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침묵행진' 제안, 청와대 홈페이지에 한 이유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123] 침묵행진 제안한 용혜인씨

등록|2014.05.30 10:59 수정|2014.05.30 10:59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지 어느덧 한달하고도 보름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차디찬 물속에는 16명이 있다. 사건 초기 정부 대응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지난달 말 한 대학생이 제안한 침묵행진이 주말마다 계속되고 있다. 침묵시위를 처음 제안한 용혜인씨와 29일 서면을 통해 만났다.

"사람도 너무 많이 실종되었고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보도만 연일 쏟아내면서 그냥 슬프고 무기력하기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한 용씨는 "대통령을 만나 직접 대화하겠다는 실종자 가족들을 경찰버스 10대를 동원해서 막아서는 것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던 중 대자보를 쓰고 29일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침묵행진을 제안했다"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려면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침묵행진 제안 글로 피해가 오진 않을까 두렵진 않았을까? 이에 용씨는 "그 글로 인해 청와대나 국가권력에서 탄압이 들어오는 것이 두렵다기보다는 인터넷상에서 신상 털리는 것이 두려워 전화번호를 올릴지 고민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은 후 "하지만 우려와 달리 욕설 문자, 협박 전화 등은 거의오지 않았고, 응원과 지지의 문자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뿌듯해 했다.

보수 측이 침묵행진을 좌파들의 선동으로 폄하하는 것에 대해서는 "잊지 말자는 것, 그리고 추모하자는 것. 거기에 더 이상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선동하는 것이라면 선동이 맞다고 하겠다"면서 "'선동하지 말라'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선동'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선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음은 침묵행진을 제안한 용혜인와 나눈 일문 일답이다.

▲ 촛불집회에서 용혜인 씨 ⓒ 박종만


- 침묵행진을 처음 제안하셨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세월호 사고를 처음 접하고 나서는, 사람도 너무 많이 실종되었고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보도만 연일 쏟아내면서 그냥 슬프고 무기력하기만 했습니다. 일부러 기사를 보지 않으려고 스마트폰으로 포털사이트에도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4월 19일 시험기간이어서 밤에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실종자 가족들을 경찰버스 10대를 동원해서 막아서는 것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그 다음 목요일에 학교에 대자보를 써서 붙였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친구들 몇 명과 침묵행진을 하기로 했고, 29일에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제안했고 30일에 첫 번째 침묵행진을 했습니다."

- 안산에서 초중고를 다녔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욱 남의 일 같지 않을 것 같아요.
"안산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단원구에 살고 있거나 오래 사신 분들은 말 그대로 '한집 걸러 한집'이 이번 사고로 가족이나 친척을 잃었습니다. 단원구에 살지 않아 남의 일이지만, 이러저러한 관계들로 얽혀있어서 남의 일이라고 모른척하고 관심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주변에 이번 사고로 가족들을,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학교 동창의 동생이 이번 사고로 희생되었다는 소식, 제 동생의 옛 은사님들이 이번 사고로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의 일이라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침묵행진을 제안했는데, 특별히 그곳에 올린 이유가 있나요.
"세월호 사고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가 많은 사람들의 대자보처럼 이용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당시 사고가 발생한 후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정부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마치 자신이 이 사고와 무관하게 사고 바깥에 있는 인물처럼 행동했고, 또 '책임자'가 아닌 '단죄자'처럼 행동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청와대에 적기도 했습니다."

- 청와대 홈페이지는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한다고 알아요. 그래서 따라오는 피해가 두려웠을 것 같은데.
"사실 그 글로 인해 청와대나 국가권력에서 탄압이 들어오는 것이 두렵다기 보다는, 인터넷 상에서 '신상이 털리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실제로 전화번호를 적을까 말까 20분이상 고민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신상이 털린다거나, 그로 인한 욕설 문자, 협박 전화 등은 거의 오지 않았고 응원과 지지의 문자를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 주위 가족이나 친구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부모님은 '너의 생각이니 말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시다보니 걱정도 많이 하십니다. 동생은 별 말은 하지 않는데 묵묵히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일인데, 학교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잊지 말자는 것, 추모하자는 게 선동이라면 선동이 맞다"

▲ 침묵행진에서 발언하는 용혜인씨 ⓒ 박종만


- 보수 측에서는 침묵 행진이나 촛불집회를 좌파의 선동으로 폄하하고 있던데.
"잊지 말자는 것, 그리고 추모하자는 것. 거기에 더 이상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선동하는 것이라면 선동이 맞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동하지 말라'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선동'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선동'이라고 생각합니다."

- 집회 당시 경찰의 목적은 '해산'이 아닌 '연행'으로 보일 정도였다.
"다른 날도 아니고 5월 18일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연행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100명이 연행된 것이라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100명에 가까운 사람을 한번에 연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경찰 한사람이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 취업 준비를 해야할 시기인데 이번 침묵행진때문에 좌파라고 낙인 찍힐 수도 있는데.
"사실 취업을 신경써야할 시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에 눈 감을 수는 없다고생각했습니다. 이후에 취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감수해야할 부분이겠지요. 일단 그런 고민들은 지금 고민해봤자 답이 없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가 제대로 마무리 되고 수습된 이후에, 해결된 이후에 고민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 침묵 행진은 언제까지 하실 계획입니까?
"세월호 사고가 제대로 해결될 때 까지 계속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월호 사고는 선장과 선원들만의 잘못으로 탓하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인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해진해운이 안전교육에는 1년동안 50만원을 쓰면서, 접대비에는 6천만원을 쓰고, 광고비에는 2억을 썼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전에는 아무도 이런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0년된 배를 헐값에 사들여와서 운행하고,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화물을 태우기 위해 무리하게 증축했던 것이 세월호 사고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안전'을 위한 것이 기업에게 '비용'으로 치부되면서, 그 '비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명'과 '이윤'은 저울질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명이 이윤보다 중요한 사회'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