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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도 없이 폭염, 가물에도 시들지 않는 꽃을 보다

[포토에세이] 거여동재개발지구의 여름(1)

등록|2014.06.07 17:55 수정|2014.06.09 18:27

거여동재개발지구좁은 골목길 사이로 초록생명들이 많이 자랐다. 사람의 왕래가 그만큼 적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래도 중간부분이 비어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골목길에 피어난 민들레, 그들은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이 어디든 다르지 않게 피어난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서 자랐는지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대는 다 끝나 버렸기에, 이런 열악한 곳에서 살면서 자수성가를 했다는 소식은 이제 들을 수 없을 것이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시들지 않는 꽃, 향기가 없어도 뿌리가 없어도, 햇살에 색이 바랬어도, 그래서 꽃 같지 않더라도 차라리 저 시들지 않는 꽃이 더 나은 삶일까? 골목길에 피어난 초록 생명의 꽃들은 저리도 서글프게 피다가 곧 사라질 터인데, 저 꽃은 이곳이 남아있는 한 그곳에서 활짝 피어있을 터이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졸업식이나 생일, 좋은 날 선물했던 꽃이리라. 조화는 여전히 화들짝 피어있고, 생화는 쭈글쭈글 말라버렸다. 그렇게 뿌리로부터 잘림을 받은 꽃은 시들기 마련이다. 이곳에 살던 이들에게는 이곳이 뿌리다. 그 뿌리를 잘라버리고자 하니, 그들이 더는 살 수 없다고 일어서는 것이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뽀리뱅이가 늘씬하게 자랐다. 햇살도 적게 들고 그늘이 지는데다 바람도 잔잔하니 웃자란듯 싶다. 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은 초록생명과 길고양이들이 주인처럼 행세하며 자기의 세를 불려간다. 그래, 사람없는 곳에서는 너희들이 주인이 되어도 좋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주인은 아니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어린양 한 마리를 애타게 찾으시는 주님, 지금 이곳에 길잃은 어린 양 한마리도 아니고 수많은 어린양들이 갈 길을 몰라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냥 이리떼에게 잡혀 먹히도록 둘 생각이십니까? 기독교관련 선교센터 유리창에 붙은 시트지와 시들지도 못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조화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땅도 없지만, 화분에 받은 흙만으로도 온갖 채소와 꽃을 키워낸다. 채소도 아닌 꽃을 심는 마음, 이제 이곳에서 화분에나마 풍성한 꽃을 가꾸던 이들은 재개발이후에도 이렇게 철따라 꽃을 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집은 어떤 집일까? 성냥갑처럼 획일적인 아파트를 짓는 것만이 재개발인 정책은 이렇게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씀바귀가 한 무더기 피어났다. 이것조차도 걸리적 거리지 않을 정도로 골목길은 한산하다. 이 한산함이 여유처럼 느껴지지 않고, 슬프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골목 어느 즈음이 초등학교 시절 친구 집이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나를 기억하고 있기나 할까?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그곳에 피어나는 꽃이라고 철따라 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랏빛 비비추가 낡은 담장 한 구석에서 파어났다. 멋드러진 곳에 피어나지 않았어도, 그곳에 네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더 황량했을까 생각하니, 그곳에 피어나길 참 잘했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폐허가 된 집의 기와가 삭을대로 삭자 기와를 올렸던 흙과 부식된 기왓장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아지풀, 높은 곳에 피어나 멀리까지 볼 수 있어 좋겠다. 하지만, 높다고 다 좋은게 아니란다. 무릇 사람도 식물도 흙과 가깝게 살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란다. ⓒ 김민수


어느 계절이든, 사람들이 거반 떠나버린 황량한 그곳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일 터이다.

겨울엔 골목길마다 가득한 메케한 연탄가스 냄새와 화재걱정으로 힘들 터이고, 이제 겨우 봄이 왔다 싶으면 겨우내 갈라진 틈새들을 더 고쳐야할지 말아야 할지, 더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름엔 비가 새는 나지막한 지붕과 복사열과 사람들이 떠난 탓에 방치된 쓰레기들이 풍기는 냄새로 폭염과 싸워야 한다. 가을이 그나마 좋긴 하지만, 이내 겨울 걱정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이젠 사람이 더는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얼마 전부터 '재개발 반대'를 알리는 붉은 깃발들이 나붙기 시작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는데, 그렇게도 살아갈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 거여동재개발지구다.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날, 그곳 골목에서 시들지 않는 꽃을 만났다.

조화다. 저걸 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꽃은 꽃이로되 뿌리도 향기도 없는 꽃, 차라리 짧은 순간 피었다 진다고 해도 정말 꽃이면 더 좋은 것일까? 우리네 재개발에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 외에는 없다. 아무런 향기도 없는 조화같은 개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꽃처럼 예쁘다!'가 아니라 '조화처럼 예쁘다!'고 한다. 이 무슨 조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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