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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통해 보는 발상의 전환

[김성호의 독서만세①] <한 권으로 보는 사기>

등록|2014.05.06 12:20 수정|2020.12.25 15:57

한 권으로 보는 사기서해문집에서 나온 <사기> 번역본 ⓒ 서해문집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가는 누구일까? 키케로에 의해 '역사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들었던 헤로도토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격언으로 유명한 E. H. 카,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 20세기를 대표하는 사학자 에릭 홉스봄 등 기억되어 마땅한 뛰어난 역사가들이 많지만 나라면 주저 없이 '사마천'의 이름을 가장 앞에 둘 것이다.

당대 중국의 전 역사를 질서정연하게 기록한 불후의 역사서 <사기>의 저자로서 사마천이 이룩한 업적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역사가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E. H. 카의 유명한 문장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란 현재의 눈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사마천의 <사기>는 저술과정에서의 감동적인 사연은 물론이고 그 안에 담긴 내용과 서술방식인 형식에 있어서까지 후세인들에게 깊은 감명과 깨달음을 주는 위대한 저작이다.

급변하는 21세기의 흐름 속에서 '발상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필수요소가 된 지 오래다. 시대를 선도하는 몇몇 선구자들의 발상의 전환이 곧 사회 전체의 개념, 가치, 인식을 전환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오고 수많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겪으며 사회가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믿음이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은 물론이고 마크 주커버그의 SNS 혁명이나 스티븐 잡스가 주도한 스마트폰 혁명에 이르기까지 몇몇의 '발상의 전환'들이 모여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사회는 그렇게 조금씩 발전해왔다.

<사기>는 그 자체로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가장 훌륭하며 혁신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사마천은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기존의 서술방식에서 탈피해 본기(本紀), 표(表), 세가(世家), 서(書), 열전(列傳)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함으로써 기존의 단점을 보완하는 한편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시도를 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역사서와 그 형식과 내용을 크게 달리하는 것이었다.

편년체(編年體)와 달리 인물의 전기(傳記)를 이어 적어 한 시대의 역사를 구성하는 기술 방법인 기전체(紀傳體)가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존의 역사서술체계를 혁신적으로 뒤집은 시도였으며, 역사가인 저자의 의견을 적극 표명하는 서술방식 역시도 서양에서는 18세기 말엽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흥망사>에 이르러서야 달성되는 것으로 평가될 만큼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사기>는 수 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 불후의 역사서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용에 있어서도 <사기>는 발상의 전환과 관련한 훌륭한 예시들을 수도 없이 품고 있는 저작물이다. 전국시대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이룩하는 진(秦)나라의 본기와 상군열전을 보면 상앙이라는 재상이 등장한다. 그는 진나라 효공을 모시며 두 차례 변법을 성공시켜 엄격한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왕권을 강화해 천하통일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수 천 년 동안 봉토를 다스리는 왕과 그를 보좌하는 귀족들에 의한 통치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상앙은 법가의 공부와 일종의 정치행정학인 형명학(形名)을 바탕으로 두 차례나 법을 개혁하고 역사상 단 한 번도 시행된 적 없었던 강력한 법에 의한 통치체제를 확립시켜 나라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었다.

같은 시대 제(齊)의 맹상군(孟嘗君), 위(魏)의 신릉군(信陵君), 조(趙)의 평원군(平原君), 초(楚)의 춘신군(春申君)처럼 왕 못지않은 권위를 누리는 귀족들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풍토에서 특권층을 해체하고 강력한 법치주의를 실현한 것은 발상의 전환에 대한 한 가지 예시라 할 수 있다.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관중에 입성한 후 펼친 유방의 법제개혁 역시 발상의 전환이라 할 만하다. 관중 입성 직후 그는 '사람을 죽인 자, 사람을 다치게 한 자, 도둑질을 한 자만 처벌하고 그 외에 모든 법령을 폐지'하는 '약법삼장'을 발표했다. 이는 오직 법에 의해 백성들을 다스리던 당시 진나라의 통치체계를 전면으로 개편한 것으로 향후 유방이 민심을 얻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국시대 외교술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소진의 합종책 역시 발상의 전환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예시다.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연나라의 재상 소진은 제, 조, 한, 위, 초를 설득해 6개국의 합종을 이루고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직함으로써 진나라의 진출을 십 수 년 간 저지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수 백 년 간 서로 싸워온 여섯 나라가 합종의 동맹을 이룬다는 소진의 합종책은 당대로서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방안이었고 그렇기에 이 역시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방을 도와 항우의 초(楚)나라를 물리치고 한(漢)나라를 세우는데 일등공신이 된 한신은 발상의 전환과 관련하여 <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 병법과 용병술에 있어 한신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일화가 워낙 많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배수진'으로 알려진 '정형 전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 전투에서 병법을 교과서적으로 적용하던 기존의 전투방식을 파격적으로 전환해 조나라의 군대를 대파하고 유방의 천하통일에 크게 기여한다. 그는 불과 2만의 병력으로 20만에 이르던 조나라의 군대를 격파하기 위해 강을 뒤에 두고 진을 쳐 조나라 군대를 유인한 뒤 별동대를 통해 성을 점령하고 이에 당황한 적을 협공하여 격파했다.

전투가 끝난 뒤 부하장수들이 "병법에 의하면 산은 등지고 강은 앞에 두라 하였는데 장군은 오히려 그 반대로 하는 진형으로 승리하였으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묻자 한신은 이렇게 답한다.

"이것 역시 병법에 나와 있는 것이다. 다만 그대들이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병법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죽을 땅에 빠진 후에야 비로소 살 수 있고, 망한 땅에 서 본 후에야 비로소 흥할 수 있다'. 지금 우리 부대는 잘 훈련된 군대가 아니라 평소 훈련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끌어 모은 오합지졸의 병사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뒤로 물러서면 곧 죽음뿐이라는 결사적인 자세로 싸우도록 해야지 넓은 땅에서 싸우게 하면 모두 뒤로 도망치기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한신의 '배수진'이다. 위에서 보듯 한신은 병법의 교과서적인 적용을 거부하고 병법의 원리를 재해석한 배수진을 통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처럼 배수진은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 준 새로운 개념의 전술이었다.

사마천은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이란 가슴에 맺힌 한을 토로할 수 없는 경우에 옛날 일들을 엮고, 미래에 희망을 갖기 위해 명저를 남기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하였다. 발상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는 오늘, <사기>에 담긴 많은 사례를 통해 미래에 하나의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발상의 전환에 대한 교범으로 <사기>를 읽는다면 어떤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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