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영화지원이 목적? CGV의 '우아한 거짓말'
극장의 영화 제작투자 진출에 커지는 수직계열화 논란
▲ 극장체인 CGV의 투자로 제작된 영화 <우아한 거짓말> ⓒ 유비유필름
총 제작비 31억 원 정도가 들어간 영화는 전국 관객 161만 명을 동원하며 117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극장과 제작사의 5대 5 부율을 감안할 때 제작비 대비 두 배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CGV 상영관이 개봉 당시 대부분 스크린을 열어 측면 지원했기에 실제 수익은 일반 영화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CJ의 기존 제작투자사(CJ E&M)가 아닌 극장 체인 CGV가 영화투자제작에 나서면서 대기업 독과점을 더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CJ의 두 계열사가 모두 제작투자에 나서는 모양새라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는 것이다.
한 영화제작자는 "CJ 그룹에 CJ E&M이라는 투자제작사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CGV라는 극장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영화로 나오는 모든 수익을 다 가져가겠다는 것"이라며, "대기업 수직계열화가 심한 상태에서 CGV가 저런 식으로 영역을 확장하면 안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CGV 측 "투자 못 받은 영화, 힘을 실어 주려는 것뿐"
하지만 CGV 측은 일단 수직계열화 논란에 대해 한국 영화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는 일이라며 다른 시선으로 봐 주길 요청하고 있다. CGV의 입장을 정리하면 상업 영화가 중심인 한국영화의 생태계에서 신인 감독 발굴을 통한 중·저예산 영화의 투자 배급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영화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CGV 관계자는 "주로 상업성이 약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거대 투자 자본이 외면하는 작품을 살려내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또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우아한 거짓말>은 메이저 제작 투자사로부터 거절당해 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려웠으나 CGV가 살려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CGV가 무비꼴라쥬를 통해 독립 다양성 영화를 지원해 왔으나, 수익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듯 이번 제작투자도 제작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독립영화 제작자와 감독에게 힘을 주려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CGV 서정 대표는 "한국 영화산업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면서 "CGV 무비꼴라쥬가 중저예산 영화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통해 인적 물적 지원을 교류함으로써 영화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CGV 측은 이 같은 수직계열화 비판에 대해 부담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특히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서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탓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CGV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우아한 거짓말>의 흥행 성적이 100만 이하가 됐으면 했는데, 그 이상이 되면서 이런 논란이 생길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며 "영화계의 반응을 주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독과점·수직계열화 심화' VS '제작비 투자지원은 긍정으로 봐야'
▲ CGV에서 독립예술영화 지원과 상영을 담당하는 부서인 무비꼴라쥬 ⓒ CGV
일단 영화계의 시선은 비판적 시각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정책전문가인 최현용 영화정책연구소장은 "하면 안 되는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예전 CJ E&M에서 저예산 영화를 담당했던 제작투자 인력이 옮겨와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독과점 문제와 수직계열화를 심화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우아한 거짓말>이 제작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영화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한국 영화 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다큐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강석필 인천영상위 사무처장은 "CGV 쪽에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적절치 않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영화인들은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CGV의 수직계열화 심화를 엄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는 "제작 배급하는 CJ E&M과 극장을 운영하는 CGV가 다른 회사라고 하더니 인제 와서 CGV가 제작 투자에 나선다는 게 우습다"며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CGV의 논리에 동감하는 의견도 엿보인다. 수직계열화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한 감독은 "직접적으로 제작에 도움을 받는 후배들 입장을 들어보면 내 의견과는 다르게 CGV의 지원을 좋게 평가하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는 "제작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라 할 필요는 없다"면서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극장업무를 맡고 있는 영화계 관계자는 "남들이 투자 안 하는 영화에 투자해 완성시키는 것이라면 영화 산업에 도움되는 측면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CGV를 옹호했다.
독립영화제작배급사인 인디스토리 관계자는 "무비꼴라쥬에서 투자 제작에 나서는 것은 뭐라 언급하기 어려우나 독립예술영화 지원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인 정윤철 감독은 "저예산 영화의 감독이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 논란이 생길 수는 있으나 너무 많은 작품에 투자하지 않고 적절한 규모에서 조절하면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독과점 논란이 있다고는 해도 현행 법적 기준에 미치는 것은 아닌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 제작에 참여한 조영각 프로듀서 역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저예산 영화의 현장 PD와 감독 입장에서는 제작 투자비용이 아쉬울 때가 많다"며 "무비꼴라쥬가 <한공주> 등의 독립영화 개봉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독립 저예산 영화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 않다"고 솔직한 속내를 내비쳤다.
중소영화 지원은 말뿐...스크린 독점으로 다른 영화 설자리 잃어
▲ 재벌그룹 CJ에서 CJ E&M은 주로 제작 투자 등을 맡고 있고 CGV는 극장 체인로 운영되고 있다. ⓒ CJ 그룹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극장이 제작 투자에 뛰어들면서 자사 영화 밀어주기가 노골적이었다는 점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개봉 당시 CGV의 거의 모든 극장에서 스크린이 배정됐다. 최근 스크린을 적게 배정하거나 시사회 대관을 거부해 논란을 빚은 <또 하나의 약속>이나 <탐욕의 제국>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독립영화들이 퐁당퐁당(교차상영)이나 상영관 배정을 제대로 못 받은 것에 비하면 사실상 특혜와 다름없다는 것이 영화계의 시선이다. 극장 체인이 제작한 영화가 결국 수직계열화를 통한 지원 속에 흥행에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설립된 한 신생 배급사 관계자는 "중소 규모의 영화임에도 200개 이상의 스크린을 가져감으로써 타 영화가 극장에 설 자리를 잃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말이 중소 영화에 대한 지원이지 자기들이 배급하는 영화에 상당한 스크린을 배정하고, 애초에 다양성 영화를 개봉하는 무비꼴라쥬 상영관에 독점으로 배급함으로써 타 다양성 영화는 아예 기회조차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내 영화제의 한 프로그래머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제작 투자와 상영이 분리돼 있는데. 한국은 하나의 회사에서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제작과 상영은 분리돼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CGV 홍보팀장은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아 CGV 외에 다른 복합상영관들이 영화를 더 많이 배정했다"면서 "예전에 CJ E&M에서 제작했으나 흥행 참패한 <알투비>에서 보듯 관객의 요구를 바탕으로 상영관을 배정하는 것이고 다른 영화관도 마찬가지 기준으로 상영관을 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CGV "영화계 의견 따라 사업 방향 고심할 것"
독립영화 정책전문가인 원승환 민간독립영화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는 "CGV가 매출 증대를 위한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독립예술영화시장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인데, 이를 좋은 의미로 포장하는 유감"이라며 "정책적 진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4월만 봐도 CGV가 지원하는 영화들이 개봉하면서 다른 영화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현장에서는 수직계열화의 문제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영화평론가인 변재란 순천향대 교수는 "일단 법적인 문제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그런 문제가 없다 보니 CGV가 제작투자에 나설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 "다만 영화계의 의견이 부정적이라면 법적 제도를 정비해 제약하는 게 적절하다"고 제도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최현용 소장은 "CGV 측이 중·저예산 영화 지원에 따른 성과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차라리 극장이 하기보다는 정식으로 다른 회사를 차려서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CGV 측은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영화계의 의견이 부정적이라면 앞으로의 사업방향에 대해 고심해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 "그간 <워낭소리> <똥파리> <지슬> 등 한국독립예술영화 제작에 기여해 온 기조를 발전시키기 위해 뛰어든 일이었는데, 그 의도가 잘 전달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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