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책표지 ⓒ 샘터, 2014
여러분들은 장을 어디서 보시나요? 아마 도시에 사시는 분들은 대부분 대형마트를 애용하실 겁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집에서 대형마트의 온라인몰에 접속해서 장바구니에 담고 카드로 결제하면 원하는 시간에 마트직원이 장을 대신 봐서 배달을 해주기까지 하죠.
직접 가는 경우에도 마트를 이용하는 고객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주차가 편하고, 신용카드 할인도 되고, 1+1 행사도 자주하고, 많이 사면 VIP대접도 해주면서 포인트도 더 적립을 해준다고 하니까요.
반면 전통시장은 주차가 불편하고 환경이 낙후됐다는 이유로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과연 전통시장은 대형마트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 자칭 타칭 '상품가치연출' 전문가로 불리우는 비주얼 머천다이저 이랑주씨가 세계의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점포를 둘러보고 그 가게들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비법을 담은 책을 내놓았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배우는 전통시장이 살아남는 비법
해외에서도 다양한 대형마트들이 저렴한 가격과 쇼핑하기 좋은 환경을 내세워 고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형마트는 인터넷 쇼핑으로 대체될 것이고, 전통시장이 먹고 즐기고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을 살 수 있는 커뮤니티 중심지로 살아남을 것." - p.20 영국과 스페인 상인들의 이야기
영국 런던의 버러 마켓 치즈 가게에서는 치즈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줍니다. 또 가리비를 파는 가게에는 주인이 직접 가리비를 잡는 사진이, 과일과게에는 주인이 사과를 따는 사진 등이 매장에 걸려있습니다.
이는 매장에 진열된 품목들이 어디서 왔는지 신뢰를 주기도 하며 주인들의 전문성을 과시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버러 마켓에서는 상인들이 고객들에게 식품의 보관법과 조리비법을 입으로 전수하다가 이를 <버러 마켓 요리 책(Borough Market Cookbook)>으로 엮어서 내기도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한편,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에서는 단돈 1유로에 판매하는 소포장 음식들을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서 진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소포장 음식들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지만 돈에 부담되는 여행객들도 잡을 수 있습니다. 소포장 음식 옆 진열대에 선물용 상품을 진열해 고객이 더 많은 지출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낙후한 지역 환경 때문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유명 건축가 엔릭 미라예스의 리모델링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색색깔의 파도가 물결치는 듯한 독특한 지붕을 표현하느라 무려 8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이를 믿고 기다려준 상인들 덕분에 이 시장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고 상권도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시장만 살아난게 아니라 지역 전체가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이죠.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시장,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하는 시장,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시장이 되었기에 온라인쇼핑몰과 대형마트의 공습에도 살아남아 자신들만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진정 소비자가 원하는 시장이 되어 살아남을 수 있기를
책의 초반부 프롤로그에는 2명의 나무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에 14시간 나무를 베는 나무꾼과, 하루에 8시간 나무를 베는 나무꾼 말이죠. 여러분은 둘 중 누가 더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나요? 단순한 노동시간만 따져보면 14시간 열심히 일한 나무꾼이 성공했을 것 같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하루에 8시간 만 일하고 세상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무를 가공해서 종이를 만드는 공장을 만들었던 나무꾼이 갑부가 된 것으로 끝납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우직하게 자신의 매장을 지키며 열심히 일해오셨지만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많은 고객들을 대형마트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런 대형마트의 성장이 지역의 전통시장이나 소형 소매점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정부와 지자체는 대형마트에 월 2회 강제 휴무를 하라고 했고 지역마다 요일은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2번째 주와 4번째 주 일요일에 대형마트들은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트가 문을 닫으면 다른 곳에서 장을 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지역의 전통시장과 소규모 가게들의 매출을 그리 크게 오르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문을 닫기 전날 미리 장을 보거나 하루 참고 다음에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결국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이용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시장 상인들과 국회의원들은 통찰하지 못한 셈입니다. 전통시장의 환경개선 사업으로 부족한 주차공간과 불결한 환경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시장에서 카드를 내미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또 처음 찾는 고객과 단골고객을 차별해서 상대하는 일부 상인들의 모습은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전통시장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장도 단순히 1차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장에서 구입한 간이 식품들을 먹을 수 있는 공간 마련과 젊은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메뉴 개발이 시급하다. 시장의 전통은 살리고 고객들이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는 새로움을 더하는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 p.85 저자의 말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다른 손님들을 대상으로 경쟁해야 합니다. 조금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상품을 공급하고 전통시장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서비스로 승부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많은 노하우가 있더라도 우리의 시장이 변화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겠죠. 8시간 일한 나무꾼처럼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고 용기있게 도전해 전국 각지의 전통시장들이 대형마트를 이기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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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출판사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mimisbrunnr.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