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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나무 뽑는 사람, 이제 그만요

이틀간 꽉 찬 스트레스를 풀었던 해프닝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등록|2014.05.14 19:58 수정|2014.05.14 19:58

▲ 땅심 받아 다시 또록또록 해진 나무 ⓒ 이경모


1주일 전. 가게 앞 화분에 심어 놓은 나무 여덟 그루가 뽑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또 다음날은 화분 하나와 나무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틀간 연이어 벌어진 것이다. 통행에 불편을 준 것도 아니고 미관을 해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내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 나무에 원풀이를 했을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헝클어 놓았다. 도대체 누구일까?

갑자기 어렸을 적에 고향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이 떠올랐다. 이맘때쯤일 게다. 못자리 사건이다. 초봄에 논을 고르고 볍씨를 뿌려 정성을 다해 키워 온 모를 누군가가 밤새 다 파헤쳐 놓은 것이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그냥 추억 속의 사건이 되었지만 참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못자리 주인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며칠 전 아마 내가 그랬을 것이다.

▲ 연말에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율마. ⓒ 이경모


4년째 내 발소리를 들으며 큰 율마(꽃말 : 성실함 침착함). 사철목이지만 봄이면 녹색이 더 생생해져 싱그러운 상큼함도 주고, 매년 연말에는 나무에 조명을 설치하면 멋진 크리스마스트리가 되기도 한 나무다. 매일 나무에 물을 주며 내 마음을 씻기도 한 그런 나무가 길바닥에 내팽겨져 있으니 순간 몹쓸 그림들을 많이도 그렸다.

"사장님 우리 가게 앞 감시카메라에 범행 장면이 있습니다."

나만큼 화가 난 옆 가게 직원들이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녹화 된 화면을 재생해서 찾은 것이다. 새벽 4시 33분.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가게 앞을 지나가던 20대 초반으로 보인 사람이 갑자기 나무를 뽑아 길바닥에 던지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유히 가는 모습이다. 동영상을 가져가 경찰에 신고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길 가던 취객이 잠시 이성을 잃고 한 행동이려니 하고 그냥 말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또 화분 하나가 나무와 함께 길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척 화가 났다. 우리 가게 끝 쪽이어서 이번에는 카메라에 찍히지도 않았다.

▲ 매장 벽에 붙인 사진 ⓒ 이경모


▲ 나무를 뽑아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유유히 가는 범인 ⓒ 이경모


급기야 '화분에 나무 뽑는 사람 이제 그만 하세요!! 한 번 더 하면 수사 의뢰할 수밖에...'라는 글과 감시카메라에서 캡쳐한 화면을 프린터해서 가게 벽에 붙였다.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이다. 대상이 사람이 아닌 식물일 뿐이다.

범인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가게 건물에 방화 등 추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범행 장면이 희미한 화면인데다 내게는 큰 사건이지만 경찰에서는 미미한 사건으로 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감시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사진을 붙여 놓기로 했다.

사진을 붙여 놓은 지 오늘 5일이 지났다. 누군가 왔다간 흔적도 없다. 봄이 나뭇잎에서 툭툭 터지는 날 어느 한사람이 이틀간 꽉 찬 스트레스를 풀었던 해프닝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다시 심은 나무가 땅심을 받기 시작했는지 또록또록 하다.
덧붙이는 글 월간 첨단정보라인 6월호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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