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동정부부의 삶과 신앙, 창작오페라 '루갈다'
[리뷰]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두번째, 호남오페라단 '루갈다'
▲ 호남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루갈다'.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 순교자 부부의 삶을 그렸다. ⓒ 문성식
제5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두 번째 작품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의 <루갈다>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5월 9일부터 11일까지 공연되었다.
1993년 창단돼 지난 25년간 9편의 창작오페라를 공연하며 국내 창작오페라 시장에 일조해 온 호남오페라단의 <루갈다>는 2013년 국립오페라단 창작산실 지원사업에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고, 10월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오페라 <루갈다>는 천주교가 이 땅에 전래되던 시절, 1801년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호남지방의 '동정부부'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순교자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 한국 천주교회 124위 시복(諡福:복자로 선포)을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둔 공연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4막 10장의 오페라 <루갈다>는 사명을 가지고 창작오페라 제작에 큰 힘을 쏟았던 호남오페라단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불의에 맞서는 신념을 가진 자, 특히 200년 전 조선의 한 여인의 종교에 대한 신념과 당시의 사회상이 어떠한 정통 오페라보다도 간명하고도 드라마틱하게 잘 표현되었다.
▲ 1막 장면은 여느 부부의 혼례처럼 경사스런 분위기와 설렘으로 가득하다. ⓒ 문성식
1막에서는 동정의 삶을 꿈꿔왔던 한양의 이순이 루갈다와 전주의 유중철 요한이 중국 신부 주문모의 소개로 서로 알게 되고, 천주교 신자를 박해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위장결혼을 하며 부부가 되지만 실제로는 평생 주님을 섬기며 동정을 지키기로 서약한다.
커다란 십자가 앞에서 동정 서약하는 천주교의 성스러운 분위기와 정통 혼례의 흥겨운 모습이 자연스럽게 교차된다. 젊은 남녀의 결합과 설렘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것이 주님을 향한 것이라는 굳은 의지가 "주님 가신 그 길을 기쁘게 걷게 하소서"라는 가사와 노래로 잘 표현된다. 주인공 부부의 삶의 과정에 초점이 있으므로 작품 전체에는 이들의 2중창이 특히 아름답게 많이 표현되어 있다.
이에 비해 1막 2장 루갈다의 친척들이 결혼을 반대하는 장면에서는 우리말을 레치타티보로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이 잠시 엿보였다. 한 음을 느릿느릿 어색한 레치타티보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아예 대사로 처리하거나 빠르게 화를 내는 억양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 젊은 남녀가 4년간 한방을 쓰며 동정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굳센 신앙으로 극복하는 모습. ⓒ 문성식
2막에서는 신방을 차린 젊은 남녀가 동정의 삶을 살며 받는 유혹과 그것을 의지로 극복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큰 굉음의 탐탐 소리와 함께 붉은 조명의 야릇한 분위기로 동정 부부에게 찾아온 서로의 육체를 욕망하는 순간의 위기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젊은이들이 4년간 한 방을 쓰는 부부로 지내면서도 주님에 대한 맹세 하나로 난관을 극복하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애처롭지만 그만큼이나 그들의 종교에 대한 신념이 투철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3막과 4막에서는 천주교 박해의 장면이 형장의 고문과 처형의 모습으로 실감나게 연출된다. 유중철 요한의 아버지 유항검이 체포되고, 유중철도 이어 체포된다. 이런 수모 중에도 유항검과 유요한을 주축으로 신자들이 마음을 합쳐 아침 성무일도와 주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에서는 그 성스러운 합창소리에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온다.
4막 3장, 형관이 신자들에게 큰 십자가를 밟고 건너가면 훈방해 주겠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십자가를 건너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며 온다. 그 어려운 시절, 어렵게 믿어왔던 종교를 살기 위해 배교하는 그 심정들은 오죽했으랴. 하지만, 루갈다는 완강히 거부하며 형관에게 대역죄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간청한다.
4막 4장에서 루갈다의 목을 베는 망나니 춤은 그 어떤 연극이나 오페라에서보다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루갈다는 두 손을 꼭 모아 기도드리며 의연하다. 죽은 루갈다는 천국에서 유요한을 만난다. 거룩한 삶을 살다간 순교자 동정부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창작오페라 <루갈다>는 호남지방의 성인 부부의 삶을 아름답고 충만한 음악과 극적인 전개로 뚜렷한 이미지화에 성공했다. 복잡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단순하고 압축적인 대본을 선택했고, 성스러운 내용을 더욱 웅장하고 성스럽고 고귀하게 음악과 연출로 부각시켰다. 이런 면이 혹자들에겐 상투적이고 밋밋한 이야기구조와 음악의 흐름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 3막은 1801년 신유박해 당시의 탄압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 문성식
하지만, 젊은 순교자 부부의 주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 당시 시대상과 믿음 가진 자들의 삶을 감동을 주는 내용과 무엇보다도 음악으로 잘 표현했다. 우리말로 오페라라는 거대장르에 도전하는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오페라 <루갈다>는 기획 의도나 그 제작내용 등 모든 면에서 박수갈채를 받을 만하다.
예술총감독 조장남, 작곡 지성호, 대본 김정수, 연출 김홍승, 지휘 이일구 등 제작진의 심혈을 기울인 노력과 루갈다 역의 박현주, 신승아, 김순영, 요한 역의 신동원, 강훈, 이규철, 형관역의 이대범, 안균형 등 성악가들의 안정된 기본기와 열연이 음악과 극을 잘 살려내었다.
호남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루갈다>는 2015년 7월 교황청이 있는 이태리 로마 공연을 계획중이다. 우리 손으로 제작한 오페라가 천주교의 본고장에 가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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