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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에 '보석'이 주렁주렁... 나눠 갖겠습니다

씨감자가 썩어야 새 감자를 얻을 수 있다니... 세상의 이치를 배웁니다

등록|2014.06.14 19:52 수정|2014.06.14 19:52

▲ 노다지를 캐는 기분이 드는 감자수확 ⓒ 최오균

귀촌한 뒤 가장 먼저 심은 뿌리식물이 바로 이 감자다. 감자는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하기도 쉽고, 병해도 별로 없다.

이곳 연천으로 이사를 온 후에는 거름성분이 전혀 없는 모래땅에 감자를 심었는데도 제법 수확이 좋았다.

금년에는 너구리 피해 때문에 땅콩을 심는 것을 포기를 하고, 그만큼의 땅에 감자를 더 심었다. 지난 3월 25일 남작 10kg을 파종을 했는데 벌써 75일이 지났다. 잎들은 시들시들해지면서 감자 수확기가 도래했음을 알려줬다.

감자를 수확한 땅에 서리태를 파종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수확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샘플로 몇 그루를 파보니 제법 밑이 잘 들어 있다.

마침 이번 주에 비소식도 있고 해서 비가 내리기 전에 감자도 캐고, 서리태를 파종하기 위해 감자를 전부 수확하기로 했다.

감자를 수확하는 기쁨

▲ 잎이 노래지고 시들어지며 감자수확의 시기를 알려주고 있다. ⓒ 최오균


▲ 맨땅에서 감자를 캐는 것은 진주를 캐내는 느낌이 든다 ⓒ 최오균


감자를 수확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모래땅에 보석처럼 숨어있는 감자를 캐는 느낌은 마치 노다지를 캐는 기분과 비슷하다. 어떤 것은 한 그루에 12~15알도 달려 있다. 그야말로 노다지가 주렁주렁 달린 게다. 별다른 거름도 주지 않는 맨땅에서 이렇게 많은 감자가 열리다니…. 자연의 조화에 그저 고마움을 느낄 뿐이다.

감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씨감자가 완전히 썩어야 새 감자들이 더 많이 달려있다. 씨감자가 썩지 않은 것은 거의 감자가 달려있지 않았다. 새끼 감자는 마치 배 속의 아기가 엄마의 태를 통해 양분을 빨아 먹듯 가늘고 여린 하얀색의 뿌리줄기를 통해 양분을 흡수하고 있다.

▲ 썩지않는 씨감자에서는 감자가 열리지않는다 ⓒ 최오균


씨감자에서 나온 새순은 먼저 어미 씨감자의 양분을 빨아먹으며 싹을 틔운다. 그 싹을 통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고, 땅으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며 자라난다. 어미감자(씨감자)는 자식(순)을 틔우고 그 순이 다 자랄 때까지 양분을 공급해준다.

이 여린 뿌리줄기에서 새로운 감자가 탄생한다. 씨감자는 감자의 여린 순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새 감자를 잉태할 때까지 거름이 되면서 완전히 썩어간다. 오, 신비로운 생명의 조화여!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 씨감자가 썩어야 순이 자라고 그 순에서 뿌리를 내어 감자가 달린다 ⓒ 최오균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대 연금술은 등가교환의 법칙을 기본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무엇인가 대가를 치르고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감자는 생김새가 다양하다. 대부분 타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어떤 것은 호리병 모양, 하트모양, 눈사람을 닮은 모양도 있다. 감자를 수확하며 마치 자연이 창조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 호리병처럼 생긴 감자 ⓒ 최오균


▲ 눈사람처럼 생긴 감자도 있다 ⓒ 최오균


아침 식탁에 올라온 햇감자 맛!

숨은 진주를 찾듯 감자를 전부 모래땅에서 파헤쳐 놓고 보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갓 수확한 햇감자가 아침 식탁에 올라왔다. 텃밭에서 뜯어온 야채에 삶은 햇감자를 곁들여 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이 상큼한 맛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 땀 흘려 가꾼 보람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 아침 식탁에 오른 햇감자의 맛! ⓒ 최오균


감자 속에는 섬유질과 칼륨 많이 함유돼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기름진 고기를 자주 섭취하는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또한 비타민 B1·B2, 비타민C 등이 많이 함유돼 있어 유럽에서는 감자를 '땅속의 사과'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감자는 쌀보다 녹말이 많고 칼로리가 낮아 건강식품으로도 애용된다.

감자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식탁에 올라온다. 특히 내가 남미 페루를 여행할 때 티티카카 호수에서 주식으로 먹었던 감자는 잊을 수가 없다. 해발 4000m가 넘는 티티카카 아만타니 섬에 머물 때 약간 검은 빛이 나는 달걀만한 감자가 식탁에 올라왔었다. 섬사람들이 산비탈에 재배해 주식으로 먹는 감자였다.

감자의 원산지는 페루·칠레 등지라고 한다. 원래 안데스 산맥에 살고 있는 잉카족이 재배하던 작물이란다. 남미를 여행하는 내내 식탁에서 감자를 볼 수 있었다. 그만큼 고산지대에 살았던 잉카족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먹으며 살아온 것이다.

감자, 어떻게 보관할까?

▲ 그늘진 창고에 보관하여 말리고 있는 감자 ⓒ 최오균


재배면적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감자 캐기는 오전 10시께 끝났다. 감자는 건조할 때 수확해 상대습도 90%, 20C˚의 온도에서 10~15일정도 예비 저장을 한 뒤 4C˚ 내외의 상온에 저온 저장을 하는 게 좋단다. 장기간 보관할 때는 바람이 잘 통하는 플라스틱이나 나무 상자에 넣어 빽빽하지 않게 쌓아둬야 한다.

감자는 오래전부터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창고에 가득 찬 감자를 바라보자니 갑자기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며 나는 고흐미술관에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앞을 한동안 떠날 수 없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간 고흐는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이런 고흐의 신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 wiki commons


고흐는 어두운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를 집어먹는 사람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몸소 노동을 하면서 정직하게 식량을 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식탁 한가운데 동그란 접시에 담긴 감자를 사람들이 나눠 먹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흰 수건을 쓴 여인이 따뜻한 차를 따라주며 감자를 권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고 절망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램프 아래서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얻은 감자를 먹는 소박한 농부들의 모습은 무슨 이유인지 경건해 보인다.

▲ 식탁에 오른 햇감자. 감자 한 알을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은 서민들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희망을 느끼게 한다. ⓒ 최오균


그들에게 감자 한 쪽은 삶을 향한 강한 의지이자 희망이었다. 그들이 서로 나눠 먹는 감자 한 알은 서로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

저온 창고시설이 없는 나는 우선 그늘진 창고에 감자를 저장해 말리기로 했다. 그리고 감자를 심고 키우는 데 함께 수고해준 친구와 나눠 먹고, 이 땅을 제공해준 아우에게도 좀 보내줘야겠다.

오래도록 보관을 할 수도 없으니 햇감자 맛이 날 때 나눠 먹는 게 좋지 않겠는가. 노지에서 내 손으로 기른 감자를 창고로 운반해 놓고 보니 제법 양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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