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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딱지 붙은 채 사는 사람들... 잊지 마시라"

[서평] 쌍용자동차 투쟁 기록 사진집 <아무도 잊혀지지 마라>

등록|2014.05.19 10:32 수정|2014.05.19 10:33
쌍용자동차(아래 쌍용차) 사태는 2009년 벽두부터 시작됐다. 2009년 1월 9일, 2005년에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차에 대한 경영 포기를 선언했다. 사측은 즉각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1월 22일에는 쌍용차의 모든 생산 라인이 멈췄다. 3월 9일, 사내 하청업체 비정규직 35명이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4월 8일, 쌍용차는 2646명의 인력 감축을 포함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비정규직 노동자가 오아무개씨가 죽음을 선택했다. 쌍용차 사태 이후 지금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죽음의 시작이었다.

5월 8일, 쌍용차는 노동부에 2405명의 정리해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5월 21일부터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뒤 옥상을 점거하고 벌인 '옥쇄투쟁'이 이어졌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옥상 점거 투쟁은 8월 4일 경찰 특공대의 진압 작전으로 막을 내렸다. 차체 공장 옥상에서 이루진 격렬한 충돌로 노조와 사측, 경찰 15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9년 1월부터 시작된 쌍용차 사태로 노동자 2546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해고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 등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25명에 이른다. 가장 최근 희생자는 4월 23일에 심장마비(추정)로 죽음을 맞은 쌍용차지부 창원지회 해고노동자 정아무개씨였다. 그의 죽음은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법원 판결에도 사측이 대법원에 상고한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비극이었다.

현재진행형인 쌍용차사태... 본질은 명확하다

▲ <아무도 잊혀지지 마라> 책표지 ⓒ 숨쉬는책공장

쌍용차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해고노동자 153명이 제기한 정리해고 소송은 항소심에서 승리했으나 사측의 대법원 상고로 여전히 미완료 상태에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법원은 파업에 참여한 금속노조 간부, 쌍용차지부,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사회단체 간부 등에게 47억 원가량의 손해를 회사와 경찰에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징계해고 무효 확인 소송은 항소심 공판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쌍용차 사태를 과거 완료형의 일로 받아들인다. 사진작가 점좀빼의 사진집 <아무도 잊혀지지 마라>가 나온 배경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 겪은 일, 다짐을 기억하기 위해 쓰고 또 적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오래도록 기억되지만, 어떤 것은 바로 잊히기도 합니다. … 2009년부터 시작된 6년의 싸움, 스물네 명의 죽음이라는 기억은 잊혀서도, 사라져서도 안 될 기록입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쌍용자동차 투쟁의 기록을 이 사진집에 담았습니다. 부디 이 일을 아무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책날개에서)

쌍용차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쌍용차 사측은 회사를 제대로 경영하지 못했다. 이윤을 남기는 일에 문제가 생기자 회사를 다른 나라에 팔아 버렸다. 국가는 그 과정을 방조했다. 쌍용차를 사들인 외국회사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다가 경영 포기를 선언했다. 쌍용차가 보유하고 있던 알짜배기 기술을 빼내갔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후 사측은 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해고하기 시작했다. 부당한 정리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회계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쌍용차노조는 이에 저항해 공장 점거 파업을 단행했다. 하지만 곧 중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투입해 이들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쌍용차 사태는 국가와 공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자본과 이명박 정권에 의해 초법적으로 진행된 이 범죄에 책임지는 자는 없고, 노동자들은 지금도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갖가지 탄압을 받고 있으며, 빨갱이, 종북이란 딱지를 붙인 채 살아가고 있다."(본문 20쪽)

그들은 원래부터 투사였을까

▲ 지난 2009년 8월 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농성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작전 당시 모습. 도장공장 앞 바리케이드를 사수하기 위해 나온 농성노동자들이 물대포를 피하고 있다. ⓒ 권우성


작가는 기록을 '시간의 축적이자 역사'로 규정했다. 그가 카메라 앵글에 담은 사진들은 어둡다. 절망스러운 해고에 저항하는 격렬한 몸짓들, 단식의 고통에 힘겨워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을 보는 일은 불편하다. 그렇게 어둡고,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기록을 남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작가는 아직 전투와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외친다.

작가는 투쟁과 파업이 없는 세상, 고통이 사라진 세상을 염원할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진 기록을 통해 노동자들이 투쟁과 파업으로 거듭나 한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바로 선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그는 그것을 평화와 사랑의 구체화이자 실천이라고 믿었다.

사진 속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힘겹다. 흑백의 사진 속에 담긴 그들의 표정은 한곁같이 굳어 있다. 입술은 꾹 다물어져 있다. 눈빛은 뜨겁게 이글거린다. 물러설 줄 모르는 투사의 모습들이다. 투사가 아닌 평범한 '우리'가 그들의 모습에 불편해하는 이유다. 절망의 나락에 빠진 그들을 보면서도 싸움에 나서지 않는 '우리'는 비겁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원래부터 투사였을까. 이 책 108쪽부터 113쪽에는 쌍용자동차 희생자 시민 분향소 앞에서 찍은 노동자 9명의 독사진이 실려 있다. 목욕탕 의자에 쪼그려 앉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본다. 지그시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입술은 살며시 닫혀 있고, 눈빛은 간절하게 호소한다. 그제서야 그들을 투사로만 바라봤던 비뚤어진 내 눈을 비빈다.

"이들은 투사일까? 맞다 그리고 동시에 아니다.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조합원들의 틈을 응시하게 된다. 그럼 어느 순간 뭔가 무거운 덩어리가 내 가슴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고, 이는 이들이 겪는 심신의 고통을 가늠하게 만든다. 스트레스로 대장이 괴사하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 진정 투사의 모습이던가. ··· 이들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고 또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투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투사로 거듭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본문 131쪽)

정부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바라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상경 시위에 나선 순간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반정부 세력의 구심이 돼버렸다. 분노하는 마음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평범한 교사들은 교육을 정치화하려는 위험한 불온 세력으로 간주됐다. 평범한 사람을 일순간에 투사로 만들어버리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평범한 우리는 그런 국가를 포기하다시피 한 채로 살아간다. 국가가 우리에게 저지른 수많은 야만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 제2, 제3의 쌍용차 사태나 세월호 참사가 언제 우리를 강타할지 모른다. 강고한 국가를 상대로 기억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대한민국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덧붙이는 글 <아무도 잊혀지지 마라>(점좀빼 글·사진 / 숨쉬는책공장 / 2014. 5. 2. / 153쪽 / 2만 원) 이 글은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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