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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길거리에서 캐스팅, 사기꾼인 줄 알았죠"

[인터뷰] 영화 '귀접' 비롯해 할리우드 영화 '더 라이프' 출연하는 배우 이언정

등록|2014.05.28 14:16 수정|2014.05.28 14:16

<귀접>에서 연수를 연기하는 이언정 ⓒ 이나라


드라마 <아이리스>(2009)의 북한 여전사 태영을 연기한 이언정이 이번에는 영화 <귀접>에서 귀신이 붙어다니는 연수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귀접>에서 연수(이언정 분)와 연희(박수인 분)는 둘도 없이 의좋은 자매지만, 자신에게 붙은 남자 귀신이 행여라도 동생에게 따라붙을까 걱정한 연수는 한 마디 사정도 이야기하지 않고 연희와 생이별을 한다. 이런 언니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동생은 언니가 한없이 야속하고 원망스럽기만 하다. 살얼음처럼 산산조각난 두 자매의 우정은 과연 되돌릴 수 있을까.

'세 발자국을 전진하기 위해 한 발자국을 후퇴한다'는 말이 있다. 알고 보면 이언정이 이에 해당하는 배우다. 2009년 <아이리스> 출연 이후 재도약을 위해 연기 수업을 받으며 재충전을 하다가 올해 들어 <귀접>과 <하이힐>, 올 여름에 개봉할 할리우드 영화 <더 라이프> 세 작품으로 연달아 관객과 만난다.

- 영화 제목 <귀접>은 '귀신과 정을 통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나.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에는 '설마 이런 게 있겠어?'하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귀접의 사례가 꽤 많았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실감했다. 영화 소재가 신선하고 재미있다고 생각되어서 영화를 찍었다."

- 영화에는 말 그대로 귀신이 등장한다. 평소 공포영화를 잘 보는 편인가.
"공포영화를 굉장히 무서워한다. 잠을 못 잘 정도라 아예 보지 못한다. <귀접>은 선혈이 낭자하고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다른 공포영화보다 공포의 느낌이 다르다. 감성적으로 터치를 한, 깔끔한 품격의 공포영화다."

- 실제로 귀신을 본 적은 있나.
"어릴 적 길을 가면서 이상한 걸 본 적은 있다.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잠깐 시선을 돌리고 다시 보니 감쪽같이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길이면 시야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쭉 뻗은 길이었다. 저녁이나 밤도 아니고 환한 대낮에 일어난 일이라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귀접> 귀신이 무서운가, 사람이 더 무서운가 묻는 영화"

<귀접>에서 연수를 연기하는 이언정 ⓒ 박정환


- 연수를 연기할 때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
"시간이 들수록 가장 소중한 건 가족이다. 언니가 동생을 끔찍이도 아껴주는 애정, 동생을 지켜야 하는 심정에 포인트를 두고 연기했다. 언니인 연수는 동생에게도 남자 귀신이 달라붙을까봐 동생에게 말도 하지 않고 따로 살림을 차리는 장면이 있다. 언니가 귀신과 통정을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동생을 지켜주기 위해 떠나지 않으면 남자 귀신이 동생에게도 옮겨갈 수 있다. 만일 영화에서 연수가 '너와 떨어져야한다'는 사정을 이야기했다면 동생이 언니와 떨어지려고 했을까? 언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동생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 후반부 들어 동생을 지키기 위해 격투하는 장면이 있다.
"액션 영화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액션의 종류가 달라진다. 이 영화는 대단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배우들이 다치지 않게 합을 맞추는 게 중요하지, 멋진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합을 맞추는 게 아니다."

- 동생 연희의 남자친구 학철(김재승 분)이 헤어진 이유가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언니는 귀신이 동생에게 옮겨 붙는 걸 막기 위해 동생 곁을 훌쩍 떠난다. 동생 연희는 외롭던 차에 남자친구 학철을 만나지만, 학철의 사랑은 집착으로 변한다. 좋던 사람도 한순간에 싫어지게 만드는 게 집착이다. 연희는 헤어지자고 하지만 학철은 연희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귀접>은 '귀신이 더 무서운가, 사람이 더 무서운가' 묻는다. 학철 같은 사람이 귀신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리스> 이후 센 캐릭터만...다양한 연기하고 싶었다"

- 모델 일은 어떻게 시작했으며, 모델하다가 어떻게 연기자가 되었나.
"어릴 적부터 사진의 피사체가 되는 걸 좋아했다. 주말마다 친구들이 옷을 들고 와서 서로 찍어주는 걸 즐겼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모델을 하면 어떻겠냐 해서 모델라인 등에 사진을 넣었는데 사진을 보고 모델로 발탁이 되어 일을 시작했다. 어릴 적 꿈이 모델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된 것이다. 아는 오빠가 영화사에 있었는데 <로스트 메모리즈> 미팅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감독님이 생각하던 캐릭터와 제 이미지가 맞았다고 해서 캐스팅된 게 연기의 첫 출발이었다."

- <귀접>뿐만 아니라 6월 개봉예정작 <하이힐>, 미국에서 여름에 개봉할 <더 라이프>에도 출연했다.
"<하이힐>은 장진 감독님이 '우리 영화에 이런 캐릭터가 있는데 너와 잘 어울릴 것 같으니 (대본을) 읽어주지 않을래?' 요청해서 캐스팅된 영화다.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를 건네주고 제안한 건 연기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차승원씨가 연기하는 지욱의 친구인 정신과의사를 맡았다. 지욱의 비밀을 옛날부터 알고 있었고, 예전부터 지욱을 짝사랑하던 역할이다.

<더 라이프>는 <하이힐> 촬영을 마치고 뉴욕으로 갔을 때 길거리 캐스팅되어 찍은 할리우드 영화다. 뉴욕 거리를 걷는데 한 남자가 나를 따라 뛰어왔다. '영화 프로듀서인데 <더 라이프>를 찍을 예정이다. 관심 있느냐'고 묻더라.

길거리 캐스팅은 사기가 많다. 명함만 받고 이 사람이 진짜 프로듀서인가 반신반의했다. 며칠 후 <더 라이프>를 찍는다는 기사가 진짜로 실렸다. 나와 만난 프로듀서의 제안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할리우드 영화에 참여했다. 뉴욕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가십걸>에 출연한 배우 제시카 스자르의 학교 친구로 등장한다."

- <귀접>과 <하이힐>, <더 라이프> 속 캐릭터는 <아이리스>의 액션 여전사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다.
"우리는 옷을 한 벌만 입지 않는다. 매일 갈아입는다. 마찬가지로 배우는 여러 색깔의 연기를 갈아입을 줄 알아야 한다. 액션 여전사 이미지 말고 다른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던 차에 세 영화에서 각각 다른 역할을 연기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나에게도 다양한 이미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하나 더, 이미지를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은 거다. 내게 잘 어울리는 연기의 옷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중이다. "

- <아이리스> 이후 공백기가 길다가 올해 들어 갑자기 많은 작품 활동을 한다.
"2009년 이후 센 역할의 배역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건 경계했다. 쉬면서 제 자신을 정비하고 싶었다. 쉬는 동안 연기 수업을 많이 받았다. 쉬는 동안에는 배역이 크고 작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이 제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간사하다. 올해처럼 바빠지면 잠도 부족하고 해서 반대로 좀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동안 연기를 하다가 쉬다를 반복했다. <귀접>을 하며 연기적으로 느끼는 게 많았다. 이제는 쉬지 않고 연기를 위해 달리고 싶다."

- SBS <짝> '여자 연예인 특집'에 출연했을 때, 인기투표에서 '0표' 수모를 당해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모습을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루저처럼 왜 울었니' 하는 반응도 있었다. <짝>은 대본이 없는 리얼 예능이다. 당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게 우는 장면이었다. 그런 느낌으로 울어본 게 시원했다. 혼자 울 때도 소리 내며 운 적이 없는데 <짝>에서는 슬프게 울었다. 시원하게 울고 나니 내 자신이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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