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설국열차>의 닮은 점
[주장] '자리를 지키라'는 말 되풀이하는 정부와 사회, 이대론 안된다
"Know your place. keep your place."
스스로의 위치를 알고 '자리를 지키라'는 뜻을 지닌 문장.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낯익은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공교롭게도 뒷 문장은 최근 세월호 사고 당시 선장과 선원이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선박을 탈출하기 직전까지 선내에 방송했다던 말과도 거의 흡사하다. 사실 이 두 문장은 지난 2013년에 개봉했던 영화 <설국열차>에서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가 꼬리칸 승객들에게 했던 대사다.
권력의 밑에서 시녀처럼 일하며 꼬리칸 승객들이 명령에 복종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을 도맡아 하던 메이슨 총리. 비열한 캐릭터인 그녀가 극중에서 했던 대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머리엔 모자, 발에는 신발. 아무도 신발을 머리에 쓰진 않지. 그러라고 만든 것이 아니니까! 애초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어. 나는 앞칸, 당신들은 꼬리칸!"
평소 부당한 처사에 불만이 잔뜩 쌓여있던 꼬리칸 승객들에게 총리의 말은 곧 분노를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아이들이 납치돼 열차의 부품으로 희생되자, 참고 참다가 끝내 울분이 터진 꼬리칸 승객들은 "아이들을 돌려내라!"라면서 앞칸으로 전진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혁명'이라 불린 그들의 역습은, 열차에서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며 엔진칸에서 머무르는 윌포드를 만나 설국열차의 억압적인 시스템과 권력체계를 뒤엎고 평등한 사회를 이뤄보겠다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되찾겠다'는 집념에서 나온 행동이기도 했다.
<설국열차>의 그 대사, 현실에서 듣게 되다니
<설국열차>에서 억울한 처지의 승객들이 앞칸으로 달려간 것과 비슷한 상황이 2014년 한국에서 연출됐다. 지난 9일, 세월호 사고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정부의 무능과 안이한 사고수습에 항의하며 청와대로 행진했다. 물론 '혁명'을 노린 영화 속 인물들의 폭력적인 모습과 달리, 세월호 유가족들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묵묵히 걸어갔다. 단지, 답답한 마음에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한 행동일 따름이었다.
사실 유가족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KBS 보도국장의 언행이었다.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세월호 희생자 수'를 비교한 취지의 발언은 그가 사임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오해였다"며 부인했지만 해당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던 그날 바로 사과가 발표되지는 않았다.
각종 문제점과 비리를 노출한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을 '통계'와 '수치'의 개념으로 간단히 정리하며 깎아내리려는 비인간적인 태도가 보였기에 유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지난 9일 새벽 KBS 방송국 앞에서 유가족들은 보도국장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에 발길을 돌려 청와대로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한 번 더 가로막히고 말았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효자동 인근에서 경찰병력이 대거 투입돼 버스로 도로를 봉쇄했다. 결국 유가족은 꼼짝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아침을 맞아야만 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2014년 5월의 새벽, 경찰들이 보여준 '포위'는 마치 '자리를 지키라'던 영화 속 대사의 또 다른 현실화였다.
한편, 비슷한 시각에 청와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회 불안과 분열을 야기하는 언행들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라고 발언했다. 유가족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와서 만나달라고 요청했지만 면담은 사실상 끝내 거절됐다. 길바닥에 앉아서, 아이를 잃은 슬픔과 아무런 대책이 보이질 않는 답답함을 호소하던 유가족들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만난 것을 끝으로 자진 해산했다. 애절하게 대통령을 찾았던 그들에게 되돌아 온 대답마저도 "돌아가서 자리를 지키라"라는 냉정한 거절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기초적인 신뢰'마저 붕괴된 사회
세월호 사고로 인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범국민적 슬픔이다. 남녀노소 3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뒤집힌 배 안에 갇혀 가라앉는 모습을 전 국민이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무기력함의 학습과 더불어 '사회에 대한 믿음'이 붕괴하는 순간이었다.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안에서 우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신뢰가 산산조각 났다는 이야기다.
그 뒤로 나온 대책이라는 것은 '안전행정부'가 '재난안전처'로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하고, 사고의 원인이 된 '규제완화'의 재검토와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는 재난 컨트롤 타워 아니다"라는 발언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줄만한 어떤 믿음직한 근거도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게다가 국민의 이런 감정에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시도 역시 부족하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가족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조차 직접 건내지 못하고, 오히려 '막말'로 분노를 초래했다. 그나마도 위로를 위해 빈소를 찾았다가 껴안았던 할머니는 유가족이 아니었다고 밝혀지면서 허탈한 퍼포먼스로 막을 내렸다. 정작 작은 토닥임이 필요한 유가족은 면담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유가족조차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어찌 이런 슬픔을 추스릴 수 있을까. 기초적인 신뢰가 침몰된 사회에서 더 이상 무엇을 믿고 다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사회 분열과 불안'은 이러한 상황들이 쌓여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보다 더욱 중요한 안보에 관한 사항이기도 하다.
이대로는 자리만 지킬 수 없다, 부디 소통하라
사고발생 20일이 넘는 시점에서 실종자 수를 다시 고쳐서 발표할만큼 우왕좌왕하는 사고대처와 청와대로 행진하는 유가족을 신속하게 경찰병력으로 막아서는 진압방식에서 '이 정부가 무엇에 더 능숙한가'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이는 지난 시간동안 정부가 '무엇에 더 많은 준비를 쏟아왔는가' 하는 점이 증명되는 순간들이며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경제'가 최우선 과제인 것처럼 "소비심리 위축을 우려한다"는 말을 가장 무겁게 뱉었는데, 이마저도 불통으로 느껴진다. 안전함과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에서 소비는 자연스럽게 활발히 이뤄지기 마련인데 현재 사람들이 체감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무능과 불통의 정부 밑에서 국민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의 자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이 불안한 사회에서 또다시 누적된 안전불감증이 폭발해 나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희생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 승객들이 엔진칸으로 향하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침묵 시위를 하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 과연 진압 만이 최선일까? '이대로는 안된다'고 느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부디 소통하라. 모든 비판여론을 '외부세력'으로 배척하며 무시하지 않고 귀를 연다면, 국민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릴 것이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사항이라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의 위치를 알고 '자리를 지키라'는 뜻을 지닌 문장.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낯익은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공교롭게도 뒷 문장은 최근 세월호 사고 당시 선장과 선원이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선박을 탈출하기 직전까지 선내에 방송했다던 말과도 거의 흡사하다. 사실 이 두 문장은 지난 2013년에 개봉했던 영화 <설국열차>에서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가 꼬리칸 승객들에게 했던 대사다.
▲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는 꼬리칸 승객들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말한다. 애초에 지위가 정해져 있으니 '분수를 알라'는 뜻과도 같았다. ⓒ CJ 엔터테인먼트
권력의 밑에서 시녀처럼 일하며 꼬리칸 승객들이 명령에 복종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을 도맡아 하던 메이슨 총리. 비열한 캐릭터인 그녀가 극중에서 했던 대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머리엔 모자, 발에는 신발. 아무도 신발을 머리에 쓰진 않지. 그러라고 만든 것이 아니니까! 애초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어. 나는 앞칸, 당신들은 꼬리칸!"
평소 부당한 처사에 불만이 잔뜩 쌓여있던 꼬리칸 승객들에게 총리의 말은 곧 분노를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아이들이 납치돼 열차의 부품으로 희생되자, 참고 참다가 끝내 울분이 터진 꼬리칸 승객들은 "아이들을 돌려내라!"라면서 앞칸으로 전진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혁명'이라 불린 그들의 역습은, 열차에서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며 엔진칸에서 머무르는 윌포드를 만나 설국열차의 억압적인 시스템과 권력체계를 뒤엎고 평등한 사회를 이뤄보겠다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되찾겠다'는 집념에서 나온 행동이기도 했다.
<설국열차>의 그 대사, 현실에서 듣게 되다니
<설국열차>에서 억울한 처지의 승객들이 앞칸으로 달려간 것과 비슷한 상황이 2014년 한국에서 연출됐다. 지난 9일, 세월호 사고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정부의 무능과 안이한 사고수습에 항의하며 청와대로 행진했다. 물론 '혁명'을 노린 영화 속 인물들의 폭력적인 모습과 달리, 세월호 유가족들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묵묵히 걸어갔다. 단지, 답답한 마음에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한 행동일 따름이었다.
사실 유가족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KBS 보도국장의 언행이었다.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세월호 희생자 수'를 비교한 취지의 발언은 그가 사임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오해였다"며 부인했지만 해당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던 그날 바로 사과가 발표되지는 않았다.
각종 문제점과 비리를 노출한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을 '통계'와 '수치'의 개념으로 간단히 정리하며 깎아내리려는 비인간적인 태도가 보였기에 유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지난 9일 새벽 KBS 방송국 앞에서 유가족들은 보도국장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에 발길을 돌려 청와대로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한 번 더 가로막히고 말았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효자동 인근에서 경찰병력이 대거 투입돼 버스로 도로를 봉쇄했다. 결국 유가족은 꼼짝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아침을 맞아야만 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2014년 5월의 새벽, 경찰들이 보여준 '포위'는 마치 '자리를 지키라'던 영화 속 대사의 또 다른 현실화였다.
한편, 비슷한 시각에 청와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회 불안과 분열을 야기하는 언행들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라고 발언했다. 유가족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와서 만나달라고 요청했지만 면담은 사실상 끝내 거절됐다. 길바닥에 앉아서, 아이를 잃은 슬픔과 아무런 대책이 보이질 않는 답답함을 호소하던 유가족들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만난 것을 끝으로 자진 해산했다. 애절하게 대통령을 찾았던 그들에게 되돌아 온 대답마저도 "돌아가서 자리를 지키라"라는 냉정한 거절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기초적인 신뢰'마저 붕괴된 사회
세월호 사고로 인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범국민적 슬픔이다. 남녀노소 3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뒤집힌 배 안에 갇혀 가라앉는 모습을 전 국민이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무기력함의 학습과 더불어 '사회에 대한 믿음'이 붕괴하는 순간이었다.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안에서 우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신뢰가 산산조각 났다는 이야기다.
그 뒤로 나온 대책이라는 것은 '안전행정부'가 '재난안전처'로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하고, 사고의 원인이 된 '규제완화'의 재검토와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는 재난 컨트롤 타워 아니다"라는 발언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줄만한 어떤 믿음직한 근거도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게다가 국민의 이런 감정에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시도 역시 부족하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가족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조차 직접 건내지 못하고, 오히려 '막말'로 분노를 초래했다. 그나마도 위로를 위해 빈소를 찾았다가 껴안았던 할머니는 유가족이 아니었다고 밝혀지면서 허탈한 퍼포먼스로 막을 내렸다. 정작 작은 토닥임이 필요한 유가족은 면담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유가족조차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어찌 이런 슬픔을 추스릴 수 있을까. 기초적인 신뢰가 침몰된 사회에서 더 이상 무엇을 믿고 다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사회 분열과 불안'은 이러한 상황들이 쌓여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보다 더욱 중요한 안보에 관한 사항이기도 하다.
이대로는 자리만 지킬 수 없다, 부디 소통하라
사고발생 20일이 넘는 시점에서 실종자 수를 다시 고쳐서 발표할만큼 우왕좌왕하는 사고대처와 청와대로 행진하는 유가족을 신속하게 경찰병력으로 막아서는 진압방식에서 '이 정부가 무엇에 더 능숙한가'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이는 지난 시간동안 정부가 '무엇에 더 많은 준비를 쏟아왔는가' 하는 점이 증명되는 순간들이며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경제'가 최우선 과제인 것처럼 "소비심리 위축을 우려한다"는 말을 가장 무겁게 뱉었는데, 이마저도 불통으로 느껴진다. 안전함과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에서 소비는 자연스럽게 활발히 이뤄지기 마련인데 현재 사람들이 체감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무능과 불통의 정부 밑에서 국민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의 자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이 불안한 사회에서 또다시 누적된 안전불감증이 폭발해 나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희생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 승객들이 엔진칸으로 향하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침묵 시위를 하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 과연 진압 만이 최선일까? '이대로는 안된다'고 느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부디 소통하라. 모든 비판여론을 '외부세력'으로 배척하며 무시하지 않고 귀를 연다면, 국민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릴 것이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사항이라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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