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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상식인이 하는 것이다

[리뷰] 연극 <줄리어스 시저>

등록|2014.06.01 09:12 수정|2014.06.01 09:12

줄리어스 시저 포스터피를 뒤집어 쓴 시저와 브루투스의 얼굴이 포스터에 담겼다. ⓒ 명동예술극장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세 어절의 짧은 대사는 어느새 '역사적 진실'처럼 둔갑했다. 이 대사의 출처이기도 한 셰익스피어의 연극 <줄리어스 시저>는 그래서 고전비극과 같은 위대하고 비장한 남자들만의 서사인 양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 중인 <줄리어스 시저>는 어떤 의미에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 깨주는 작품이다.

남자배우 16명, '마피아 패밀리'로 환생한 로마 정치판

이 연극은 명동예술극장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으로 <맥베스>에 이어 상연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원작에는 두 사람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연출가 김광보는 과감하게 여성 캐릭터들을 쳐 냈다. 대신 손종학, 윤상화, 박호산, 박완규를 필두로 내세운 16명의 남자배우들이 이 연극을 이끌어간다.

브루투스 역 윤상화의 연기에는 흡입력이 있다. 관객은 묘한 그의 말투에 그가 입을 떼는 순간 '콱' 사로잡히고 만다. <칼집 속의 아버지>(2012)에서 보여준 것만큼이나 그릭터에 미친 듯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지만, 그 작은 체구가 거인처럼 보이게 하는 연설 장면은 인상적이다.

박호산의 안토니는 온몸으로 캐릭터를 보여준다. 야비한 듯 칼날을 숨긴, 마피아 조직의 카포(중간보스) 같은 사내의 느낌을 말이다. 신체연기가 뛰어나 그의 몸 자체가 그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시저 역 손종학은  흰 코트에 정장, 거기에 스카프까지 대놓고 마피아 보스를 콘셉트로 잡은 것이 느껴진다. 인상을 구긴 채 죽어있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자면 뭐라고 말 못할 위압감과 허무하게 살해당한 보스에 대한 측은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렇게 대놓고 마피아 분위기를 뿌린 이유는 극이 진행될수록 분명해진다. 김광보가 그리는 <줄리어스 시저>는 위대한 정치인들의 고뇌에 찬 거사와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HBO)를 연상시키는 험악하고 더럽고 지질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다.

이종격투기 경기를 위한 옥타곤을 연상시키는 사각의 철망, 줄줄이 워커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13명의 남자배우(브루투스만 워커 차림이 아니다), 마피아 보스 줄리어스 시저, <매트릭스>의 키아누리브스를 대놓고 패러디한 안토니. 객석에 앉으면 이제 당신은 정치와 권력의 음험하고 지나치게 인간적인 뒷골목을 들여다 볼 준비가 된 것이다.

시저는 신이 아니다, 정치인은 인간이다

연출가 김광보는 "브루투스가 혁명에 실패하는 것은 비상식적 상황에서 상식적 인물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이 연극에서 '비상식'이란, 카시어스가 목격했던 '인간 시저'가 어느 순간 '신'으로 둔갑하며 벌어지는 정치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 시민들은 시저를 신이라고 외친다. 카시어스는 브루투스에게 털어놓는다. 시저는 강을 건너 헤엄치다 절반도 못 가 살려달라 외쳤다고, 그때 그는 나와 똑같은 인간이었는데 오늘 로마 시민들은 그를 향해 신이라 외친다고.

연극은 계속해서 정치인으로서의 공적인 모습과 인간으로서의 사적인 모습을 대립시킨다. 카시어스가 목격한 시저 뿐만이 아니다. 카시어스 본인도 전반부에서 보여주는 시저 암살을 결행시킨 책략가의 모습과 다소 찌찔하고 우스꽝스러운 아저씨가 된 후반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묘사된다. '시저보다 로마를 더 사랑해서' 시저를 암살한 고결한 브루투스 역시 후반부에서는 다소 어리숙하고 찌찔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죽음 앞의 존엄을 지켰지만, 모든 것이 파멸하는 필리피의 전장에서 그의 존엄은 그야말로 '최소한'을 지켰을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당대에는 상업극이었다. 이 연극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당대의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 혹은 우스개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순간순간 드러나는 '위대한 정치인'의 공적 자아와 '평범한 개인'의 사적인 영역 사이의 균열을 아주 의미심장한 눈길로 보아야 한다.

전반부에서 고결한 공화주의자 브루투스는 의뭉스러운 책략가이지만 역시 공화주의자인 카시어스와 의기투합해 시저를 암살한다. 브루투스는 시저 사후 혼란에 빠진 로마 시민들을 상대로 "내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고 연설한다.

로마 시민들은 우연히 주운 종이쪼가리를 시저의 유언장인 양 하여 시저가 로마 시민들에게 전재산을 남겼다고 외치는 안토니에게 현혹당한다. 시저가 신이라고 믿는 광신과 시저의 재산을 노리는 탐욕이야말로 '비상식적 상황'의 실체다. 물론 이 연극에 등장하는 안토니의 연설은 아직까지도 '정치 연설의 교범'처럼 여겨지기는 한다. 그러나 약간의 각색이 이루어져 안토니의 연설은 공연 밖의 관객에게는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들린다. 이 노골성문에 관객에게는 연설 한 번에 이렇게 단번에안토니에게 넘어가는 로마 시민의 변덕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러나 후반부, 삼두정치 파와 브루투스-카시어스 연합군의 전투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냉정한 책략가 카시어스, 고결한 공화주의자 브루투스는 사라지고 없다. 군자금 문제로 투닥거리다 못해 서로 자기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이 사람들은 시저를 암살한 고결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다소 귀여운 아저씨들'일 뿐이다.

로마의 신도, 그 신을 암살한 자도 결국은 인간일 뿐이라는 점은 생각해보면 다소 슬프게 느껴진다. 인간의 어떤 정치도 결국은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씁쓸한 '인간적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역설적으로 이런 점에서 정치를 상식적인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진다.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 이런 '찌질함'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상식에 입각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 이런 찌질함을 벗어날 수 없어 좌절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정치는 상식적인 사람이 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바로 당신이.
덧붙이는 글 R석 50,000원 | S석 35,000원 | A석 20,000원 /일시: 014/05/21 ~ 2014/06/15/ 공연장: 명동예술극장/관람등급 만 13세 이상/관람시간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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