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게 선거 벽보라고요? 선관위에서 5번 묻더라"

'박근혜 퇴진' 선거 벽보 화제... 김수근 서울시의원 후보

등록|2014.05.25 10:59 수정|2014.05.25 13:49

▲ 김수근 서울시의원 후보가 '박근혜 퇴진' 벽보를 썼다. ⓒ 김수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선거운동 개시일이었던 지난 22일, 각종 SNS와 인터넷 게시판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진 한 장이 있다.

서울 중구 제1선거구에 붙은 벽보였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 벽보는 흰 종이에 손으로 써내려간 글씨가 빼곡하다. 후보의 인물 사진도 화려한 경력도 없다.

누리꾼들은 "머리 잘 썼네. 선거벽보라 훼손하면 안 되는데ㅋㅋ", "후보 얼굴보다도 머리에 든 생각이 더 중요하다"며 처음 보는 신기한 벽보를 통쾌해했다. 6월 4일까지 선거법의 보호를 받으며 서울 중구 곳곳에 붙게 될 이 벽보의 주인공인 김수근(32·시민운동가) 후보를 만나보았다.

'말해도 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출마

지난 23일 밤, 그를 만난 곳은 선거사무소 주소로 신고한 '중구 태평로 1가 1번지' 청계광장 인근이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 그는 낯이 익다. 그는 작년 여름 유튜브에서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녀석들>로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관련기사 : '토막살인' 협박에도... "국정원 이 빵구똥구야!" )

그의 출마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간명하게 "박근혜 정권 퇴진시키러 나왔습니다"고 말했다. 이후 김 후보는 이번 세월호 사건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 김후보가 선관위에 제출한 후보 사진. 선관위에 신고한 선거사무소인 청계광장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찍었다. ⓒ 김수근


""부정관권 선거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 간첩조작사건이 이어졌죠. 그뿐만 아니라 민생도 파탄났고 남북관계도 정부 인사들의 망언으로 맘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만 해도 최초로 보고받은 곳이 국정원으로 밝혀졌잖아요. 아직 사고 시점이나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도 많고. 그런데 정부에선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에게 허위사실 유포라며 기소하고 입 막기에 급급하죠.

이럴 때 정치인들이 국민을 보호하며 나서줘야 하는데 야당은 어땠습니까? 국민의 슬픔과 분노는 끓어오르는데 역풍이 무서워서 잠자코 있지 않았나요."

"사소한 의혹 제기부터 대통령의 퇴진까지도 국민 누구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며 김 후보는 국민들에게 "말해도 된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또한 김 후보는 "이대로라면 6·4 지방선거는 지난 대선과 같은 부정선거가 될 수 있다"며 "후보자로서 적극 감시하고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출마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케치북에 쓴 벽보와 공보물 3만 장, "진심은 통해..."

▲ 김수근 후보의 선거 공보물. ⓒ 최아람


김 후보는 가방에서 화제의 벽보 원본을 꺼내 보여주었다. 스케치북에 매직으로 직접 쓴 글씨, 다른 종이에 다시 고쳐 써서 덧붙인 자국, 매직으로 찍찍 그은 오타 등이 보였다. "능력은 없지만 진심은 통한다"며 벽보 제작 과정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제가 컴맹에다가 기계치(기계를 다루는 데 미숙한 사람을 이르는 말)에요. 학교 다닐 때도 PPT 이런 것도 쓸 줄 몰라서 과제는 직접 다 손으로 썼어요. 이메일도 없어서 직접 교수님께 갖다가 제출했고요. 

이번 선거에서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나라도 더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가진 것들로,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결심했죠. 선거관리위원회에 벽보를 제출했더니 '이게 선거 벽보라고요? 정말이요? 진짜 이걸로 쓰실건가요?' 하며 다섯 번을 물어보더라구요(웃음)"

집집이 배달되는 그의 공보물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직접 쓴 글씨로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리고 스캔 뜬 3만여 장을 밤새 다 세어서 나눴다고 한다. 동마다 배달하는 일도 직접 한다. 사무장, 회계책임자도 물론 다 후보 본인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시의원 공탁금 300만 원을 내기 위해 보증금 300만 원이던 반지하 방도 뺐다. 하지만 김 후보는 "나같이 평범하다 못해 가진 것 없는 청년이 선거에 나왔듯, 누구나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쌍하게 기사 쓰지는 말아달라"며 소리 내 웃었다.

청계광장 인근에 임시천막으로 선거사무소를 차린 김 후보에게 이번 선거의 목표를 물었다.

"야당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고 범국민 촛불에 모이기를 호소하지 않는다면 목표는 무조건 당선입니다. 공직 후보자로서 국민에게 당당히 촛불 들고 눈치 보지 않고 말해도 된다는 걸 보여드리겠어요. 진짜 '나라'를 위해서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