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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뱀 모시는 여자들이 있어"

[제주, 미지의 섬④] 뱀이 된 그녀에 얽힌 이야기

등록|2014.05.20 17:04 수정|2014.05.20 17:04
또, <탐라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땅에 뱀, 독사, 지네가 많은데 만일 회색뱀을 보면 차귀의 신이라 하여 죽이지 말라고 금한다. (줄임) 풍속이 뱀과 귀신을 제사한다. 집, 벽, 들보, 주추에 여러 뱀이 덩어리로 뭉치는데 제사할 때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상서로 삼는다.

제주가 고향인 선배의 좀 더 생생한 이야기도 있다.

"제주도에는 뱀 모시는 여자들이 있어. 어머니에서 딸로 반드시 이어져야 되는데, 그 여자들은 시집을 갈 때도 뱀이랑 같이 가야 해. 만약 뱀신을 계속 모시지 않으면 병을 앓거나 물질 나가서 횡액을 당하거나 한다고. 그래서 옛날에는 그 지역 여자들이 결혼하기도 힘들었어.

한 번은 그 쪽 여자 중 하나가 부산에 시집가게 됐는데, 자기가 모시던 뱀을 단지에 넣어 가지고 간 거야. 매일 시댁 식구 몰래 먹이를 주면서 키웠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그걸 보고는 단지에 무슨 꿀이라고 있는 줄 알고 내려서 열어봤다가 뱀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기절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뱀을 칠성님이라고 해." 

그러면 칠성님은 어쩌다 제주에 좌정하게 되었는가. 원래 송씨 집안 딸로 태어난 칠성님은 신통력을 지닌 중에게 속아 임신을 하고 부모에게도 내침을 당한다. 야박한 부모는 그녀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린다.

그녀는 상자 속에서 아이 여섯을 낳는데, 이들이 모두 뱀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뱀이 된다. 여기저기 좌정할 곳을 찾아다녔지만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다른 신들의 텃세에 살 곳을 정하지 못하고 떠돌기를 얼마나 했던가. 어느 날 마을 해녀와 강당장이라는 남자가 상자를 건진다. 혹시라도 금은보화가 든 귀한 상자인가 해서 건지었건만, 천만뜻밖으로 뱀들이 튀어나왔다. 무가(巫歌)는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다.

눈은 횟득 새는 맬록 (눈이 희번득, 혀는 낼름)
배염이 오망오망 나오는구나 (뱀이 올망졸망 나오는구나)

징그럽다고, 보기 싫다고 뱀식구들을 박대한 해녀와 강당장이는 병이 나고 화를 입는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박절함을 뉘우치고 뱀들을 잘 대접하자, 당장 병이 낫고 재물이 불어난다. 그래서 칠성신은 재물을 불려주는 신으로 널리 받들어 모셔지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짧고 굵은 감동, 송당리 본향당

감동의 공간, 송당리 본향당소박하고 조촐한 기원의 공간. 제주의 가장 제주다운 모습 중 하나였다. ⓒ 장윤선


그러나 나는 결국 토산리 여드렛당을 가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았고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표산'을 검색해보면 당집과는 하등 상관없는 바닷가의 멋들어진 호텔들만 소개될 뿐이었다. 안 그래도 눈총을 쏘는 신랑과 뱀이라면 기절할 듯 싫어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나는 찾기 힘든 여드렛당 대신 바닷가에 널리고 널린 방사탑과 우도의 작은 당집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랑을 채근하여 그 유명한 송당리 본향당을 찾았다. 아직도 제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제주의 대표적인 당집이고, 금백주 할망이라는 센 신이 좌정하고 있는 곳이었다.

꽝오를 꽃, 살오를 꽃 (뼈 오를 꽃, 살 오를 꽃)
오장육부가 기릴 꽃 (오장육부 만들 꽃)
불붙을 꽃, 맬망꽃 부제될 꽃 (불붙을 꽃, 멸망 꽃, 부자 될 꽃)

제주에서 널리 불려지는 <이공본풀이>의 한 대목이다. 무속신화에서 꽃은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제주 신화의 주인공들은 사람을 살려내는 신비한 꽃을 가지고 있다. <이공본풀이>의 주인공 할락궁이는 서천에서 가지고 온 꽝오를 꽃, 살오를 꽃으로 권력자에 의해 온몸이 난도질당해 죽은 가련한 어머니를 살려낸다.

우연인지 어쩐지, 송당 본향당으로 가는 길에는 너른 꽃밭이 있었고, 붉은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화사한 햇살 아래 피어난 꽃들은 정말 신화 속의 생명화라도 되는 듯했다.

다른 모든 당집들처럼, 송당리 본향당도 소박하고 조촐했다. 제를 올리는 한옥 한 채가 덩그러니 있을 뿐, 빛나는 제단도, 엄숙한 옷차림의 사제도 없었다. 신랑은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에이 이거 뭐야. 난 뭔가 기가 팍 느껴지는 무당이라도 한 명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다야?"

그게 다였다. 본시 무속이란 그런 것이다. 먼 고대사회에서는 무속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고도 하지만, 조선시대 무당들이 성문 밖으로 쫓겨난 이래, 샤먼들은 영화롭던 옛 시절을 회복한 적이 없다. 그리고 무속은 자연의 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믿음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 섬의 사람들은 거친 풍랑과 예측불가능한 날씨 속에서 자신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꽤나 감격스러웠다. 무속신들을 믿어서가 아니다. 그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살아왔던 삶의 흔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신령스러운 그 무엇인가를 찾아 삶을 위로받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본향당 주변은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고, 당 뒤편의 오름은 아름드리 나무로 꽉 채워져 무척이나 성스럽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가장 제주다운 곳이었다.

생명의 상징, 꽃억울하게 죽은 이를 살리는 제주 신화의 주요 상징인 꽃. 제주는 봄꽃의 향기로 가득하다. ⓒ 장윤선


엘리아데보다는 '원주민'

칠성 본풀이를 읽으며 매우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왜 하필 뱀인가 하는 점이다. 뱀, 쥐, 바퀴벌레는 여성의 영원한 적이 아니었던가.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다. 뱀이 허물을 벗는다는 점, 그 변신의 상징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 점이 수긍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았다. 허물을 벗거나 변신하는 동물이 뱀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뱀이냐 말이다. 혹자가 말했듯 뱀이 지닌 그 두려움이 바로 숭배의 원천인 것일까. 그러나 만장굴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는 나의 질문에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제주도에 고팡이라고 있어요. 아세요?"
"네, 물건 쌓아두는 창고… 그런 거라고 본 것 같은데요."
"맞아요. 거기서 모시는 칠성을 안칠성이라 그래요. 고팡에는 곡식이며 먹거리며 많았거든요. 거기 쥐가 많은데, 뱀이 쥐를 잡아먹으니까 귀하게 모신 거예요. 재산 지켜주는 신이라고 해서요. 여자들한테 음식만큼 귀한 게 어디 있어요? 우리 집에서도 안칠성 모셨어요. 너무 단순한가?"

머리가 확 깨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이 무속이고 신화가 아닌가 싶었다.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어떤 것 말이다. 먹을 것, 하늘과 같은 먹거리를 지켜주는 신.

요새에 암흑 시상 백성이 (요사이 암흑한 세상의 백성이)
할마님전 복을 빌고 (할머님전에 복을 빌고)
맹을 빌젠 비념이우다 (명을 빌고자 비념입니다)
큰 어룬 덕은 있십네다 (큰 어른의 덕은 있습니다)
할마님이 못 할일이 (할머님이 못할 일이)
시콰풋과? (있습니까?)
이 자손들 (이 자손들)
모두 잘 그늘와 줍서 (모두 잘 보살펴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제주 여행은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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