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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를 터득한 '교동' 사람들

[춘천을 여행하는 법] 꽃 전시장을 연상시키는 정다운 동네, 교동

등록|2014.06.14 09:41 수정|2014.06.16 22:46

▲ 동네 공터 주차장 한쪽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금계국 꽃밭.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길에 오솔길이 생겼다. ⓒ 성낙선


춘천시 교동은 왠지 정이 가는 동네다. 세월의 묵은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오래된 동네들이 대개 그렇듯이 춘천시의 교동도 동네 골목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한 게, 무척 정겨운 풍경을 간직한 곳 중에 하나다. 어느 동네를 가든 처음엔 낯선 기운을 느끼기 마련인데, 교동에서는 좀처럼 그런 기운을 느끼기 힘들다. 처음부터 익숙한 분위기에 젖어든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꽃' 때문일 것이다. 교동에서도 특히 봉의산 밑 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을 듯싶다. 그 동네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꽃들이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어 있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 동네에서는 사람들이 '꽃 가꾸기 경쟁'이라도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에서는 실제 꽃을 심고 키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걸 볼 수 있다. "꽃이 참 아름답다"는 말에 쑥스러운 얼굴로 자신이 정성스럽게 가꾼 꽃을 흐뭇하게 내려다본다. 그러고는 꽃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사람들에겐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오늘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라는 건 전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친근한 분위기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 역시 아마도 그들이 심어 가꾸는 그 아름다운 '꽃'들 때문일 것이다. 춘천시 교동은 심지어 대문 밖에 아무렇게나 내놓은 화분들에서마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살가운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산책 삼아 떠난 교동 여행, 그곳에서 발견한 정다운 풍경 몇 점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 꽃나무 아래 손바닥만한 땅덩어리에 누군가 심어 놓은 큰달맞이꽃. ⓒ 성낙선


서울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교동 사람들

교동은 춘천시의 진산인 봉의산 밑에 자리를 잡은 동네 중에 하나다. 교동이라는 이름은 동네에 '향교'가 있는 데서 비롯됐다. 동네 한쪽 도로가에 춘천시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건물 중에 하나인 '향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어느 도시를 가든지 그 중심지에는 대개 '교동'이 있기 마련인데, 춘천시 교동도 한때 춘천의 중심을 이뤘던 동네 중에 하나다.

▲ 춘천 교동의 한 주택가 골목. 오른쪽에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밤나무가 보인다. 뒤에 보이는 산이 춘천의 진산이라 불리는 봉의산. ⓒ 성낙선

지금은 낡고 퇴락한 기운이 역력하다. 그래서 처음 그곳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는 빛 바란 풍경들이 어딘가 어둡고 외진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풍경들에서 꽤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삶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교동은 유난히 '밭'이 많은 동네다. 대문 안은 물론이고 대문 밖에서까지 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손바닥만 한 땅덩이도 그대로 놔두는 법이 없다. 때로는 그 밭이 텃밭의 규모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어 밭주인이 직업 삼아 농사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무슨 큰 욕심이 있어, 그런 밭을 일구고 있는 건 아니다.

교동 사람들은 빈 땅을 보면, 그곳에 뭔가를 꼭 심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요즘 도심의 빈 땅에 꽃이나 나무를 심는 사회운동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춘천의 교동에서는 굳이 그런 운동을 펼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게, 빈 땅이라 빈 땅은 모두 이미 무언가가 가득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빈 땅이 드물다.

공터라고 모두 텃밭만 있는 건 아니다. 어느 곳에서는 아예 작은 정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가꿔진 꽃밭을 발견할 때도 있다. 때로 그런 밭들 중에서 절반은 텃밭이고, 또 남은 절반은 꽃밭인 경우를 보게 될 때도 있다. 그런 밭을 발견하게 될 때는 정말이지 그 밭을 일구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춘천은 상당히 큰 도시다. 다른 도시들처럼 삶의 여유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교동 사람들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치고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데가 있다. 그러니까 이곳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처럼 주변에 남아도는 땅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주차장을 만들거나 작은 건물이라도 하나 더 지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영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 어느 집 축대 위에 뿌리를 내린 고들빼기, 그리고 민들레 홀씨. ⓒ 성낙선


▲ 어느 집 울타리 안에 열매를 맺은 산딸기. ⓒ 성낙선


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 더 아름다운 동네

교동은 또 하나, 집집마다 과일나무가 자라고 있는 걸 볼 수 있는 특이한 동네다. 과일나무 중에는 감나무가 대세다. 마당을 가진 집들 중에 마당에 감나무가 자라고 있지 않은 집이 드물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담장 밖으로 뻗어 나온 감나무 가지마다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이 또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만약에 어느 가을날 춘천 시내에 일을 하러 갔는데 시간이 나서 어딘가 잠깐 들러보고 싶을 때, 교동 같은 춘천의 오래된 동네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서울에서는 이제 대부분 사라지고 없는 동네 좁은 골목이 이곳에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골목마다 감나무가 자라고 있는 모습은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 중에 하나다.

▲ 동네 안쪽 작은 텃밭에 심어놓은 갓에 꽃이 노랗게 피었다. ⓒ 성낙선


이쯤 되면, 이 동네에 어떻게 해서 이런 풍경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느 해 가을날 감들이 한창 익어갈 무렵, 마을 주민들을 붙잡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교동 사람들이 자기 집 마당에 감나무를 심게 된 배경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오래 전에 감나무를 심었다는 교동 사람들조차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굳이 그 이유를 찾자면, "옆집에서 감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보기 좋아 나도 심었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원조가 아닌 이상,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하여튼 그때 알아본 결과, 이곳 사람들이 감나무를 심기 시작한 역사는 20-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나무를 심기 전에는 집집마다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포도나무가 잘 자라지 않았다.

기후가 변하기 시작한 탓이다. 그러더니 그 어느 해부터인가 동네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감나무를 심었는데, 그 감나무가 생각 외로 잘 자라더라는 얘기다. 그 후로, 지금은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감나무가 동네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하여튼 감나무 하나를 심고 가꾼 것만 봐도, 이 동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심어 기른다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 중에 하나였던 셈이다.

▲ 어느 집 담장 아래 놓인 꽃 화분. ⓒ 성낙선


▲ 연립주택 앞 작은 화단에 누군가 심어 놓은 꽃. ⓒ 성낙선


봉의산 밑 교동에는 요즘 꽃이 지천이다. 동네 공터에 만들어진 꽃밭은 물론이고, 대문 밖에 내놓은 꽃 화분마다 화려한 빛깔의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철마다 피는 꽃이 다르다. 이 산자락 동네에서는 요즘 '큰달맞이꽃'이 유행이다. 동네 구석구석 어딜 가든지 달덩이 같은 얼굴을 하고서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해맑은 꽃을 볼 수 있다.

이 산자락 동네에서는 또 야생화를 찾아보는 일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생화들도 이 동네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꽃들 중에 하나다. 시멘트 담장 밑이나 검은 아스팔트 바닥의 갈라진 틈 사이에 겨우 뿌리를 박고 서 있는 야생화들, 그리고 높은 축대 위에 위태롭게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야생화들은 화분에서 자라는 꽃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야생화도 꽃이다. 교동에서는 야생화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 꽃들 중에 하나다. 그 꽃이 야생화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야생화들은 일단 이곳에 뿌리를 내린 이상,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거의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다 갈 자유를 얻는다. 교동은 꽃이 있어서 아름다운 동네다. 그리고 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아름다운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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