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자면 성폭력 인식도 우월? 아니거든요
이윤성 교수의 "짧은 치마 입으면 성폭력" 강의 논란... 문제는 팩트가 아니라 '해석'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 발언이 논란이다. 지난해 12월 4일 진행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아래 양평원) 전문강사 위촉식 특강에서 이 교수가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과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진정서가 뒤늦게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교수는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녀서 성폭행이 일어난다.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가는 사람이 있다.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폭행은 100% 남성들이 한다. 그 이유는 남자들은 씨를 뿌려 거기에서 건강하고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해서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진정서를 제출한 황정현씨는 이 교수의 이런 발언을 듣고 당시 여러 전문강사들이 불쾌감을 느꼈으며 "성폭력에 대한 법의학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왜곡된 성의식을 일반화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교수는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발언의 앞뒤 맥락을 다 잘랐다"며 "왜곡된 성 인식이 아니라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서 나온 얘기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수치심을 느꼈다면 할 말이 없다. 100명 중 5명의 강사들에게라도 수치심을 유발했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흥미로운 반응이다. 일부 강사에게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잘못한 것인데 그 잘못의 원인이라고 지적된 발언 내용 자체는 '팩트'라고 한다. 이 교수는 팩트는 잘못되지 않았는데 일부 강사들이 팩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과 성평등 의식은 별개
이 교수가 진행한 특강의 주제는 '성폭력에 관한 법의학적 이야기'였다. 이날 강의에서 불쾌감을 느낀 참석자들이 12월 9일 진정서를 낸 이후 강사들에게 보낸 사과 메일에서 양평원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특히 생리학적인 입장에서 진행된 강의였으며 우리 사회에는 다른 시각과 입장이 존재하는 것을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또 한 언론보도에서 양평원 관계자는 "교수님은 양성평등이나 성폭력 예방 전문가가 아니라 법의학자니까 본인의 지식에 근거해 강의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강사는 법의학 전문가지만 성폭력 문제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청중은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이다.
이 구도에서 양평원은 어떤 가르침과 배움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아마도 법의학 권위자니 성폭력 문제에 대해 나름 올바른 이해와 감수성을 가졌으리라 추측했을 것이다. 그래서 청중들이 이 교수에게 구체적인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성폭력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불행히도 혹은 당연히도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지적 권위가 올바른 성폭력 인식까지 보장하지는 않는 듯하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학가에서는 강의실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했다. 그때 교수의 권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성차별적 편견, 몰이해, 감정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일들이 드러났다.
문제제기를 받은 많은 교수들은 "단지 개인적 견해이거나 학문적 사실"이라고 변명했다. 학생들은 학점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나 교수의 권위에 대한 압도감 때문에 쉽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교육자가 자신의 입장이나 편견을 강요하는 것은 그 내용이 '성적인 것(the sexual)'이든 아니든 '문제'라는 것이다.
골상학(두골의 형상에서 사람의 성격을 비롯한 심적 특성 및 운명 등을 추정하는 학문)이 유행하던 19세기 대학에서 백인 남성 교수가 두개골의 부위별 크기에 따라 성별과 인종에 순위를 매겨 남성의 지능이 뛰어나고 흑인이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 강의를 흑인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또한 이에 대한 이견이나 반론, 다른 과학적 발견을 소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올바른 강의일까.
이 교수는 오히려 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인 참석자들에게 성폭력 감수성을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본인이 이를 의식했다면, 강사로서 자신의 강연 내용과 입장에 대해 좀 더 신중하고 겸허해야 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지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경청하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필요하면 수정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 교수는 특강에서 "여자들이 봐 달라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데 보는 것이 성희롱이 되느냐. 난 짧은 치마 입은 여성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얘기해 보라, 대답을 듣지 못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가지 않겠다"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대답을,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는 자의 태도일까.
문제는 '팩트'가 아니라 '해석'
아마도 이 교수의 이러한 태도는 '팩트'를 알고 다룰 수 있는 전문가라는 확신에서 나왔을 것이다. 팩트는 힘이 세다. 특히 과학적, 의학적 팩트라 불리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무척 힘이 세다. 하지만 학문은 팩트 그 자체는 아니며 팩트에 대한 일정한 '입장'과 '해석'이 결합된 것이다.
골상학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두개골의 부위별 크기가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팩트이다. 또한 특정 범주로 분류했을 때 집단 간 차이가 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도 팩트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백인의 인종적 우수성이나 남성의 지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는 것은 특정한 '해석'이다. 팩트의 오류와 해석의 부당함이 밝혀졌을 때, 골상학은 '사이비과학'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물론 이 교수가 근거했다고 말한 진화심리학은 현재 사이비과학이 아니고 인간 행동의 원인을 설명하는 영향력 있는 학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심리, 인지, 행동에 있어 남녀의 차이를 이 교수처럼 단순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버스를 포함한 진화심리학자들은 번식 성공이 개체의 성공적 진화에 중요한 요소라 보고 이에 대해 남녀간 전략의 차이를 다룬다. 이 차원에서 강간이 남성에게 하나의 적응 전략으로 진화했다는 설명도 있다.
이 교수는 특강에서 이것을 제시하려던 것일까? 하지만 진화심리학 내용이 이게 전부는 아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여성들이 강간에 대해 갖는 격렬한 심리적 고통과 동시에 반강간적인 심리 과정도 함께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전자와 후자 모두 진화심리학적인 설명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설명만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강간에 대한 편향된 제시 이외에도 이 교수의 발언에는 남성의 제어할 수 없는 성욕과 공격성에 대한 강조, 여성의 성욕은 수동적이거나 없다는 가정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 역시 진화심리학의 최근 연구 내용과 다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암컷이 주도적으로 여러 상대와 성관계를 맺는 현상을 밝히기도 했으며 인간 여성의 혼외정사와 공격성을 능동적인 행동으로 다루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은 암컷의 성욕과 공격성, 경쟁행동을 관찰한 영장류 연구자 세라 블래퍼 허디 같은 진화론적 페미니스트들의 관찰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진화심리학이 페미니스트와 대립만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개입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의 팩트와 설명의 구체적 맥락을 자른 것은 오히려 이 교수인 것 같다.
남녀의 성인식과 성행동에 대해 부족하거나 치우친 설명을 하면서 이것이 팩트라고 주장하는 권위적 태도는 단지 이 교수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전문가라는 지위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를 설명하려는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로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성평등교육기관에서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경각심을 가져할 곳은 또 있다. 바로 성폭력예방교육과 성평등교육에 대한 제반 사항을 관장하는 기관인 양평원이다. 양평원은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성차별적 인식과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국가기관으로 제도화된 곳이다.
전문강사를 교육하고 인증하는 기관으로서 양평원은 이들을 위한 교육 내용과 강사 섭외에 제대로 된 고민과 검증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이를 방기한 후 뒤늦게 다른 시각과 입장이 존재하는 것을 깨닫을 수 있는 특강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양평원의 안이한 태도를 증명하는 변명에 가깝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은 지적 권위를 가진 이들조차 쉽게 벗어나기 힘든 우리 사회의 강한 장벽이다. 반성폭력 운동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이들은 이 점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이번 논란은 이 교수 개인의 성찰뿐 아니라 지적 권위를 가진 이들 모두의 책임 있는 성찰과 행동을 요하는 사례라 하겠다. 성평등교육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인 양평원에는 더욱 그렇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교수는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녀서 성폭행이 일어난다.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가는 사람이 있다.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폭행은 100% 남성들이 한다. 그 이유는 남자들은 씨를 뿌려 거기에서 건강하고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해서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진정서를 제출한 황정현씨는 이 교수의 이런 발언을 듣고 당시 여러 전문강사들이 불쾌감을 느꼈으며 "성폭력에 대한 법의학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왜곡된 성의식을 일반화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교수는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발언의 앞뒤 맥락을 다 잘랐다"며 "왜곡된 성 인식이 아니라 팩트에 근거한 진화심리학에서 나온 얘기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수치심을 느꼈다면 할 말이 없다. 100명 중 5명의 강사들에게라도 수치심을 유발했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흥미로운 반응이다. 일부 강사에게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잘못한 것인데 그 잘못의 원인이라고 지적된 발언 내용 자체는 '팩트'라고 한다. 이 교수는 팩트는 잘못되지 않았는데 일부 강사들이 팩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과 성평등 의식은 별개
▲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누리집. 이윤성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지난해 12월, 성평등 전문강사들을 상대로한 강연에서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을 쏟아내 논란이 되고 있다. ⓒ 강민수
이 교수가 진행한 특강의 주제는 '성폭력에 관한 법의학적 이야기'였다. 이날 강의에서 불쾌감을 느낀 참석자들이 12월 9일 진정서를 낸 이후 강사들에게 보낸 사과 메일에서 양평원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특히 생리학적인 입장에서 진행된 강의였으며 우리 사회에는 다른 시각과 입장이 존재하는 것을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또 한 언론보도에서 양평원 관계자는 "교수님은 양성평등이나 성폭력 예방 전문가가 아니라 법의학자니까 본인의 지식에 근거해 강의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강사는 법의학 전문가지만 성폭력 문제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청중은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이다.
이 구도에서 양평원은 어떤 가르침과 배움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아마도 법의학 권위자니 성폭력 문제에 대해 나름 올바른 이해와 감수성을 가졌으리라 추측했을 것이다. 그래서 청중들이 이 교수에게 구체적인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성폭력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불행히도 혹은 당연히도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지적 권위가 올바른 성폭력 인식까지 보장하지는 않는 듯하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학가에서는 강의실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했다. 그때 교수의 권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성차별적 편견, 몰이해, 감정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일들이 드러났다.
문제제기를 받은 많은 교수들은 "단지 개인적 견해이거나 학문적 사실"이라고 변명했다. 학생들은 학점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나 교수의 권위에 대한 압도감 때문에 쉽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교육자가 자신의 입장이나 편견을 강요하는 것은 그 내용이 '성적인 것(the sexual)'이든 아니든 '문제'라는 것이다.
골상학(두골의 형상에서 사람의 성격을 비롯한 심적 특성 및 운명 등을 추정하는 학문)이 유행하던 19세기 대학에서 백인 남성 교수가 두개골의 부위별 크기에 따라 성별과 인종에 순위를 매겨 남성의 지능이 뛰어나고 흑인이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 강의를 흑인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또한 이에 대한 이견이나 반론, 다른 과학적 발견을 소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올바른 강의일까.
이 교수는 오히려 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인 참석자들에게 성폭력 감수성을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본인이 이를 의식했다면, 강사로서 자신의 강연 내용과 입장에 대해 좀 더 신중하고 겸허해야 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지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경청하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필요하면 수정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 교수는 특강에서 "여자들이 봐 달라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데 보는 것이 성희롱이 되느냐. 난 짧은 치마 입은 여성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얘기해 보라, 대답을 듣지 못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가지 않겠다"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대답을,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는 자의 태도일까.
문제는 '팩트'가 아니라 '해석'
아마도 이 교수의 이러한 태도는 '팩트'를 알고 다룰 수 있는 전문가라는 확신에서 나왔을 것이다. 팩트는 힘이 세다. 특히 과학적, 의학적 팩트라 불리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무척 힘이 세다. 하지만 학문은 팩트 그 자체는 아니며 팩트에 대한 일정한 '입장'과 '해석'이 결합된 것이다.
골상학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두개골의 부위별 크기가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팩트이다. 또한 특정 범주로 분류했을 때 집단 간 차이가 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도 팩트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백인의 인종적 우수성이나 남성의 지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는 것은 특정한 '해석'이다. 팩트의 오류와 해석의 부당함이 밝혀졌을 때, 골상학은 '사이비과학'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물론 이 교수가 근거했다고 말한 진화심리학은 현재 사이비과학이 아니고 인간 행동의 원인을 설명하는 영향력 있는 학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심리, 인지, 행동에 있어 남녀의 차이를 이 교수처럼 단순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버스를 포함한 진화심리학자들은 번식 성공이 개체의 성공적 진화에 중요한 요소라 보고 이에 대해 남녀간 전략의 차이를 다룬다. 이 차원에서 강간이 남성에게 하나의 적응 전략으로 진화했다는 설명도 있다.
이 교수는 특강에서 이것을 제시하려던 것일까? 하지만 진화심리학 내용이 이게 전부는 아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여성들이 강간에 대해 갖는 격렬한 심리적 고통과 동시에 반강간적인 심리 과정도 함께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전자와 후자 모두 진화심리학적인 설명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설명만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강간에 대한 편향된 제시 이외에도 이 교수의 발언에는 남성의 제어할 수 없는 성욕과 공격성에 대한 강조, 여성의 성욕은 수동적이거나 없다는 가정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 역시 진화심리학의 최근 연구 내용과 다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암컷이 주도적으로 여러 상대와 성관계를 맺는 현상을 밝히기도 했으며 인간 여성의 혼외정사와 공격성을 능동적인 행동으로 다루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은 암컷의 성욕과 공격성, 경쟁행동을 관찰한 영장류 연구자 세라 블래퍼 허디 같은 진화론적 페미니스트들의 관찰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진화심리학이 페미니스트와 대립만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개입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의 팩트와 설명의 구체적 맥락을 자른 것은 오히려 이 교수인 것 같다.
남녀의 성인식과 성행동에 대해 부족하거나 치우친 설명을 하면서 이것이 팩트라고 주장하는 권위적 태도는 단지 이 교수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전문가라는 지위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를 설명하려는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로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성평등교육기관에서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경각심을 가져할 곳은 또 있다. 바로 성폭력예방교육과 성평등교육에 대한 제반 사항을 관장하는 기관인 양평원이다. 양평원은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성차별적 인식과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국가기관으로 제도화된 곳이다.
전문강사를 교육하고 인증하는 기관으로서 양평원은 이들을 위한 교육 내용과 강사 섭외에 제대로 된 고민과 검증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이를 방기한 후 뒤늦게 다른 시각과 입장이 존재하는 것을 깨닫을 수 있는 특강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양평원의 안이한 태도를 증명하는 변명에 가깝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은 지적 권위를 가진 이들조차 쉽게 벗어나기 힘든 우리 사회의 강한 장벽이다. 반성폭력 운동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이들은 이 점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이번 논란은 이 교수 개인의 성찰뿐 아니라 지적 권위를 가진 이들 모두의 책임 있는 성찰과 행동을 요하는 사례라 하겠다. 성평등교육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인 양평원에는 더욱 그렇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