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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나 사람이나 숙성과 발효가 필요하다

기본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참 맛 나와

등록|2014.05.23 18:53 수정|2014.05.23 18:59
여러 경로로 글을 소개하다보니 다양한 의견을 듣게 된다.

때로는 글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정치적 색깔이 있다는 지청구를 듣기도 하는데, 의도적이지는 않으나 글은 그 시간(쓴 시간대)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 가령 5월 23일인 오늘의 글에는 어쩔 수없이 대통령 노무현보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기억이 자연스럽게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본질적인 내용은 우리가 살기 위해 섭취하는 음식에 대한 내용이나 어떤 형태로든 무의식적으로 잊히지 않는 기억의 편린들이 버무려지곤 한다.

인터넷을 제법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면서 '장맛 좋은 집'이란 이름으로 글을 써 왔었다. 여기엔 '장맛'으로 해석되어질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루어졌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부터 시작하면 김치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들이 모두 현장을 찾아 자료로 만들어졌고, 된장 하나에도 옹기부터 물과 메주, 소금까지 모두 각각의 자료로 만들어지고 다시 하나의 글(자료)로 썼다.

재료로부터 시작해 반찬이나 밥, 가정에서 음식을 영리적 목적으로 판매하는 음식점까지 맛(장맛)에 관련된 내용은 어떤 분야라도 마다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지녔었고 앞으로도 이 생각은 변함없다.

그런데 어떻게 장맛을 이야기하며 작은 의미로는 '사람'으로 표현될 것이고, 넓은 폭으로 보면 '세상' 정도로 표현될 내용이 투사될 수 있느냐는 항의에는 변명 아닌 변명이라도 하자면 이렇다.

맛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중심으로 해 사용되어질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요, 음식 또한 먹어줄 대상이 있음으로 해서 만들어진다. 그러한 사람을 빼 놓고 음식을 이야기하고 자연산이거나 밭에서 농부가 가꾼 재료거나 이야기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가족을 멀리 떠나보낸 이는 음식을 만들어도 떠난 이가 생각나고, 시장에서 음식을 만들 재료 하나를 만나도 그를 추억한다. 생명유지의 목적으로 필수 영양소를 먹기 좋게 버무려내는 것이 음식인 다음에야 '사람 사는 세상'과 '사람 사는 정'을 이야기하는 건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요리를 먹다"는 말과 "음식을 먹다"는 말 중 어느 쪽이 더 옳은 표현일까에 대한 고민을 가끔 한다. 요리(料理)란 적절한 양을 헤아려 먹어 이로운 걸 만드는 자체를 이르는 걸로 해석하면 되겠다. 말 그대로 먹을 걸 만드는 과정 자체가 요리란 이야기다.

음식(飮食)이란 말은 마시고 먹는 걸 모두 포용한 말이다. 건더기가 있거나 씹어야 섭취할 수 있는 모든 게 먹는 것이고, 물로 통칭할 수 있는 술과 차, 국물 등은 마신다. 자연히 이 두 가지 말, 요리와 음식에 어떤 것이 '먹다'에 정확한 표현일까 고민되지 않겠는가. 분명한 것은 요리는 '요리를 하다'가 맞겠고, '음식을 먹다'가 보다 타당한 표현이라 본다.

김치 하나를 이야기 해 보자.

김치를 담그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김치 하나도 우리는 지역적 특성이나 문화까지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대표적으로 김치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게 고춧가루를 넣은 맛깔스럽게 보이는 배추김치를 연상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배추김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모두 이야기하라면 어떻게 될까? 지역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 부분에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배추김치를 담글 때 필수적인 요소는 '배추․소금․물'이다. 이 세 가지 재료만 이야기를 해도 각기 전혀 다른 글 세 개는 기본적으로 쓸 수 있다. 보다 깊이 있게 관찰하면 배추 하나만으로도 배추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글을 쓸 수 있고, 재배를 하는 방법이나 이용하는 방법, 배추를 선별하고 먹을 수 있게 요리로 만드는 과정 등 다양한 내용의 글을 쓸 수 있다.

소금이나 물도 마찬가지다. 물이면 다 물이지 뭐 다른 내용이 있느냐고 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무방하다. 김치를 담그는 데 필요한 재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배추와 소금, 물은 물론이고 고춧가루와 마늘, 파, 생강, 액젓, 새우젓을 기본적으로 김치의 필수요소로 꼽았다. 지역적으로 나뉘는 부분은 청각이나 생새우, 굴, 명태, 초피와 같은 지역 특산물이랄 수 있는 걸 김치를 담그는 재료로 이야기하는 경우다.

그러나 분명 김치는 배추와 소금 그리고 물만 있어도 된다. 다른 재료들은 모두 김치의 맛이나 영양가를 보충하고 살리기 위해 사용되는 양념이다.

배추가 처음 김치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는 이에 상응하는 간이 될 무언가로 밥을 먹었다. 산야초를 이용해 간을 맞추어 두었다 밥을 먹었을 수도 있고, 바다나 자연의 어느 곳에서 채취한 무언가를 밥에서 얻을 수 없는 필수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해 먹었을 것이다. 배추는 중국을 통해 처음 들어 온 것으로 알려졌고, 조선시대에나 가능했다. 그것도 일반에까지 널리 전파된 것은 근대의 일로 보여진다.

그러나 현재 배추김치를 빼고 우리의 음식문화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이런 배추김치도 초기엔 다른 재료와 함께 활용되는 양념의 입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배추김치를 놓고 보았을 때로 한정지어 보면 '배추·소금·물'은 필수 재료고, 고춧가루를 비롯한 다른 재료들은 선조들께서 생활을 통해 습득한 말 그대로 약(藥)의 개념으로 넣기 시작한 '약념(藥念)'이 원형질이 아닐까 한다.

찬 성질의 '배추·소금·물'에 음양오행의 이치를 따졌던 선조들께서 보다 몸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더운 성질의 고춧가루나 파, 마늘 등속을 넣고, 영양을 고려해 다양한 젓갈이나 재료들을 넣었을 것이다.

즉, 양념은 약념에서 시작한 말이 현재에 이른 것으로 보면 맞겠다.

초피지역에 따라 김치에도 넣는 초피는 열이 많은 성질의 토속적 향신료다. ⓒ 정덕수


사람도 김치와 다르지 않다.

배추를 밭에서 기르는 농부와 같은 심정으로 훈육을 할 필요가 있으며, 다양한 재료로 넣어 버무리고 발효를 시켜 맛깔스러운 김치가 되듯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니 말이다.

세상엔 정을 나누며 살아갈 줄 아는 참다운 사람도 있는 반면, 배우기는 많이 배웠으되 세상을 이롭게 할 줄 모르는 철면피들 또한 많음이 안타까우니 맛 좋은 김치를 담그는 방법에서 사람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 동시 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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