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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가죽 벗겨지게 일만 했는데... "박근혜 우리한테 그카먼 안 되지"

[밀양을 살다④] 밀양에서 건강하고 안온하게 살 수 있길 빌어본다

등록|2014.05.13 12:03 수정|2014.05.13 12:03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의 삶을 담은 책 <밀양을 살다>가 출간되었다. 농사 짓고 밥을 나눠 먹고 가족의 안녕을 염려하는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 그러나 국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는 침몰해 온 한국사회의 모습을 증언한다. 그리고,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무엇일지 스스로 보여준다. 책이 전하는, 밀양을 함께 살 사람들을 기다리는 목소리에 대한 응답을 들어보자. 그리고 응답하자. 이 연재는 밀양구술프로젝트와 오마이뉴스 십만인클럽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편집자말]
새끼가 갇혀있는 바닷물 위에 망연히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아버지. 그 등에 아이를 업어 키우고, 그 등에 식구들의 생존을 떠메고 지탱해왔을 애비의 그 단단하고 완강한 등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그 등에 아이를 업고 '금자동아 은자동아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은을 준들 너를 사랴, 어와둥둥 내 새끼야.' 자장가를 부르며 재우기도 했으려니. 까꽁~ 어르는 애비의 장단에 맞춰 까르륵 웃던 아이는 그 등에 먹은 젖을 게워내기도 하고, 이 등이 내 등이다 찜하듯이 침을 범벅으로 칠해놓기도 했으리라. 세상 무엇보다 든든하고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을 애비의 등. 새끼를 잃은 애비의 등만큼 쓸쓸하고 애달픈 등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등을 보던 날, <밀양을 살다>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01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을 만들어 놓고, 철야 농성하고 있다. 사진은 할머니들이 산을 오르내리며 사용하도록 만들어 놓은 지팡이. ⓒ 윤성효


밀양에 몇 번 오가며 얼굴이 익은 할매 할배들의 삶이 쓰인 책. 가난 때문에 학교는커녕 한글도 배우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 됐던 할매 할배들. 그러나 일류대를 나오고 높은 자리에 있는 어떤 자들보다도 지혜롭고 현명한 분들이다.

할매, 할배들에게 국가란 뭘까

밀양에 처음 갔던 날. 송전탑 공사장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고 있던 경찰들. 그들은 아무 표정 없이 그냥 방패처럼 서 있었다. 우리가 움직이면 신속하게 앞을 가로막으며 그저 벽이 될 뿐이던 방패들. 왜 막느냐는 말에도 한마디 대꾸조차 없던 벽들. 산에 계시는 노인들이 식사조차 못하신다 해서 걱정되어 올라가는데 왜 막느냐고 거듭 물어도 그저 제 발등만 내려다보던 병정들. 그들보다 밥풀떼기 한두 개 많아 보이는 자들에게 따져 물으면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던 무전기 답들만 돌아온다.

길도 없는 산을 돌고 돌아 결국 산속에서 어른들을 만났다. 경찰들의 방패 앞에서 링거액을 꽂고 단식을 하던 사람들. 방패에 매달려 "내땅에 느그가 와 몬 가게 하노. 저게 우리 시으른 묘지가 있고, 우리 영감캉 내캉 펭생을 가꾸논 우리 밭이 있다 말이다"라며 울부짖던 할매들. 한전 용역들을 공사장으로 보내기 위해 할매들을 밀어 넘어뜨리던 경찰들의 폭력에 가랑잎처럼 나동그라지던 할매들.

그날 밤. 어둑신하던 마을회관 앞에서 문화제를 했다. 집안에 컴퓨터도, 에어컨도 하다못해 전등불 하나 켜는 것도 아까워 벌벌 떨며 살았을 노인들의 마을에 송전탑이 지나가고 그로 인해 재산은 물론 생존마저도 위협받는 게 도무지 납득이 안 되던 어둡던 밤. 어둠속에서 저녁을 먹는데 옆에 앉으신 할매들이 물으신다.

"오데서 왔능교?"
"부산요."
"하이고 부샌이먼 거 원자력이 여보다 더 개차운 데 아이가?"
"하마. 원자력이가 터자불면 부샌은 다 끝나지러. 하마"
"샌 사람덜은 여보다 더 씨게 싸와야 될끼라."
"쎄가 만발이 빠질 늠덜이 즈그 말따나 원자력이도 아무 이생이 없고 송전탑인지 송장탑인지 지쟁이 없씨모 즈그 안방에 세우덩가 청와대 마당에 세우모 될꺼 아이가."

밀양보다 훨씬 가까운 고리원자력 발전소를 두고 이르는 말씀들이시다. 이분들은 이미 송전탑에서 시작해서 원자력의 문제까지 꿰뚫고 계셨다. 그날 밤. 외려 난 그분들에게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관광버스 춤의 사부가 여기 계셨네 싶게 신나게 춤을 추시던 할매들.재미난 입담과 통찰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영자 언니'. 책을 받고 나서도 영자 언니의 이야기를 젤 먼저 읽었다.

영자 언니는 참 매력적이었다. 다감하고 활달하며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의 입을 통하게 되면 배꼽을 잡는 유머가 되고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뿌린대로 거두는 자연의 이치 그대로 매사에 합리적이고 어느 자리에서든 리더가 되는 사람이다.

그 영자 언니조차도 울게 만드는 힘든 싸움. 그런 사람조차도 지치게 만드는 긴긴 싸움. 돈을 위한 싸움이라 참 쉽게도 매도를 했지만 밀양에 한 번이라도 가서 희경 어른을 보고 영자 언니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 말이 얼마나 값싸고 천박한 말인지 대번에 알게 된다.

해가 지면 깜깜절벽이 되고 편의점 하나 없고, 서비스센터 하나 없는 궁벽한 마을에서 그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칠팔십년을 살아오셨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날 무렵엔 뭘 심어야 하고, 서리가 내리기 전엔 뭘 거둬야 하며, 어떤 게 독이 되는 버섯이며, 어떤 게 약이 되는 풀인지 스스로 깨우치며 몸으로 배우셨다. 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이웃집 아재가 고쳐주고, 설탕이 떨어지면 옆집에서 빌려먹는 일에 아무런 스스럼이 없던 사람들. 그분들에게 국가란 무엇이었을까.

그런 이웃들을 둘이나 분신으로, 음독으로 잃게 한 국가란 그들에게 뭘까. 그런 이웃들을 뿔뿔이 흩어놓고, 제사 지내러 온 조카에게 대문도 안 열게 만드는 삼촌의 분노를 안긴 국가란 그들에게 어떤 걸까.

한평생을 있는 줄도 모르고 살던 국가가, '경찰 코만 건드려도 폭행죄로 잡아가고, 쪼깨만 차 옆에서 얼쩡거려도 공무집행방해로' 낚아채가는 국가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뼈가 부서져라 나무하고, 등이 벗겨져라 등짐지고, 허리가 부서져라 모내고 김매서 한 평 한 평 늘려온 땅을, 한 마지기 두 마지기 팔아가며 자식들 공부시킬 때도 차비 한 닢 안 보태주던 나라였는데.

그런 나라를 지키겠다고 자식들 군대를 보내면서도 빠질 생각도, 날 수를 줄일 생각도 못해본 사람들. 나라가 하라는 일을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선거 때마다 경운기타고 투표장으로 갔을 사람들. 이장의 말이, 회장의 손가락이 나랏말쌈이라, 나라에서 찍으라는 사람을 찍기도 했겠지.

삶의 공동체가 부서지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01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을 만들어 놓고, 철야 농성하고 있다. 사진은 움막 내부. ⓒ 윤성효


그런 할매들이 말한다.

"박근혜 가스나가 우리한테 그카먼 안 되지. 지 입으로 국민덜 행복하게 해준다 안캤나."

삶의 공동체가 부서진다는 것. 그것만큼 힘들고 마음 고된 일이 또 있을까. 산자와 죽은 자, 그리고 명퇴자로 나뉘고, 민주노조와 복수노조로 낱낱이 쪼개진 정리해고. 사원아파트에서 옆집 뒷집 위층 아래층으로 나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보고 지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마음들이 나뉘고 몸들이 갈라섰다.

친구가, 동생이, 형님이 나를 배신한 상처는 의외로 깊다. 그럼에도 그런 상처를 준 사람들을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마트에서 복도에서 불쑥불쑥 마주치게 되면 일상이 지옥이다.

죽은 사람마저 용서가 안 되는 게 배신이다. 몸무게 34kg의 팔순 할매가, 자신이 마지막 누울 자리라며 구덩이를 파놓은 움막에서 정섭 할매를 붙잡고 "내를 두고 가지 마래이~"라는 당부가 그래서 아프다.

이미 8년을 '응성시럽게' 이어온 싸움. 아니 이건 싸움이 아니다. 일방적 파괴이고 폭력이고 횡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굽은 등과 굳어진 다리로 산길을 오르내리며 생존의 근거인 농사마저 돌볼 수 없는 어른들의 사정을 헤아려 농활이란 이름으로 반나절 감을 땄다.

햇볕이 이렇게 청아하고 바람이 이토록 달고 흙이 이만큼 보드랍고 따뜻한 거구나. 새삼스럽게 감사하고 뭉클거리던 가을날. 딱 반나절 감을 따고 사나흘을 빌빌거렸다. 감을 따서 꼭지를 따고 상자에 담아 차에 싣는 일이었는데, 차에 실어 보낸 감이 몰래 돌아와 다시 나무에 매달리는 건지 따도 따도 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감뿐이겠나. 벼를 고추를 깨를 고구마를 감자를 콩을 밤을 상추를 배추를 무를 그렇게 뿌리고 그렇게 거두고 단도리해서 자식들의 살림까지 살뜰히 챙겨가며 생존을 이어온 분들. 그 삶의 터전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일을 뿌듯한 필생의 업으로 여겨온 분들.

근데 송전탑이 들어선다니 땅금이 0원이 되고, "느그가 저 땅을 물려 받으라"고 이르니, "송전탑 들어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땅을 말라꼬요" 하던 아들의 말을 옮기며 울던 할배.

'세월호'에 갇혀 죽어간 아이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 억울함과 절박함에 가슴이 미어져 울었을 분들. 그 부모들의 무너진 억장이 남일 같지 않아 또 가슴을 쳤을 어른들. 새벽에 일어나 이슬에 바지자락 적시며 논에 나가고 밭에 나가 등가죽이 벗겨지도록 일하는 일상이 간절한 꿈인 사람들.

은숙씨가, 귀영씨가, 은희씨가 영자 언니가 되고 미현 언니가 되고 그들이 다시 희경 할매가 될 수 있길. 그 땅에서. 볕 따시고 바람 순한 그 땅 밀양에서 건강하고 안온하게 삶을 추수하길 빌고 또 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도위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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