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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새겨진 생활용품, 이런 뜻이 있었네

[박물관과 미술관 기행 21] 한국 어구박물관 2

등록|2014.05.02 09:53 수정|2014.05.02 09:53
서적과 문서 그리고 고서화에 나타난 물고기 문화

▲ '어약해중천' 부적 ⓒ 이상기


물고기 관련 생활용품이란 물고기와 어류가 우리의 삶과 문화 속에 투영되어 만들어진 의미 있는 물건들을 가리킨다. 이들 생활용품에는 고서화, 서적과 문서, 도자기, 고가구 및 목기, 자수품, 석물, 청동 및 철기 제품 등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 유물은 생활사 박물관 또는 민속박물관에서 자주 보아오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물고기 문화 분야를 특화해 어구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고서화에서 물고기는 다산과 풍요, 입신출세와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잉어는 입신출세와 효의 상징이며, 게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다. 그래서 어해도(魚蟹圖)라는 이름의 병풍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 외 물고기가 바다에서 하늘로 뛰어오르는(魚躍海中天) 부적도 보이고, 물고기가 아들 셋을 점지해 주기를 바라는 부적도 있다. 이들 부적에는 공통적으로 귀신 귀(鬼)자가 적혀 있다.

▲ 수산, 선박, 해운 관련 책자 ⓒ 이상기


그럼 서적과 문서에는 물고기가 어떻게 묘사되고 그려지고 표현될까? ≪고문진보≫ '어부사(漁父辭)'에는 굴원(屈原)과 어부의 대화가 적혀 있다. 굴원이 세상의 타락함을 한탄하며 차라리 상수(湘水)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되는 게 낳겠다고 말한다. 이에 어부는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 말하고는 가버린다.

서적류는 일제강점기에서 근대까지 나온 수산, 선박, 해운 관련 책자다. 그 중 수산분야가 많은데, 어류학, 어류 생태, 양어, 해양 어장, 어장 개발 등에 관한 책자다. 최근 자료로는 '우리나라 수산어획도'도 있다. 바다에서 잡히는 어류와 해조류가 그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주변에 세계 어장, 우리나라 수산업, 특수어구 등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아랫부분에 "바다는 삼천만을 부른다. 수산자원은 우리의 생명선"이라는 표어도 보인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나온 '조선지방의 특산물 지도'도 있다. 그곳에는 조선반도의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농림수산물이 그려져 있다. 

도자기와 옹기, 접시와 사발에 그려진 물고기 그림

▲ 어문 도자기 ⓒ 이상기


물고기가 있는 생활용품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도자기다. 백자에 파란색 물고기를 그려 넣은 청화백자는 정말 아름답고 멋이 있다. 또 비색이 도는 청자에 흰색으로 표현된 물고기는 고귀하다. 그리고 접시와 사발에 그려진 새우와 게는 친근감을 준다. 이처럼 물고기는 생활자기를 통해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다.

도자기는 큰 것의 높이가 75㎝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작품이 조선말이나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져 역사적으로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다.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도자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이들이 생활도자기로 만들어져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도자기 중에는 술병으로 쓰였던 청화백자 어문주병이 상태가 좋은 편이다.

▲ 어문 옹기 ⓒ 이상기


접시와 사발은 물고기 문양을 넣은 것도 있고,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것도 있다. 또 물고기나 게를 양각한 것도 있다. 이들 접시와 사발은 모두 근대 작품으로 최근까지도 우리가 사용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최근에 서양의 자기가 들어오고 젠 스타일이 강조되면서 이들 전통자기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옹기 역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대표적인 생활용품이다. 이 옹기에 물고기 문양과 풀꽃 문양이 많이 그려져 있다. 물고기는 잉어 같은 큰 고기를 표현했다. 그 외 새우와 주꾸미도 나타난다. 이들 옹기는 물동이, 소금 항아리, 장 항아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유약을 바르지 않은 질그릇과 떡시루도 있다. 그 외 기와에서도 어문이 발견된다.

고가구와 목공예품에서 물고기를 찾다

▲ 금속으로 만든 물고기 ⓒ 이상기


고가구 및 목공예품에서도 물고기를 볼 수 있다. 고가구로는 반닫이, 장, 서류함, 문갑, 평상과 소반 등이 대표적이다. 장과 반닫이의 경우는 나무에 물고기를 새긴 것보다, 금속 장식이 물고기 모양인 사례가 많다. 나무에 직접 장식을 한 것은 좀 더 희귀한 경우로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평상과 소반은 고가구 중 가장 자주 보는 것으로 상의 판에 물고기와 새우 등을 그려 넣었다.

고가구 중 화려한 것은 자개장이다. 자개장이 화려한 것은 자개를 박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개로 만든 꽃과 물고기 등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목공예품으로는 떡살과 다식판 등이 흔한 편이다. 이곳에도 꽃과 물고기 등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필통과 실패도 물고기 문양을 조각하거나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들 모두는 한 시대 우리의 생활용품으로 중요한 역학을 했다.

의류에 한 땀 한 땀 수 놓은 물고기 

▲ 물고기 자수 병풍 ⓒ 이상기


현재 의류에 있는 물고기는 대부분 날염 방식으로 프린트하지만, 과거에는 자수 방식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만들었다. 자수로 만든 생활용품에는 의류 외에도 병풍, 책상보와 상보, 침구류 등이 있다. 병풍은 산수, 꽃, 십장생 등을 즐겨 표현하지만, 가끔은 잉어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은 잉어가 효를 상징하고 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책상보와 상보는 냉장고의 사용과 함께 그 쓰임새가 많이 줄었다. 그래서 오히려 수집의 대상이 된 경향이 있다. 그리고 책상보 보다는 상보에 어류가 많은 편이다. 그것은 책상이 공부와 관련이 있는 반면, 상보는 음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어류는 인류의 역사 이래 먹거리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그 때문에 상보에 물고기를 표현했던 것이다.

▲ 석물 속의 물고기 ⓒ 이상기


그 외 물고기 문양은 커튼, 이불보, 옷 커버 등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그 옆에는 행복, Sweet Home 같은 글자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현대로 오면서 잉어와 같은 큰 물고기 대신 금붕어와 같이 작고 색깔이 아름다운 작은 물고기가 선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다 시류(Trend)고 유행이다.

돌로 만든 물건에도 물고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유철수 관장은 돌로 만든 석물도 수집 전시하고 있다. 맷돌, 다듬이돌, 약초를 가는 풀매, 수조(水槽), 절구, 벼루 등 생활용품도 있고, 향로석, 부도석 같은 의식 관련 석물도 있다. 그리고 공예품도 있다. 맷돌에 새겨진 물고기를 보면 잉어일 가능성이 크다. 풀매에 새겨진 물고기도 잉어로 보인다. 이 풀매에는 '서기 1963년 7월 20일 신천당약방'이라는 명문이 있어 시기와 사용용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 물고기를 안고 있는 문인석 ⓒ 이상기


다듬이돌의 물고기는 금붕어다. 물을 담아두는 석조(石槽), 고춧가루 등을 빻는데 사용한 절구 바깥에도 잉어가 조각되어 있다. 이들 석물은 예술성이 높지는 않지만 생활용품이라는 면에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조각이 정교한 것은 오히려 벼루다. 벼루 바깥쪽으로 잉어, 거북이 보이는데, 그것은 입신출세와 장수를 상징한다.

석물이 돌을 깎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화석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물이다. 시기적으로 좀 더 가까운 화석은 어류와 조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더 오래된 화석은 삼엽충과 같은 것들이다. 유 관장은 요즘 수상생물 화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정원에서 물고기를 들고 있는 문인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별의별 석물이 다 있다.

어구와 물고기 문화를 알리기 위해 TV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 어탁으로 'TV 진품명품'에 출연 ⓒ 이상기


유철수 한국 어구박물관장은 한국의 전통어구와 물고기 문화를 알리기 위해 TV에 10여 번 출연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KBS TV 진품명품'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탁을 소개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면정연구(面政硏究)]라는 표지 속에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제작된 16장의 어탁이 철해져 있었다. 그는 이것을 대구의 한 골동품상에서 구입했다.

이 어탁에는 잡은 날짜, 잡은 장소, 미끼, 물고기의 크기, 무게, 잡은 사람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1930-40년대 낚시와 어탁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어탁을 만든 사람은 최두원(崔斗源)이다. 그는 아마 면정을 연구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또 글씨를 잘 쓴 것으로 보아 공무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만든 어탁 중 가장 오래된 1938년 작품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낚시 장소: 김포군 양서면 개화리 부평수리조합 수로제방 동편 수문 아래. 낚시한 날: 소화 13년(1938년) 9월 4일. 길이: 5촌 5푼(16.5㎝) 중량:  낚시꾼: 최두원."

▲ 그 외 TV 출연 ⓒ 이상기


어탁으로 보아서는 붕어다. 이 어탁에는 미끼는 물론이고 낚시 채비까지 적혀 있어 낚시의 역사를 아는데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이 어탁을 통해 우리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최두원의 7년간 출조 행적과 결과를 알 수 있다. 낚시꾼(釣人) 최두원이 잡고 만든 어탁이 발견되기 전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어탁은 1957년 문종건이 잡고 만든 붕어 어탁이었다.

유철수 관장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두원 어탁의 가격을 70만원으로 적었다. 70만원은 이 어탁을 구입한 가격에 소유년도를 감안한 액수다. 이에 대해 감정위원들은 유철수 관장이 고미술상을 운영한다는 점을 감안, 1938년 어탁 한 점에 대해서만 100만원을 책정했다. 문화재의 가격은 주관적이어서 수요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다. 유 관장은 이처럼 TV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물고기 문화를 세상에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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