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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아버지의 죽음

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

등록|2014.05.31 16:26 수정|2014.05.31 16:26
7년전 월세를 전전하다가 작은 빌라를 구입했다. 내가 산 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다. 두 분은 작은 아파트로 이사가서 남은 생애 편히 살기를 원하셨다. 빌라는 모두 열두 세대였다. 내가 산집은 그 중의 4층이다.

"우리 영감이 집을 깨끗하게 잘 관리해서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할머니는 자랑하듯 말씀하셨다. 얼굴색이 검고, 키가 작고, 모자를 눌러 쓴 할아버지는 가만히 앉아서 있는 법이 없다고 했다. 젊었을때부터 성실한 습관이 몸에 뱄다. 집안 구석구석 할아버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옥상에 큰 스치로플통을 대 여섯개 준비해 흙을 채우고 작은 텃밭을 일구었다. 상추와 고추, 부추등을 손수 관리하며 가꾸었다. 지붕의 양 모서리 끝을 연결해 빨래줄도 만들었다. 빨래 집게들도 다양한 색깔로 준비해 놓았다. 베란다의 받침대며 창고며, 할머니 말씀대로 관리를 잘 하셨다. 마음에 들었다. 

빌라 옆에는 작은 공터가 있다. 그곳에는 할아버지가 몇 년동안 가꾸어온 채소밭이 있다. 아파트에 이사 가서도 아침마다 나오셔서 텃밭을 가꾸셨다. 텃밭에는 옥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추, 상추, 배추등 갖가지 종류의 채소로 가득찼다. 그곳을 지날 때 면 할아버지는 직접 재배한 상추와 고추등을 먹어보라고 몇 번 뜯어 주셨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면 항상 이른 시간에 나오셔서 일을 하시곤 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국의 아버지 상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날 새벽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텃밭에는 낯선 할아버지가 일하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올 들어 텃밭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를 통 볼 수 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텃밭을 가꾸던 할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지난달 돌아 가셨어요" 
"왜요? 왜 갑자기 돌아 가셨어요"
"모르겠어요.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가슴이 먹먹했다.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건강해보였다. 아픈 곳이 없다고 건강을 자랑하기까지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구나. 태어남은 순서가 있을지언정 죽는 것은 순서가 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 선행을 베풀고 게으르지 말아야 겠구나, 후회가 되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걸, 얼굴에 땀흘리며 일하실 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 드릴걸, 올해도 어김없이 텃밭의 채소는 또 다른 분의 손길로 푸르게 자라고 있다. 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세월호 사건등 죽음에 관한 뉴스들이 많이 들립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얼마나 아프고 그리울까요? 죽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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