내가 생각했던 이러 이러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 배우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 기쁨은 말도 못 하게 커요."
-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정말 책을 많이 읽고 영화를 많이 봐야 하는 건 불변의 법칙인 것 같아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야기를 재창조해 낼 수는 있죠.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심도 깊게 이해하고, 모방의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해요. 요즘 나온 영화도 좋지만 고전도 많이 보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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