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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통한 치유

사람은 한권으로 된 이야기책이다

등록|2014.05.03 20:00 수정|2014.05.03 20:00

▲ 우리 가족이 살고있는 동네에 있는 호수 ⓒ 고영수


"이리와 봐요, 전망이 너무 좋다."
"저 야산 올라가는 길은 몇 년 전 금강산 갔을 때 등산했던 그 길과 똑같네."

아파트 14층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보며 큰 누님과 매형이 대화를 나눈다.

설날 우리 가정은 큰 형님댁에서 모였다. 형제가 7남매다 보니 거기에 딸린 조카들까지 명절만 되면 북적거린다. 큰 형님 가족은 지난 달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했다. 변두리에 위치해있어 조용하고, 14층이라 전망도 좋아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거실도 커피숍 분위기가 나는 인테리어로 한껏 분위기를 연출했다. 큰 형님 가족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하나는 군대에, 또 다른 하나는 지방 대학교에 보냈다. 형님 부부는 적적할때면 커피를 마시며 창 너머 전망을 내다보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내 옆에서 풍경을 내려다 보던 작은 형님은 전철 노선의 휘어진 선로가 아름답다고 했다. 젊은 시절 연애할 때 가보았던 아름다운 동해안 해안선이 생각난다고 도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조카는 군 부대에 시선이 꽂혔나보다. 드넓은 부대 운동장이 한겨울에도 눈 하나없이 깨끗이 치워진 풍경을 보며 군대가면 눈을 치우기가 힘들겠다고 지레 걱정하고 있다.

내 시선은 산 밑에 있는 한 채의 집으로 향했다. 시골에서 살던 고향집이 꼭 그랬다. 일자로 된 마루 하나에 방 두칸 있는 집,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아랫집 윗집으로 오가며 소꿉놀이 하던 곳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창밖을 내다보며 나누던 이야기들은 거실에 둘러앉아 끝없이 확장되고 있었다. 한 두명씩 저 마다의 기억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어 나누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시골에서 살면서 고생했던 이야기, 자녀들 군대이야기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그 이야기들 가운데는 아픈 기억, 좋은 추억도 있었지만 모두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들이었다. 힘들었던 과거를 이야기 할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청소년과 성인으로 자란 조카들도 이야기에 끼어든다.

"엄마, 우리 가정이 옛날에 진짜로 먹고 살기 힘들었어요? 시골에 살 때 정말 그랬어요?" 믿기지 않는 듯 질문은 이어진다. 옛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경험하는 풍족함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것 같았고,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우리의 눈물 샘을 적신 이야기는 큰 형수님의 이야기였다. 20여년전 신학을 하는 큰 형님과 결혼 생활 할 때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했다. 첫 아들을 낳고 경제적으로 힘이 들었다.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갔다. 유치원에서 수박씨를 갖고 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당시 수박을 살 돈이 없어서 이웃집 쓰레기통을 뒤진 이야기를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식구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깊이 숙인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요즘 같이 삭막하고 외로운 세상에는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여러 이야기로 엮어진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동시에 생겨나고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이야기를 말할 수 있다. 어찌보면 사람은 한권으로 된 이야기 책과 다름없다. 내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구원과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이야기는 늘 똑같지 않아서 더욱 좋다.
덧붙이는 글 외롭고 상처많은 시대에 살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구원과 치유를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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