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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카네이션 그리고 천 그릇의 삼계탕

어버이날, 이렇게 보냈습니다

등록|2014.05.08 14:59 수정|2014.05.08 14:59
어버이날! 아침에 서울서 직장 다니는 막내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낳아주고 키워주고 직장인이 되기까지 고생해서 뒷바라지 해주어 고맙다는 것과 자기가 막내라서 가끔 안하무인처럼 버릇없이 굴어 죄송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어버이날 직접 만든 카네이션직접만든 어버이날의 카네이션들 ⓒ 이영미


어버이날 이라고 오늘은 일하는 곳의 직원들은 모두 한복을 곱게 입었다. 어버이날이 되기 전 수십 명의 우리 직원들은 1000개의 카네이션을 일일이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오전 9시부터 모두 현관에 도열하여 들어오시는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꼬옥 껴안으면서 감사 인사를 하였는데 머쓱해 하는 어르신들도 많았지만 진정으로 고마와서 환히 웃는 분들도 많으셨다.

"아이구! 고마워라! 차암 이쁘구먼!"

하고 카네이션에 감탄하는 할머니들도 있었고 어떤 어르신은 마음이 고파서 여러 송이 받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거동을 못하고 홀로 방에 있거나, 아니면 복지관에 오지 못하는 공원에 있는 누군가를 주려고 하는 나누는 마음이 너르신지 알 수가 없지만 카네이션을 몇 송이 더 받아가기도 하였다. 어떤 어르신은 카네이션 자체를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분도 계시고, 받았다가 나중에 슬쩍 빼서 휴지통에 넣는 분도 있었다.

카네이션 달아드리기어버이날에 카네이션 달아드리기 장면 ⓒ 이영미


어르신들은 어버이날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를 드셨는데 오늘의 식사는 삼계탕과 떡을 비롯한 과일과 음료수이었다. 1000그릇의 삼계탕을 준비하기 위해서 역시 직원들은 하루 전에 일일이 닭을 직접 씻었다.

그리고 어떤 어르신은 배가 고프신지 아니면 저녁에 드시거나 누구에게 나눠주려고 하였는지 삼계탕의 고기를 비닐에 담고 다시 닭을 한 번 더 받으신 분도 있고 음료수도 더 받으신 분도 있었다. 자원봉사센터에 연락하여 자원봉사아줌마 아저씨들 지원도 받고 대학생 자원봉사자도 받아서 카네이션과 삼계탕 나누기 행사는 무사히 마쳤다.

받아도 받아도 허전한 마음들의 어르신들과 삼계탕을 올해 처음 드신다는 어르신들도 있는 반면, 어떤 어르신은 어버이날 무료로 특식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평소와 똑같이 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 교육프로그램만 수강하는 분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어버이날이 기념해야 할 만한 특별한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평안한 날인 모양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찾는 불청객인 예비후보들은 있었다. 평소에 가끔 평일에 와서 매일 수 백 명의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에 배식봉사를 왔으면 좋으련만, 평일은 오지 않다가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와서 식사를 하시는 어르신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작년에는 어버이날 행사는 올해보다 좀 더 풍성했다. 올해도 작년처럼 장기자랑대회도 하고, 좋은 공연관람도 기획했지만 세월호 여파로 취소하고 그런대로 카네이션과 선물과 삼계탕을 나누는 정도에 그쳤다.

행사가 간소해져서 직원들 중에는 60세가 다 되는 선생님께서 오늘 연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으셨는데 어제 물어보았더니 요양원이나 시골에 있는 80~90대의 부모님을 뵈러 가신다고 하였다.

어버이 날이 되면 예외없이 나도 부모님을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으로만 뵐 수 있는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다. 막내라서 형제들 보다 부모님과 함께 잔정을 나눈 시간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가끔은 보고 싶어서 그리움이 가슴에 가득차서 먹먹해지고 눈이 젖어 온 세상이 아스라한 안개빛이 된다. 그러다 보니 60세가 다 되었는데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분들은 은근히 부럽기까지 하다.

누군가는 많이 외롭고 힘들거나 또는 무척 기쁜 일이 생기면 사랑을 많이 주던 부모님을 생각하게 된다고 그랬다. 그런 경우도 많지만 특별히 힘들거나 기쁘지 않아도 어버이날, 또는 맛있는 음식을 보거나 좋은 여행지를 가보거나 또는 지는 노을이 무척 아름다울 때도 문득 부모님이 생각날 때도 있다. 부모님만 생각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냈던 딸들의 생각도 나고, 나누어 주고 싶은 특별히 아픈 친지도 생각이 안다.

그저 아무것도 특별히 해주지 않아도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몸이라도 늘 그 자리에 언제나 반가이 맞아주는 미소로 안녕히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아마 나도 이제는 딸들에게 무언가 특별히 해주는 것이 없어도 '가시자리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꽃자리' 구상시인의 표현처럼 남들이 보면 외롭고 어려운 것 같이 보이지만 알고보면 좋은 인연들로 정감 풍성한 내 삶의 자리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좋은 어미 노릇인지 모른다.

어버이날 기념 카네이션꽃꽂이어버이날 행사에 오는 어르신들을 위한 꽃꽂이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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