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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진보교육감은 어떻게 승리했나

김석준 교육감 당선 이변... 새누리 일당독점 부산시와 시의회 관계는 숙제

등록|2014.06.05 12:36 수정|2014.06.05 13:09

기뻐하는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후보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1위를 기록한 김석준 부산교육감 후보가 4일 오후 부산 동구 자신의 선거 사무실에게 지지자로부터 축하꽃다발을 건네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부산시민의 선택은 교육개혁이었다. 6·4 지방선거에서 부산은 김석준 부산대 교수를 새로운 교육수장으로 맞이했다. 개혁 내지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하는 교육감 후보가 당선된 것은 3회를 맞은 교육감 선거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보수의 텃밭이란 인식이 강한 부산에서 오랫동안 진보정당 활동을 해온 교육감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이변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 당선인의 승리는 크게 보수진영의 분열과 중도·진보 진영 단일화, '로또교육감' 선거 종식, 지역 정서를 고려한 점진적 개혁 강조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보수의 분열-자연스런 단일화] "이번엔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

김 당선인 승리의 가장 큰 수훈을 세운 쪽은 다름 아닌 보수 후보들이다. 보수 후보들은 끝내 막판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6명으로 분열했고 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진보교육감'에게 부산 교육의 키를 넘기게 됐다.

막판 단일화 압박에 시달렸던 임혜경 현 부산교육감(22.17%)과 박맹언 전 부경대 총장(20.39%)을 단순히 합쳐도 김 당선인이 얻은 34.67%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현직 프리미엄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 임 교육감과 새누리당의 당심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던 박 전 총장은 서로의 생각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단일화는 불발됐다.

반면 진보·중도 진영은 차근차근 단일화를 해가며 후보군을 김 당선인으로 일원화했다. 중도 성향 후보들이 전격 단일화를 일찌감치 이룬 뒤 사퇴해 김 당선인에게 길을 터주었고, 진보성향의 박영관 전 민주공원 관장도 후보직을 양보했다.

김 당선인의 발목을 잡기보다 양보를 통해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은 보수 후보들과는 차이를 보였다. 그만큼 진보·중도 진영에서 "이번만큼은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자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선거방식 변화] '로또교육감 선거 종식' 뒤 나온 첫 진보교육감

당선 확실 보도에 기뻐하는 김석준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후보가 4일 오후 부산 동구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당선 확정이 보도되자, 지지자와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김 당선인의 승리요인으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육감 선거방식의 변화이다. 기존 교육감 선거는 후보자의 기호를 추첨을 통해 정했고 자연히 1번을 뽑은 후보는 여당 프리미엄을 가져갔다.

대표적인 예가 임혜경 현 부산교육감이다. 임 교육감은 2010년 열린 5회 지방선거 초반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언론이 주목한 쪽은 현영희 전 국회의원이나 박영관 전 민주공원 관장 정도였다. 하지만 임 교육감은 1번으로 기호가 정해진 이후 탄력을 받아 당선됐다.

임 교육감 뒤에 '로또 교육감'이란 비판이 따라다녔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거구별로 후보자의 투표용지를 달리 제작했다. 기호도 없앴다. 결국 묻지마 투표가 사라지는 효과를 발휘했고 뚜렷한 교육정책과 높은 인지도를 자랑했던 김 당선인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구도가 형성됐다.

지난 5회 지방선거에서 진보 단일 후보였던 박 전 관장이 17.18%를 얻어 당시 야권 시장후보에 반토막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교육감 선거 방식 변화는 로또 교육감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선거 전략] 진보보다 개혁에 방점... 합리성으로 표심 설득

또 하나의 승리의 비법은 점진적 교육개혁을 강조한 김 당선인의 선거 전략이다. 김 당선인은 자신을 진보 교육감 후보로 부르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옅은 색깔의 선거 전략을 폈다. 그는 대신 자신을 '개혁 교육감'으로 칭했다. 시민들의 심리적 부담이 적은 교육 개혁을 강조한 것이다.

펼치는 정책에도 점진적이고 합리적이란 단서를 달아 진보 교육이 근간을 흔들어 놓을 것이란 우려를 피해나갔다.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무상 공약의 남발보다는 중학교까지 친환경무상급식이나 고교 교과서 대금 지원같이 맞춤형 무상 교육 공약을 들고 나왔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뜻을 밝혔지만 수업방해나 교사모욕 행위에 대한 교사의 긴급지도권을 인정했고, 학부모회를 조례화하겠다는 공약으로 시비를 피해나갈 수 있었다. 청렴도에서 지적을 자주 받아온 교육청렴도를 1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펼친 참여예산제나 교육감 직속 청렴기구 마련은 깨끗한 교육에 대한 유권자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새누리당 일당독점 부산시와 시의회는 '산 넘어 산'

김 당선인의 승리로 부산 교육이 일대 변화를 맞이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새누리당 일당독점 구조의 부산시와 부산시의회가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설지에는 우려가 여전하다.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이 제한적인 교육청 입장에서는 국비와 시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돈줄을 쥔 시와 의회가 김 당선인의 교육개혁에 제동을 걸 가능성은 충분하다.

당장 김 당선인은 자신의 역점 추진 공약인 중학교 친환경무상급식과 고교 교과서 대금지원, 특성화고 교육과정 개편, 광역급식지원센터 설립에 지자체 예산 지원을 바라고 있다. 김 당선인은 오랜 정치활동으로 다져진 정치력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보수성향 후보들조차 예산마련에 애를 먹었다는 점은 섣부른 기대를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난관이 예상되지만 넘지 못 할 장애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유영란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어려움은 따르겠지만 당선인이 소통의 정치력으로 교육예산을 미래에 대한 투자로 인식시킨다면 예산 마련도 가능할 것"이라며 "특히 진보 교육감이 13곳이나 당선된 만큼 큰 틀에서 중앙정부의 예산 배정을 요구하는 등 목소리를 키울 방법이 마련됐다는 점은 희망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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