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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호'의 박근혜, 누구를 위한 선장인가

[주장] '더러운 유착'으로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다

등록|2014.05.02 09:10 수정|2014.05.02 09:10
대한민국호의 선장인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주위의 말 잘 듣는 승무원하고만 속닥거릴 뿐 수많은 탑승객들의 안전과 요구에 귀를 닫아 버렸다. 대한민국호의 갑판 위에 물이 들이닥치면 선장과 승무원들은 가장 먼저 탈출해 배를 갈아탈 것이며, 국민 대부분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사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 운 좋은 이들은 다행히 사력을 다해 구명정에 올라탈 수 있겠지만 순진하고 말 잘 드는 이들은 선실에서 또다시 수장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호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예감은, 단지 기우에 불과할 것인가.

구조작업은 한없이 더딘데 마녀사냥은 일사천리다. 청와대, 정부, 보수언론은 희생양 찾기에 여념이 없다. 선장, 승무원들에 이어 청해진해운 경영진과 그 뒤에 도사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를 지목했다. 그러다 보니 아방궁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는 검은 사슬이 드러났고 한국선급, 한국선주협회,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등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급기야 '유병언 장학생'이었던 현직 해경 정보수사국장까지 전보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어디까지 이 파장이 이어질 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월호의 침몰에 왜 이렇게 많은 기관과 단체,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있을까.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전 회장, 한국선급, 한국선주협회, 해경의 고위 간부 등은 세월호 침몰과 실패한 구조작업, 그래서 살릴 수 있었던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각각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갖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침몰과 실패한 구조작업의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일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나는 얼마 전 "진짜 살인자는 선장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고 주장한 대독 철학자 한병철베를린예술대 교수의 말에 전격으로 동감한다. 그는 세월호를 삼킨 구조적·사회적 원인으로 노동유연화, 국가기관 민영화, 규제완화를 꼽았다. 전문성과 책임의식이 없는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채용했고, 선박 안전관리업무는 물론 해양 사고구조업무조차 사유화시켰으며, 선박 연령 제한 규정을 보완대책 없이 30년으로 무작정 연장시켰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참담한 사고가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일어났을까. 그 답은 매우 간단하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체제 중에서도 가장 탐욕스럽고 포악하고 야만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압축고도성장'을 일궜다.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고 국민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하지만 그 속에 엄청난 모순이 담겨 있었다. 한국자본주의의 심장에는 처음부터 '승자 독식주의'라는 확고한 원칙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국민 대부분에게 치명적인 독이었지만 재벌을 비롯한 소수 권력집단에게는 거룩한 성배나 다름없는 축복이었다.

한국의 국가권력과 정치권력은 경제권력의 포악한 탐욕을 규제하기는커녕 이를 비호하고 심지어는 부추기고 있다. 세월호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강 유람선 사고로 세모그룹의 모기업인 세모는 경영난으로 1997년 부도를 맞았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청해진해운과 청해지, 문진미디어를 비롯해해운, 조선, 미디어, 건설 등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을 세웠다. 청해진해운은 폐기돼야 마땅한 선박을 일본에서 인수해 여기저기를 마구잡이로 불법개조했다. 돈을 걷어들일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안전진단은 오히려 이를 감싸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계속 드러나는 청해진해운의 광범위한 로비활동이 이를 방증해준다.

탐욕자본과 기업가는 돈을 살포해 권력의 비호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더러운 유착(dirty connection)' 관계가 확대재생산된다. 청해진해운, 그리고 그와 관계된 기관들은 이 더러운 유착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해경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를 기다리며 초기 구조작업을 지연시켰다는 의혹도 터져나오고 있다. 가라앉은 뱃속에서 아이들이 에어포켓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조작업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자 청와대와 정부는 신속하게 마녀사냥에 나섰다. 합동수사본부는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전격적으로 곳곳을 압수수색하며 매일 혁혁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와 아이들의 죽음을 오로지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

세월호 침몰과 같은 대형 사고는 언제라도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사태를 수습하며 한 명이라도 죽음으로부터 구조해 내는 게 바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내고 있는 세금에는 분명 이런 몫으로 할당된 부분이 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우리는 이런 것을 기대할 권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정부기관, 해경이 한 일은 과연 무엇인가. 더러운 유착에 길들여진 그들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주머니를 생각했고 초기구조작업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전문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국무총리와 관료들은 쓸데없이 현장에 내려와 우왕좌왕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자본과 자본가의 탐욕은 제어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은 있어야 한다. 꽃다운소중한 아이들을 무더기로 수장시키는 참담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선을 긋고 지키도록 강제해야 한다. 이게 바로 청와대와 국가와 정치가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기관과 의회는 이런 최소한의 임무조차 방기했다. 대통령은 현장까지 내려갔지만 실속없이 겉도는 명령만 내렸다. 대통령은 합동분향소를 찾아갔지만 유족들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만을 따르는 가신들 앞에서 혼잣말하듯 "사과"라는 단어를 읊었다. 그 와중에 청와대 대변인은 주군을 보호한답시고 "유감" 운운해 유족들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았다. 급기야 불신은 '대통령할머니' 논란으로 이어졌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초기 대응만 잘 했어도 대다수탑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해경 등이 초기 구조작업만 잘 했어도,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한 대통령과 정부관료와 해군만 아니었어도 탑승객들을 대부분 구조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심했고 앞으로도 그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사과'에 목을 매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면서 근본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개혁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그들은 '사과'를 빌미로 또다시 대통령에게 떼를 쓰고 있다. "제발 좀 사과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국무회의장에서 하건, 직접적으로 대국민 사과를하건 생각과 성향과 고집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왜 그렇게 '사과'에 연연할까.

침몰하고 있는 대한민국호에서 야당은 어떤 자리에 서있을까. 혹 세월호에서 벌어졌듯 선장과 승무원들이 자기들만의 탈출을 모의하고 있는 조타실 옆에서 귀동냥하며 어떻게든 같이 탈출하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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