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어법'에 이런 비밀 있었다
[주장] 자극적인 단어로 '블랙홀' 효과 낳아... 국민 기만용 꼼수
▲ 지난 19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이희훈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는 모습이 과연 진실이었나에 대한 진정성 평가가 설왕설래하는 것 같다. '진심 어린 사과의 눈물이었다'부터 '악어의 눈물이었다'까지 그 평가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필자는 본 글에서 대통령의 발표 모습에 대한 평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담화문을 발표함에 있어서 발표자의 전달 방식이나 발표 테크닉을 문제 삼는 것은 옳은 문제 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청중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연설자가 사용하는 모든 테크닉은 연설자의 능력이다. 이런 이유로 같은 연설문이라 할지라도 연설자의 능력에 따라서 평범한 연설이 되기도 하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연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대국민 담화의 진정성이나 오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담화 전문의 냉정한 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발표와 달리 글이란 발표자의 감정이나 몸짓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말하고자 하는 바의 날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날것 그 자체인 담화문 속에 담긴 꼼수에 대한 분석이다.
대통령의 '세월호' 국민담화문에 담긴 꼼수
담화문 속에 담긴 조직개편의 문제, 전문성의 문제, 실효성의 문제들을 이 지면에 담기에는 너무 방대한 글이 되는 관계로 본 글에서는 담화문의 편집에 국한하여 논하기로 한다. 먼저 아래의 예문을 읽고 각자의 느낌을 생각해 두기 바란다. 아래의 예문들은 물건을 파는 상점 주인이 호객을 위한 말을 가정하고 만든 예문이다.
예문 1)
싸게 드릴게요.
이건 외제입니다.
이건 국산입니다.
예문 2)
이건 외제입니다.
싸게 드릴게요.
이건 국산입니다.
예문 3)
이건 외제입니다.
이건 국산입니다.
싸게 드릴게요.
위의 세 가지 예문은 같은 문장을 그 배열 순서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상점 주인은 외제와 국산 중에서 무엇을 싸게 판다는 것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 수법은 악의적으로, 사기 칠 목적으로 작성된 계약서에 많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예문 1은 누가 읽어도 외제와 국산 모두를 싸게 팔겠다는 주인 의지의 반영이다. 그러나 예문 2와 예문 3은 다르다.
예문 2는 "이 물건은 외국산임에도 불구하고 싸게 드리지만 국산은 제값 주고 사세요"란 주인 의지가 반영된 것이고, 예문 3은 "이 물건은 외제이므로 싸게 드릴 수 없고 이 국산 물건은 싸게 드릴게요"란 주인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혹시라도 예문 2나 예문 3과 같이 작성된 계약서를 들고 주인에게 왜 한 가지만 싸게 파느냐고 따진다면, 주인은 언제든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위의 풀이를 들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문장들이다.
글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듯 같은 글감을 가지고도 어디에 방점을 찍을까 고민하며 편집하게 된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작가의 의지가 반영되어 글감 배열의 순서가 정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글의 행간 의미를 잘 살펴 분석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극적인 어떤 단어를 사용하거나 각종 미사어구를 총 동원하여 포장하여도 속내를 감출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진심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꼼수는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박 대통령이 '해경 해체'를 맨 처음 말한 이유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의 요지를 정리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 본인에게 있음을 통감한다, 따라서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고 새로운 법과 조직으로 일신하여 다시는 이러한 참극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는 메시지다.
대통령의 발표를 들으며 담화 전문을 모두 기억하고 평가하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충격적이라는 수식어까지 달면서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해경의 해체는 모든 국민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책임자 처벌에 대한 수위가 상당히 엄중하리라는 짐작을 하기에 충분한 일성이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속임수가 숨어 있다.
담화문에 담긴 책임자 처벌에 대한 내용만 발표 순서에 따라서 세 문장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하고, 안행부, 해수부의 조직 중 국민안전에 해당되는 업무를 분리하여 신설 국가 안전처에서 통합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2) 청해진해운 같은 악덕기업은 문 닫게 하고 수백 명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과 승무원 같은 사람들을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3) 필요하다면 특검과 진상조사 위원회를 통하여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 세 문장의 배열 순서는 담화문 작성자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문장의 배열 순서는 위에서 제시한 예문 3의 배열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대통령이 성역 없는 수사와 처벌의 의지가 있었다면 담화문의 순서 배열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1) 필요하다면 특검과 진상조사 위원회를 통하여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2)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하고, 안행부, 해수부의 조직 중 국민안전에 해당되는 업무를 분리하여 신설 국가 안전처에서 통합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3) 청해진해운 같은 악덕기업은 문 닫게 하고 수백 명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과 승무원 같은 사람들을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러한 편집 구조를 가진 담화문에서의 화룡점정이 바로 해경의 해체라는 일성이다. 똑같이 조직을 2등분 혹은 3등분으로 분리하여 다른 부서로 이관되는데, 왜 유독 해경에만 해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했을까? 쪼개짐으로만 본다면, 3등분으로 쪼개진 안행부가 더 해체에 가깝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에 숨겨진 꼼수 문학의 정수를 보게 된다.
분리는 나누어 그대로 있는 상태를 말하고 해체는 쪼개어 흩어짐을 말하는 것이다. 해체는 흩어져 사라짐의 의미가 강한 단어이다. 그럼 해경의 책임자들과 구성원들은 흩어져 흔적 없이 사라지는가? 물론 아니다.
담화문의 내용을 보면, 경찰 업무와 구조업무를 분리하여 경찰청과 국가 안전처로 각각 이관된다. 일부의 해경 공무원들은 오히려 전문적인 부서로의 발령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감지될 만큼, 일부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 결단코 아니다. 해경의 해체는 공무원의 부서 이동일 뿐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담화문의 진위를 가릴 여유도 주지 않고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속임수가 바로 '해경 해체'라는 표현이다. 해경이 엄청나게 처벌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포장한 국민 기만용 꼼수가 바로 해경 해체인 것이다.
이런 표현기법은 이미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경험했다. 통일이 왜 대박인지, 대박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그 방안과 철학은 가지고 있는지를 따져 물을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국민에게는 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와 결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마치 환각제와도 같은 표현기법이다.
자극적인 언어 사용, '통일 대박'으로 족하다
▲ 세월호 침몰 사고 35일째인 20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실종자, 희생자, 생존자 가족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세월호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정부에서 책임지고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구조에 총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처음에 세월호는 기업가의 탐욕이 부른 해양 선박 사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고가 참사로 이어지고, 한 달 넘도록 국가 전체를 요동치게 한 원인은 전적으로 국가 재난 시스템에 대한 무능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달리 생각하면, 정부 차원에서 세월호는 박근혜 정부의 유능함을 온 국민과 만 천하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만큼 승객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돌이켜 볼 때, 하늘이 내려 준 골든타임 동안 구할 수 있는 승객을 모두 구해 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에 길이 남을 지도자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정반대였다.
세계 어떤 국가도 천재이든, 인재이든 일어나는 사고를 완전하게 막을 수는 없다. 그 횟수를 줄일 수는 있어도 사고 자체를 제로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세월호가 전 국민에게 아픔을 준 참사로 기억되어지는 이유는 배가 침몰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재난시스템이 침몰했기 때문이다. 가라앉는 배에 아이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배에 타고 있었던 아이들이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하고 수장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참사의 책임소재는 사고 낸 자들과 구하지 못한 자들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 근본적 원인 제공자인 청해진해운이나 선장과 승무원에게는 응당 그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세월호의 참사를 부른 모든 책임이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고 고백한 만큼, 그 처벌 또한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진상조사와 그 책임 추궁에 있어서도 청해진과 해경에 경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선장과 승무원이 살인자와 같다면 해경의 구조 책임자 또한 살인에 대한 동조자이며 공범자인 것이다. 결코 내 식구 감싸기를 위해서 청해진과 선장 그리고 승무원을 희생양으로 삼아 유가족과 국민 슬픔의 근본적 원인을 무마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대통령의 담화문 속에 그려지고 있는 그림은 내 식구 감싸기와 희생양 만들기의 두 그림이다. 담화의 모든 내용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해경의 해체라는 자극적인 단어 사용은 '통일은 대박' 한 번의 사용으로 족하다.
거대 언론이 아무리 충격적이라고 떠들어도 이제 국민은 알 만큼 다 인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 모든 국민은 세월호와 같은 비극을 선거정국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상기와 같이 담화문 속에 담긴 발표자의 의지를 분석하고 유능한 법조인에게 법리적 자문을 구했다. 만약 대통령의 약속대로 특검과 진상조사 위원회가 꾸려지면 이미 해체된 해경을 상대로 공소를 할 수 있는가? 공소 대상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공소가 가능한가를 자문해 보았다. 검찰의 공소는 조직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것이므로 해경청장과 관제센터 담당자를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읍참마속의 정도를 버리고 내 식구 감싸기로 일관한다면, 대국민 담화는 정말로 대국민을 상대로 자행된 꼼수였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끝내고자 한다면, 국민이 지금 가슴에 지니고 있는 분노의 화살은 박근혜 대통령을 정조준하게 될 것이다.
국민 앞에서 흘린 참회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길은 책임자의 조사와 처벌에 있어서 지위고하를 망라해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뿐이다. 대통령으로써 진정으로 유가족과 국민의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의혹들에 대하여 한 점 거짓 없이 진실의 날것 그대로를 국민 앞에 드러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는 진심으로 바란다. 필자의 생각이 기우일 뿐이고, 이 모든 분석이 한낱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자백할 수 있도록 대통령께서는 일체의 가림과 숨김없이 세월호 참사의 모든 진실을 낱낱이 밝혀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 글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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