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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월호 추모집회 11살 아이 "정부 잘못, 나도 안다"

세월호 추모와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미국 앨라배마주 평화집회 열려

등록|2014.05.21 16:21 수정|2014.05.21 17:02

▲ 알라배마(앨라배마)주 평화집회 포스터. ⓒ


18~19세기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성장한 목화산업의 이면에는 쇠사슬에 묶여 채찍을 맞으며 짐승처럼 일했던 불쌍한 흑인 노예들이 있었다. 미국 팽창주의와 영토 약탈을 합리화하기 위해 백인들은 소위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것을 고안해 냈다. 그것은 신에게 선택 받은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열등한 인간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 남부에서 흑인노예 제도를 유지하고 짐승처럼 노동력을 강요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논리로도 이용됐다.

과거 'Cotton states'(코튼 스테이츠, 미국 앨라배마 주의 속칭)로 불리던 이 남부의 중심에는 'the heart of Dixie'(더 허트 오브 딕시, 미국 동남부의 심장)라는 별명을 달고 남부연합의 수도 역할을 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가장 못 사는 흑인들이 사회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앨라배마주가 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수정헌법 제13조의 통과로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후에도 차별의 역사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앨라배마주는 1950~60년대 미국 흑인 운동의 중심무대였다. 이미 100여 년 전 수정헌법 제15조는 인종에 따른 참정권 제한을 엄격히 금지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도 투표 의지를 보이는 흑인에 대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무차별 폭력과 '투표자 문맹 테스트'나 '투표세 부과'와 같이 흑인들의 참정권 행사를 가로막는 행위는 계속됐다.

그리고 참정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27살의 흑인청년 지미 리 잭슨(Jimmie Lee Jackson)이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1965년 셀마에서 앨라배마 주도였던 몽고메리까지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자유의 행진이 진행됐다.

앨라배마 주 정부는 비폭력 시위대의 행진을 막아섰고 진압하기 위해 폭력을 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 정부의 잔악함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오히려 연방 정부 차원의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어 냈다. 결국 존슨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정부와 협상해 연방 차원의 선거법(the Voting Rights Act.)이 의회를 통과하게 됐다. 이는 훗날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라는 기적을 낳았다.

▲ 지난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가 끝난 뒤 시민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정부에 항의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이를 막아서는 경찰들, 그리고 연행되는 비폭력 집회 참가자들. 이러한 모습은 50년 전 이곳 앨라배마에서 셀마의 평화행진을 막아서던, 잔악한 앨라배마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는다. 노예로 건너왔던 이 땅에서 흑인 대통령 탄생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낸 이들처럼,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큰 변화를 일으키리라는 것을. 이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만들어, 국민에게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정부,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을 미개하게 바라보고 소수의 명백한 운명(?)을 가진 자들을 위해서만 능력을 발휘하는 이 정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우리가 이렇게 나서는 것은 '엄마의 마음' 때문입니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미국의 엄마들까지 한국정부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생때같은 어린 학생들, 내 자식일 수도 있는 어린 학생들 3백여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을 고국의 뉴스로 접하면서, 같이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단 한 명이라도 구조되기를 염원하며 눈물짓던 엄마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 조직력도 없고, 대부분이 시위와는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던 엄마들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가만히 있다가는 내 자식도 당할 수 있고, 내 자식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엄마들은 미주한인여성 생활정보 커뮤니티 '미시USA'를 통해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은 모금운동을 해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의혹을 알리는 광고를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타임스>에 게재하고 전미50개 주 동시 평화 랠리를 만들어 냈다.

엄마들은 "상식적으로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지금은 외국에 나와 있지만, 내 자식들이 대대로 바라보아야 할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무고한 어린 생명들이 죽어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 우리 아이들이 더욱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조국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곳 앨라배마의 엄마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참정권을 얻으려는 '건방진 흑인들'과 이들을 돕는 '백인 자유주의자들'에게 살인, 방화, 테러, 약탈에 폭력까지 불사하며 응징을 가한 미 극우비밀결사 단체 '쿠 클랙스 클랜(약칭 KKK)'의 본부가 있었던 터스컬루사(앨라배마 서부의 도시)에서 말이다!

지난 17일 오후 2시 터스컬루사의 '캐피톨 파크'로 검은 옷을 입은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다.

▲ 앨라배마주 평화집회에 참석한 엄마들. ⓒ 우수미


▲ 캐피톨 파크에서 뛰어노는 아이. ⓒ 우수미


터스컬루사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지 않는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 랠리 준비단계에서부터 협박이나 회유가 있었다. 또 이곳은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칼리지 타운'으로 이미 2주 전에 여름방학이 시작돼 많은 학생들이 떠난 상태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곧 50명이 넘는 엄마 아빠들이 모여 들었다. 편도 1시간이 걸리는 버밍햄에서부터 편도 2시간 거리의 몽고메리까지 기쁜 마음으로 운전해서 왔다는 가족들도 있었다. 또, 미시시피에서는 랠리가 열리지 않아 편도 3시간이 넘게 걸려서 찾아온 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런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했다.

앨라배마에 모인 한인들, 침묵 집회 진행

▲ 앨라배마주 평화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 우수미


집회는 침묵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를 들고,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마스크를 썼다.

말만 할 뿐 실제로 책임지지 않는 한국 정부, 정부 탓만 하고 본인들은 나서지 않는 국회의원, 교육받은 자의 양심을 저버리고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는 지식인들, 그리고 마치 정권의 홍위병인양 올바른 판단을 못하고 피해자 가족들과 추모하는 국민들을 협박하고 위협하는 사람들을 침묵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천만인 서명운동을 했다. 또 참가자들은 한국정부나 희생자 가족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노란 종이에 적어 검은 보드를 완성했다. 그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 앨라배마주 평화집회에 붙은 스티커. ⓒ 우수미


"사실에 사랑을 더하면 진실이 됩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우리의 아들 딸들아. 잊지 않을게"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을 듯 합니다. 전하신 뜻을 타지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나마 support(후원)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귀중한 생명들을 잃게 된 이번 참사는 살아있는 우리들 곁에 오랫동안 맴돌 거예요. 열심히 참여하고 행동하겠어요"
"미국에서도 학부모님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잊지 않고 행동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정말 안타깝고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능한 정부는 악한 정부다"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 국민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한국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는가?"
"책임지지 않고 책망만 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가만히 잊지 않겠습니다. 박근혜는 책임져라"
"박근혜 당신이 청산되어야 할 적폐이다"
"박근혜 OUT"

참석자들은 다양한 메시지를 통해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앞으로의 행동을 다짐했다. 또 초기 대응과정에서 무능했던 한국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앨라배마주 평화집회에 참석한 아이들. ⓒ 우수미


부모들의 손을 잡고 평화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이 남긴 메모들 역시 큰 감동을 주었다.

만 6살의 말콤은 "We are here for you. (당신을 위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어요)"라는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한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고, 만 11살 예준이는 "I am only 11, but even I know what the government did was bad. (저는 이제 11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부가 한 짓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요)"라고 썼다.

미시시피에서 편도 3시간이 넘게 걸려 부모님과 함께 참석한 만 11살의 시영이도 "The only reason you didn't save them is because of money. 300+ died. (아이들을 구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가 돈 때문이에요. 300명이 넘게 죽었어요)"라는 메모를 남겼다. 이제 글을 배우기 시작한 듯 보이는 만 4살 남짓의 한 꼬마 아이도 한국 대통령에게 "You are mean. (당신은 비열해요)"라고 남겼다.

페이스북을 통해 세월호 참사 관련 앨라배마 평화랠리 소식을 접하고 참석해 준 다른 국적의 앨라배마인들 역시 한국 정부와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노란 종이에 적었다.

"We in the U.S.A. are so sad about your loss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가족을 잃은 당신들의 소식에 많이 슬픕니다)"
"I feel so sad. I hope they bring the truth to light. (아주 슬픕니다. 그리고 진실의 불이 밝혀지기를 희망합니다)"
"No matter what religious practice you hold dear, I pray blessings upon the change that you seek, and the justice that you deserve. (어떤 종교를 믿던 간에,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변화와 마땅히 누려야 할 정의에 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I hope everything would be investigated. I pray for the passengers and the families. (모든 것이 철저히 규명되기를 희망하며,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I want the victims' families to know that there are many Americans who support you and hope you can find peace after this terrible tragedy. (여러분들을 후원하는 미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고, 이 끔찍한 비극이 지나간 후에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You deserve an investigation! We will not stop praying for you! (여러분은 진상규명을 받을 자격이 있고, 여러분들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Our thoughts and minds are so sad on this side of the ocean over this. We grieve for loss of families and hope justice is done quickly. (바다 건너편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마음이 참으로 아픕니다.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정의가 빨리 찾아오기를 희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우수미씨는 앨라배마 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The University of Alabama)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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