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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외로운가요?

등록|2014.05.14 21:21 수정|2014.05.14 21:21
화창하고 맑은 날씨이다. 스승의 날이 내일이라 며칠 전부터 나는 옛 은사들을 찾아가서 인사드렸다. 은사라고 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있고 적은 분도 있다. 그리고 오늘은 연거푸 내게 배우는 분들에게 인사를 받았다. 내게 배우는 분들 역시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이제 장년층에 진입하는 주부들이고 대부분 나이가 많다.

그런데도 은근히 외로움을 느낀다. 왜 그럴까? 며칠 전에는 내가 다녔던 모교에서 서예학과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선·후배, 교수들이 시위도 하고 대형 플래카드도 교정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정원미달과 지금의 세상에 맞지 않다는 명분이지만 결코 정원미달은 아니다. 단지 학교가 전년도의 정원보다 더 많은 정원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이전의 정원보다 더 많이 지원했는데도 미달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몇 년 후에는 다시 존경하는 은사가 계신 모교의 대학원에 다시 들어가서 마음에 담아놓았던 예술치료학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려고 한 계획도 수정하게 되었다.

바위등산을 할 때 위로 올라가는 밧줄을 잡고 올라가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밧줄을 설치하는 바닥에 못이 튼튼히 박혀야 한다. 이 못은 심성과 인성의 기본일 수도 있고 선현의 지혜가 담긴 전통문화일 수도 있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가 더구나 종교법인인 학교가 현대문화의 조화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기실은 학교의 수익을 생각한 영리화에 다름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래된 문화에 애착이 있는 사람들은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더 많이 외로움을 느끼고 대신 날마다 변하는 스마트문화에 애착이 있는 사람들은 오래된 것들에 답답해 할 것이다. 김시습의 사청사우처럼 하루는 맑고 하루는 비오는 것이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자주 변하는 것들은 나를 슬프게 한다.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 작품 ⓒ 이영미


이런 외로움을 달래고자 어느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작품으로 적어보기도 했다. 하늘의 별만 쳐다보는 세상이 허전해서 별은 하늘에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허리 잘린 산을 끌어안은 강물과 물속에 잠긴 가족들에 대한 비탄으로 젖은 어머니의 가슴에도 별이 반짝인다는 글도 지어보았다.

컴퓨터를 켜고 여기저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찾아 보는데 선거철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왜 그리 이전보다 가슴따스한 이야기는 찾기가 힘든다. 나같이 듣지 못하는 사람은 보는 것에 많이 의존하는데 바른 소리 하는 어떤 글이 올라왔다는 문자 연락을 받고 그 글을 찾아보면 어느새 삭제되어 있다. 뭔가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지나가면 더욱 외로워진다.

재벌의 아들이 한 어떤 발언에 그 아비는 엎드려 사죄하고 그 어미는 바른 소리라고 하는 모순된 부모의 모습도 보인다. 왕자같이 자랐을 그 아들은 <슬픔이 기쁨에게>란 정호승 시인의 시에 들어 있는 것처럼 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의 귤 하나도 사보거나 깍아보거나 한 적도 아마 없을 것이다.

세상의 바닥이 어떤 것인지 아직 인생의 1/5도 살지 못한 목숨이 그런 소리를 하고 그런 아들의 소리가 바른 소리라고 하는 그 어미가 쳐다보는 세상은 어떤 우물들일까? 그리고 그것을 겸허하게 사과한다고 팽목항까지 가서도 허리를 구부리려고 하는 시장 후보는 정말로 겸허한 바닥의 마음에 내려가 있을까?

한 켠에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생겨도 그래도 십수 명의 조카 하나는 내일 모레 서울에서 결혼을 하고 또 다른 조카는 두 번째 새 생명을 낳았다.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따로 돌아가는 시계처럼 세상살이도 그런 모양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오늘 시리즈 3번째 작품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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