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오페라 '살로메', 문제는 균형
[리뷰]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개막작, 한국오페라단 '살로메'
▲ 한국오페라단 '살로메'. 살로메(카티아 비어 분)가 세례 요한의 참수된 머리를 놓고 기뻐하는 모습 ⓒ 문성식
제5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위원장 김귀자)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 2일 한국오페라단(단장 박기현)의 <살로메>로 성대한 개막을 올렸다.
2010년 시작해 올해로 5회를 맞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올해는 성서내용 오페라가 <살로메>(한국오페라단), <삼손과 데릴라>(베세토오페라단), <루갈다>(호남오페라단) 세 작품으로 눈에 띈다. 이중 <살로메>, <삼손과 데릴라>는 팜므파탈 이야기다. 그리고 <나비 부인>(글로리아오페라단), 창작오페라 <천생연분>(국립오페라단)까지 흔하지 않은 오페라 레파토리를 만날 수 있다.
2일 개막을 알린 한국오페라단의 <살로메>는 과연 논란의 중심이 있는 공연이었다. 1994년 프랑스 바스티유오페라단과 정명훈 지휘의 바스티유오케스트라에 의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개관기념으로 공연된 이후 21년 만에 같은 곳에서 공연되는 대작 오페라 <살로메>를 선택한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 제일 큰 박수를 받을 일이다. 성서를 바탕으로 한 '팜므파탈'이라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극을 보는 동안 때로는 전율까지 일으켰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큰 각오로 임한 공연인 만큼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측면들이 보였다.
우선은 '해석'의 문제이다. 연출인 마우리지오 디 마띠아는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인 기원전 30년 경 갈릴리 호수근처의 헤롯왕의 궁전을 오히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인 2114년의 궁전무대로 설정했다. 100년 후인 것은 좋다. 그런데 무대배경이나 의상이 전혀 미래적이지 않다. 무대는 여느 시대의 큰 계단을 내려오는 큰 궁전홀이다. 물론 지난 100년간 세계의 의상변화를 본다면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의 의상이 그렇다고 우주복처럼 변해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궁정의 헤롯왕과 유대인, 나자렛인들, 병사 등 남성의상은 수트나 청바지 등 캐주얼한데 비해, 살로메와 헤로디아, 무희들의 의상은 중세 귀족풍의 드레스 의상에 머무른다. 오늘날 어느 연회장에 가서 볼 수 있는 여성의 드레스라도 그 정도로 트렌드에 뒤떨어지게 입지는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연출의 이태리팀과 의상의 한국팀 사이의 균형이 일치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다음은 음악이다. 사실, 첫 번째 문제로 삼아야 할 부분이 음악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오페라가 무대, 의상, 연기, 음악의 종합예술이지만 음악의 안정된 뒷받침 위에 모든 것이 쌓아올려진다. '음악'의 속성상, 다른 것은 어느 수준이하로 되어도 관객이 감당할 수 있지만, 음악은 '귀'로만 듣는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음이 틀리거나, 타이밍이 정확하지 않으면 무척 불편하다.
▲ 연출의 마우리지오 디 마띠아는 기원전인 원작의 배경을 2114년의 미래로 옮겨, 퇴폐적이고 암울한 느낌으로 그렸다. ⓒ 문성식
무슨 말이냐면 음악은 애석하게도 웬만히 잘 연주되지 않고서는 특히 타 분야와 협업 시에 모든 죄를 뒤집어쓰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물론 바그너풍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살로메> 음악이 반음계적인 화성과 극단적 도약음 등 어렵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것을 이만큼이나 잘 연주해 오페라가 이루어지게 뒷받침해 준 반주 음악의 노고를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음정, 박자, 타이밍은 기본이다. 지휘자(마우리지오 꼴라산티)의 사인에 한 번도 오케스트라(서울필하모닉) 모든 단원이 동시에 음을 낸 적이 없었다면, 할 말 다했다. 지휘자가 문제인가, 오케스트라가 문제인가.
맨 마지막 장면, 헤롯왕이 세례 요한의 참수된 머리에 키스하며 기뻐하는 살로메를 총으로 쏴 죽이고, 옆의 경호관을 죽인다음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결하는 장면은 납득하기 어렵다. 살로메의 광기에 질렸고, 세례 요한과 그의 주님을 두려워하는 헤롯왕이지만 그가 자결하기 위한 복선, 예를 들면 그가 요한을 두려워한다는 강한 인상이나 요한의 계시자로서의 힘 등이 극중에 잘 서술되지 않았다.
또한, 7개 베일을 벗은 살로메가 주역인 덕분으로 알몸이 아니라 기본 속옷은 입고 있었던 것은 당연한 존중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참수된 요한의 머리를 감싸 안는 장면에서 그토록 두꺼운 타르탄 망토를 걸쳐야만 했는가. 원래 이 희곡과 오페라 작곡 당시의 의도는 살로메가 '거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몇 가지 의문점이 있었지만 더욱 의문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치명적 매력과 욕망의 팜므파탈을 그린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원작과 그것을 말할 수 없이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슈트라우스 음악 덕분인가.
▲ 한국오페라단 '살로메'. 세기말의 퇴폐적인 느낌을 2114년으로 설정했다. 헤롯왕 역의 박준혁의 연기와 열창이 돋보인다. ⓒ 문성식
살로메가 요한을 욕망하며 요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대목, 살로메가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추고 나서 그 대가로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헤롯왕에게 요구하는 '7개 베일의 춤' 장면의 긴박감, 유대인들과 나자렛인들이 선지자의 존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장면 등 중요 장면들에서는 평소에는 다소 삐그덕거리던 오케스트라가 희한하리만치 멋들어지게 음악을 버무려냈고, 또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노래 덕분에 극의 메시지 전달에는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아름다운 무희 네 명이 알몸으로 무대 한가운데 정면으로 위치하는 10분간의 충격적인 장면, 미래시대의 표현과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지는 굉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갱들이 타고 다니는 두 대의 오토바이를 무대 위에 등장시키는 등 이전에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함부로 시도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과감히 감행하여 국내 오페라 무대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이날 공연은 사실 주역가수들의 활약 덕분에 살아난 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음악코치인 신영주의 공이 커 보인다. 1막 서주부에 왕궁의 병사를 오토바이와 갱단으로 표현된 데서 받은 충격, 세기말적인 퇴폐적인 느낌의 표현을 위해 가수들이 시종일관 서로 어루만지고 비벼야 하는 장면을 보면서 느껴지는 불쾌감, 오케스트라 반주의 엉성함 등이 그나마 성악가들의 충실하고 성실한 연기와 노래로 모두 감싸졌기 때문이다.
▲ 헤로디아(양송미 분, 5/3-4 공연)가 무희들에 둘러싸여 있다. ⓒ 문성식
유일한 해외 출연진인 살로메 역의 소프라노 카티아 비어는 폭발적으로 풍성한 성량과 매력적인 연기로 의붓아버지에 대한 반항과 소녀의 호기심 등을 잘 그려내었다. 헤롯왕 역의 테너 이재욱 역시 의붓딸을 욕망하지만 예언자의 말을 두려워하는 헤롯 왕 캐릭터를 시원하고 막힘없는 목소리와 뛰어난 연기로 잘 보여줬다.
바리톤 박준혁도 차분하고 중후한 목소리로 요한을, 메조 소프라노 김선정은 노련한 연기와 시원하고도 안정된 소리로 헤로디아를, 테너 강동명 역시 맑고 시원한 음색으로 살로메를 욕망하는 나라보트 역을 잘 소화했다.
이번 공연에 대해 덧붙이자면, 공연을 앞두고 살로메 역의 외국인 성악가는 2-3주 전에 배역을 취소하고 본국으로 돌아갔고, 헤롯 역의 한국인 성악가는 공연 프로그램 인쇄 직전 출연을 취소했다는 후문이다.
이태리 연출의 파격적인 연출 방향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공연의 서주 음악과 함께 살로메의 퇴폐적이고 미래적인 배경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연출 본인이 무대에 올라가 왈츠를 추는 장면을 선보이는 '대단한' 열정과 '특이한' 무대철학을 보여주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오페라 연출팀은 해외팀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지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국오페라단(단장 박기현)의 <살로메>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5월 4일까지 공연된다. 다음 오페라는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의 <루갈다>(5/9-11)이다. 글로리아오페라단(단장 양수화)의 오페라 <나비부인>(5/16-18), 베세토오페라단(단장 강화자)의 <삼손과 데릴라>(5/23-25),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천생연분>(5/31-6/1)도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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