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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하루 세끼 해결 가능...'김정은 경제' 성과 내고 있다"

[인터뷰] 북한 농업 전문가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원 선임연구위원

등록|2014.06.11 16:24 수정|2014.06.11 17:37

▲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희훈


'이팝(쌀밥)에 고깃국.'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오래 전부터 북한 인민들에게 해온 이 맹세는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는 물론이고, 2008년에도 대량 아사자가 발생, 탈북 행렬이 줄을 잇게 되면서 북한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탈북자 대부분은 탈농자였다.

그런데 2012년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북한 식량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2013~2014년도(11월 1일~다음해 10월 31일) 북한 곡물생산량을 최소 소요량 537만 톤(도정한 상태의 정곡기준)에서 불과(?) 34만 톤 부족한 503만 톤으로 예상했다. 이는 전년도의 484만7천 톤에 비해 4.5% 증가한 수치다.

지난 2일 만난 권태진(60)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곡물생산량이 늘었고 가격이 안정돼 가고 있다"면서 "하루 세끼'는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단백질과 채소 공급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미약하게나마 호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일단 김정은 정권의 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80년에 연구원에 들어간 그는 1997년부터 북한 농업 분야 연구를 시작했고, 이 분야 전문가 중 첫 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책상에서의 연구뿐 아니라, 최소 30회가 넘은 북한 농촌 방문을 통해 현장을 경험했다. 2007년까지 대북 쌀지원 현장(북한의 강원도 고성군)에서 모니터링 작업을 했고, 고 정주영 회장이 금강산에 온실(9천 평)을 지어서 금강산 식당에 공급할 때 연구원이 사무국을 맡게 되면서 직접 대북지원 업무를 맡기도 했다.

이달 말 정년퇴임하는 그는 곧바로 민간 농업연구소인 GS&J 인스티튜트(이사장 이정환)에서 북한·동북아연구소(가칭) 원장과 국제농업협력센터 책임을 맡아 관련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다음은 권 선임연구위원과의 문답 전문이다.

"북한 식량 50~60만 톤 부족 추정... 대규모 아사자 나올 상황은 아냐"

▲ "현재 가뭄상황으로 볼 때 부족량이 FAO가 예상한 34만톤을 넘어 50~60만톤이 될 것 같다. 최근 연간 국제사회 지원량이 5만톤정도인데 여기에 일부 수입한다고 해도 부족량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대규모 아사자가 나올 상황까지는 아니다" ⓒ 이희훈


- 북한 농업 현장에도 자주 가봤나.
"세어 보지는 않았는데, 최소 30회 이상은 될 거다. 우리는 평양보다 지방 가는 것을 원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전에는 북한 모내기 현장에도 자주 갔는데, 북한 가면 자기네 분야 밖에 모른다고 북한 전반적인 농사 상황을 저한테 묻는 사람도 있더라. 농업분야는 남북간 교류 축적이 많이 돼 있다. 2001년부터  매년 연말에 평양 또는 북경에서 우리의 농촌진흥청격인 북한 농업과학원과 월드비전 주관으로 심포지엄을 하는데 수십 명의 남북한 농업전문가들이 모인다. 북한의 요청에 따라 과수, 축산 등 전문가들아 나가서 농업기술 정보를 발표하고 논의한다.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북경에서 만나는데 그 규모가 줄었다."

-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올해 신년사에서 "농업을 주타격 방향으로 확고히 틀어쥐고 농사에 모든 힘을 총집중하여야 한다"고 했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2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했다. 모내기 전투기간인데, 모내기 못한 곳이 꽤 될 거다."

- 최근 북한의 식량 상황은 어떤가. FAO와 WFP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는데.
"가뭄 때문에 올해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가뭄상황으로 볼 때 부족량이 FAO가 예상한 34만 톤을 넘어 50~60만 톤이 될 것 같다. 최근 연간 국제사회 지원량이 5만 톤 정도인데 여기에 일부 수입한다고 해도 부족량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대규모 아사자가 나올 상황까지는 아닐 것이다. 대체식품들도 있고, 작년 작황이 좋았기 때문에 재고도 있을 수 있다."

▲ 모내기가 한창인 5월의 북한 농촌 ⓒ 신은미


- 북한에서 특히 식량 사정이 어려운 지역은 어딘가.
"남방한계선 근처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남한과의 접경이라는 특성상 시장이 없다. 군에서 주지 않으면 힘들다. 1990년대 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는 화이트칼라들이 많이 굶어 죽었다. 시장 활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시장이 활성화돼 있어서 완충작용을 한다. 식량은 중국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온다. 가격만 맞으면 무한대로 공급된다고 할 수 있다."

- 비료 상황은 어떤가.
"1980년대 말까지는 비료 공급이 잘 됐는데, 그 뒤 사회주의권 붕괴로 에너지 공급이 안 되면 비료공급이 끊겼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남한에서 연 30만 톤의 비료가 지원됐는데, 2008년부터 부족해졌다. 중국에서 수입했지만 부족했다. 2008년과 2009년 아사자가 발생했던 식량난의 한 원인이었다. 그래도 시장이 있어서 그 고비를 넘어갔다. 중국 비료 수입은 이전에는 물물교환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중국도 비료 사정이 어려우니까 현금 거래를 많이 한다. 북한은 무역회사에 할당량을 강제하기도 하는데, 현금이 없으니까 철광석, 석탄 같은 지하자원을 내다 팔고 있다."

"북한, 결국 외부 자본 도입하려면 개방 필수"

- 북한은 많게는 (20명 정도 되는 분조를 3~5명 단위로 쪼개 이들에게 일정한 포전을 주고, 수확물 중 일부를 자유 처분할 수 있도록 한) 포전담당제가 효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맞는 내용이라고 보나.
"맞을 수밖에 없는 얘기다. 2004년도에 내각총리가 박봉주였는데, 그때 포전제에 주력한다고 군부 등 반발로 좌천됐다. 그런데, 박봉주는 물러났어도 포전제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이번에 김정은 제1비서 지원 아래 박봉주가 다시 총리가 되면서 포전제에 집중하고 있다. 포전제를 음성적으로 할 때는 농사에 필요한 물자를 자체적으로 해결했어야 하는데 이제는 정부가 공급하고, 수확물을 7:3 비율로 자체 처분하도록 해준다. 김정은 정권 들어 2년간 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포전제 성과도 있고 날씨도 굉장히 좋았다. 북한이 민생문제 해결 위해 농업에 자원을 집중한 정책을 썼다는 게 핵심이다."

- 식량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나.
"생산량이 늘었고, 가격이 안정돼 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제1비서의 농업정책이 성공까지는 아니지만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 정부가 약속한 대로 농사에 필요한 물자가 원활하게 공급될 것이냐는 점이다. 포전제를 실행하는 것은 일부니까 물자공급이 가능한데, 전체적으로 시행하려면 자본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결국 외부 자본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개방도 하고 외부 투자가 가능하도록 유인도 제공해야 하다. 북한은 이를 두려워하고 있다. 개혁도 못하고 개방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되면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 김정은 제1비서는 올해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축산과 남새(채소) 공급을 강조했다
"식량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면서 식량 소비패턴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북한은 알팔파, 켄터키블루그래스 같은 풀씨를 많이 수입해서 온실과 풀판에서 재배하고 있다. 축산기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돼지 중심이었는데 곡물 부족 때문에 지금은 토끼가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돼지, 닭, 염소 등이다. '하루 세끼' 문제는 어느 정도 좋아지면서 단백질과 채소 공급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서 민생문제, 식량증산에 많은 공을 들이면서 농업에 자원배분을 많이 했고, 식량 증산을 김정은의 치적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90년대 중후반 북한 농업의 붕괴는, "농업기계화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구소련의 해체로 석유와 농기계 부품 공급이 중단되자 속수무책이 됐기 때문"(원톄쥔 중국 인민대 농업 및 농촌발전대학 학장)이라는 분석이 있다.
"근본적인 요인중의 하나다. 사회주의권 붕괴로 에너지 지원이 끊겼고, 대규모 자연재해까지 겹쳤다. 북한 농업은 상당히 현대화돼 있었다. 70년대에 남한이 경운기 쓸 때 북한은 트랙터 사용했다. 농업근대화의 기준인 전기화, 수리화, 기계화, 화학화(비료)라는 4화에서 과거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나았었다."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 '굶어죽을 뻔 했는데 참 고마웠다'고 한다"

▲ "우리의 식량지원과 농업개발협력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방북해서 북한 주민들 만날 때, 탈북자들 면담 때 '굶어죽을 뻔 했는데 참 고마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이희훈


- 남북 협력에서 농업 분야가 갖는 장점을 꼽는다면.
"비정치 분야이고, 가장 기본적인 인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야다. 또 성과가 바로 나타난다는 장점이 있다. 통일부에 등록된 있는 전체 NGO의 1/3이 농업 분야에 집중돼 있다.  북한이 원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협력도 쉽다. 우리의 식량지원과 농업개발협력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방북해서 북한 주민들 만날 때, 탈북자들 면담 때 '굶어죽을 뻔 했는데 참 고마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드레스덴 선언'에서 북한에 '농업, 축산, 산림을 함께 개발하는 복합농촌단지 조성'을 제안했다.
"비용이 좀 많이 들기는 하지만, 특정물자 지원이 아니라 종합적 지원 방식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농촌개발지원을 할 때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생활개선지원 효과도 나타난다. 북한에서는 농민이 가장 못 산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2년 이후 탈북자들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하루 세끼 먹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두 끼가 보통이었다. 한 달 생활비가 5년 전 10만 원에 비해 20~25만 원으로 올랐는데, 물가상승을 감안해도 생활의 질이 올라간 거다. 그런데 당 간부들은 입쌀(백미) 100%인데 비해 농민들은 100% 옥수수밥을 먹는다. 이들을 지원하는 데는 복합농촌단지 형태가 좋다."

- 전반적인 북한 경제 상황은 어떻게 보고 있나. 미약하게나마 호전되고 있다고 하는데.
"동의한다. 그 배경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잘 못하고 있는데, 탈북자 조사 등 지표에 나타나고 있다. 북한 GDP의 20%를 차지하는 농업분야에서 5% 성장하면 전체성장률이 1% 올라간다. 전반적인 북한 경제 호전에 농업분야가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일부 기업소 가동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농기계 가동률, 공장가동률이 높아진 것은 맞다.

물가도 이전보다 안정돼 있다. 쌀 1kg이 지난해 3월 이전에는 시장에서 7천 원에 거래됐는데, 지금은 4천 원 정도 한다. 1달러는 8천 원에 거래됐는데, 지금은 그보다 떨어져 있다. 외부에서 달러 공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달러화는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최근 1년 경제 상황은 이전보다 상당히 안정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김정은 정권의 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다."

- 국제 제제를 받고 있는데, 생산을 위한 물자지원은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 건가.
"어디선가 자본이 제공돼야 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내부 자본을 끌어낸 것 같다. 돈주들이 자기 자본을 내놓아서, 지하경제 자본이 지상으로 올라간 것 같다. 현재로서는 물론 추정이다. 아파트 건설 자금의 일부를 돈주들이 낸다는 것은 보도된 바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과거에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는 눈감아주는 한편, '장성택 처형'과 같은 공포감 조성을 통해 돈을 끌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09년 화폐개혁은 강제로 하다가 실패했고, 김정은 정권에서는 강제보다는 협박과 회유를 병행하고, 간부들에게는 할당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을 수 있다."

"곧 붕괴? 내구성 강해... 실제 북한 지탱하는 건 시장"

▲ 모내기가 한창인 5월의 북한 농촌 ⓒ 신은미


- 대북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북한이 고통을 겪기는 하지만, 이전에 하지 않은 행동 즉 지하자원을 내다 파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건 장기적으로 보면 아주 좋지 않은 방식이다. 장기적으로 통일 비용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통일과정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오랫동안 북한을 연구해 왔는데, 일반적으로 북한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꼽는다면.
"곧 붕괴할 거라고들 생각하고 있는데, 북한 체제는 내구성이 강하다. 둘째로 법, 규정 무시하고 멋대로 하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제가 생기면 합의서부터 갖고 온다. 규범, 합의서를 잘 만들어 놓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또 북한에 계획경제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고 보는데, 실제 북한을 지탱하는 건 시장이다. 물론 시장경제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시장이 제일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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